총각선생님의 막내 딸 “정희야 ! 저기 저것 좀 가져다 줄래?”
“네, 선생님, 이거요? 여기 있어요.”
오늘도 수업이 끝난 뒤에도 선생님의 곁에 붙어 서서 무어라고 종알대던 정의는 선생님의 심부름에 신바람이 난다는 듯이 얼른 출석부를 집어다 드립니다. 잔뜩 늘어놓은 서류들을 만지던 선생님은 그런 정희를 보면서“그래, 우리 막내 최고야. 그래서 우리 막내가 이쁘지. 그렇지?” “네, 선생님.”
날마다 보는 얼굴 날마다 한 교실에서 사는 아이들이지만 유난히 선생님을 따르는 정희를 선생님은 늘 ‘막내’라고 부르고, 이제는 학급의 아이들도 모두들 정희라는 이름보다는 막내라는 이름으로 더 잘 불러 주었다. 그래서 이제 처음 발령을 받아서 아직 총각인 선생님의 막내딸이 된 정희는 모든 아이들이나 선생님이 부르는 ‘막내’라는 이름을 오히려 더 좋아합니다. 그것은 선생님이 자기를 좋아서 불어주는 이름이기 때문에 그 이름이 조금도 싫지 않고 오히려 자랑스럽기까지 한 것입니다.
4교실에 8학급이 공부를 하여야 하는 형편에 모두 2부 수업을 하였지만 그래도 한 교실이 부족한 것을 어쩔 수가 없었다. 이렇게 교실이 부족하여 우리들은 군인들의 천막을 가져다 교실 옆에 바짝 붙여서 치고 그 속에서 수업을 하였다. 냉난방 시설도 없는 교실이 텐트 속에서 50명 가까이 한데 모였으니 여름엔 거의 모든 아이들의 등에 땀띠가 나서 시뻘겋게 되어 있었다.
한낮엔 도저히 교실이라고 들어가서 수업을 할 수가 없어서 학교 옆의 조그만 정자나무 그늘로 가서 들판을 바라보면서 수업을 하기도 하였다. 가끔은 수업을 하다가 뛰어오른 개구리 때문에 소란이 일기도 하고, 비라도 오는 날이면 밖에 나갈 수도 없고 그렇다고 문을 열수도 없는 천막 안에서 어두컴컴하여 글씨가 잘 안 보여서 노래나 부르고 있다가 좀 개이면 공부를 하기도 하였다.
이런 속에서도 아이들은 날마다 학교생활이 즐겁고 날마다 뛰어 노는 것에 시간 가는 줄을 몰랐다. 힘들게 냇가에서 모래를 퍼 날라다가 논바닥에 벼 포기가 그대로 남아있는 질퍽거리는 운동장에 펴고는 돌멩이를 주어다가 화단을 만들고 울타리라고 둑을 쌓기도 하였다. 날마다 학교에 오면 운동장 구석을 파고 옥수수도 심고 호박도 심으면서 작업을 해도 아이들은 즐겁고 행복해 하였다. 물론 땀 흘리고 힘이 들면 짜증을 부렸지만, 그래도 그게 자기들이 노는 운동장을 만들고 자기들이 공부하는 학교를 만드는 일이라는 생각에 다들 꾀부리지 않고 열심히들 일을 했다.
혹시라도 누가 꾀를 부리는 일이라도 있으면 서로 타이르기까지 할 줄 아는 지혜로운 아이들이었다. 그래서 이 아이들은 누구보다도 선생님과 함께 하는 일이란 무슨 일이든 할 수 있다는 생각인 듯이 모두 열심히들 따랐다. 학교 공부가 끝나고 집에 돌아가서도 별로 할 일이 없던 선생님의 방으로 몰려들어서 밤이 늦도록 공부를 하였고, 뒤늦게서야 글씨를 익히는 아이까지도 저녁마다 선생님 댁에 모여서 공부를 하면서 금세 글자를 익히고 공부시간에 책을 읽겠다고 손을 드는 일이 생기기 시작하였다.
학교에서 집으로 돌아가는 길은 마치 벌떼가 움직이는 것 같았다. 새마을 운동이 벌어지기도 전이어서 아직 수레도 제대로 다니기 쉽지 않을 만큼 비좁은 골목길을 선생님의 손을 붙들고 골목을 가득 메우고 다니기도 하고, 선생님이 방을 얻어 생활하는 집의 마당은 가득히 모여든 아이들의 놀이터가 되어서 학교 운동장이나 다름없었다.
막내 정희가 유난히 선생님을 따르고 좋아하게 된 것은 이유가 있었다. 시골이라서 하숙집이 없는 이 시골학교의 바로 옆에서 작은 음식점과 주막을 겸하고 있는 정희네 할머니뻘이 되는 댁에서 선생님이 하숙을 하고 있었으며, 저녁에 잠을 자는 방은 바로 정희네 이웃에 있는 역시 집안 할아버지뻘 되는 댁이었다. 그래서 여기저기를 가도 할아버지, 할머니 댁이니까 정희는 아무런 부담 없이 선생님의 심부름도 다니고, 밤이나 낮이나 마음대로 드나들 수 있었다.
