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일 아침마다 7시 40분이 되면