또 하숙집에서나, 잠자는 방을 얻어서 살던 댁에서도 무슨 심부름을 시키려면 정희를 불러서 심부름을 시키시니까 이쪽의 심부름이나 저쪽의 심부름이나 모두 정희가 도맡아 하는 것이었다. 선생님 방은 살만한 방은커녕 잠을 잘 곳이 없어서 소를 기르던 마굿간을 치우고 부엌으로 사용하면서 자취를 하기 시작을 하였지만, 시골이라서 어디서 반찬 하나 사다 먹을 곳이 없었다. 1965년 정말 어려운 우리나라의 형편이어서 다만 끼니라도 굶지 않고 사는 방법은 없을까 나라에서도 걱정을 하던 무렵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면 가끔 이웃에 사는 정희네에서 김치라도 가져다주기도 하고, 주인댁에서 약간의 반찬거리를 주기도 하였다. 멀리 선생님의 고향에서 밑반찬을 가지고 왔지만 그것만 먹고 살 수는 없었기 때문이었다.
“정희야, 넌 선생님 막내딸이니까 날마다 선생님 댁에 가서 살아라.” 늘 정희에게 선생님의 사랑을 빼앗겨 심통이 난 정순이가 불쑥 쏘아대자 정희는 입을 비쭉이 내밀면서“그러면 안 돼냐? 글안 해도 나 날마다 선생님 집에 간다. 왜?” 한마디 하자 정순이도 지지 않고 “그래 좋겠다. 난 뭐 선생님 댁에 못 가냐? 우리 집인데 날마다 선생님 집에 가지?” 이런 모습을 본 아이들이 두 아이를 떼밀어 맞대게 하면서 “자, 자, 어디 한 번 싸워 봐라. 누가 이기나 보자”하고 놀리자 두 아이들은 더 이상 싸울 수가 없는 지 피식 웃으면서 서로 밀쳐내고 돌아섰다.
가을에 선생님이 사시던 마굿간에 소를 들여다 매어야 하기 때문에 더 이상 그곳에서 살수가 없어서 하는 수 없이 비어 있는 뒷방이 있는 정순이네로 이사를 한 뒤였기 때문에 이제는 정순이가 더 가까운 한 집 식구가 되었기 때문에 큰 소리를 치는 것이었다. 학급에서 가장 키가 작은 두 아이는 고만고만한 키에 유난히 시샘도 많아서 늘 다투기를 잘 했다. 더구나 서로 선생님의 손을 잡겠다고 다투고 밀치고, 서로 선생님의 가방을 들겠다고 다투는 아이들이었다. 선생님은 이런 두 아이를 유난히 예뻐하여서 다른 아이들은 한데 모여들 자리도 얻지 못할 지경이었다. 선생님도 이렇게 따르는 아이들은 어쩔 수가 없었을 것이다.
“선생님, 오늘은 무얼 그렇게 열심히 하고 계셔요?”
아이들이 학교 공부가 끝나고 모두 돌아간 지 한참이나 지난 7월의 오후, 아직도 따가운 햇볕 속에서 무더위와 싸우면서 시험문제를 열심히 원지에 긁고 있는 선생님에게 다가선 정희는 서슴없이 선생님의 어깨에 매달리면서 물었다.
“으응, 막내냐? 그런데 지금 시험문제를 만들고 있으니까 여기 오면 안 되거든 알지?”
선생님의 말씀에 막내는 그냥 매달리면서 “아앙, 또 내쫓으려고 그러는 거죠? 아이들이랑 들어와서 이야기 들으려고 그랬는데”하며, 앙탈을 한다.
선생님은 그런 막내의 손을 가만히 잡아끌어 내리면서 “막내야. 네가 이러면 다른 아이들이 시험문제를 보았다고 할 거 아니냐. 어서 나가거라. 아무리 막내라도 시험문제를 미리 보아서는 안 되지 않겠니?”하고, 떼어 내었다. 그러나 막내 정희는 눈을 흘기면서 “그럼 운동장에서 놀고 있을 테니까 다 끝나면 불러야 해요?”하고 다짐을 받았다.
오늘은 다른 아이들이 없으니까 찰싹 엉겨 붙지는 않아서 다행이라는 생각으로 일에 매달린 선생님을 기다리는 막내는 심심하면 운동장에서 열린 창문으로 뺴꼼이 들여다보곤 하였다. 일을 마치고 교실을 나설 때는 긴긴 여름 해가 서산으로 기울어지고 어둠이 내리려고 하는 저녁 6시가 넘은 시간이었다. 운동장에서 기다리고 있던 막내는 어느새 달려들어서 선생님의 팔을 꼬옥 붙들고 나란히 걸으면서 조잘조잘 오늘 하루의 이야기를 그칠 줄을 모른다.
“우리 막내, 선생님이 나오기만 기다리고 있었구나. 미안한데. 이렇게 늦어서.”
선생님이 말씀을 하셨지만 막내는 그런 말쯤은 대견치도 않다는 듯 나란히 걸으면서 한없이 즐거운 듯 환한 미소가 서산으로 넘어가며 오늘의 인사를 띄우는 환한 해님처럼 맑게 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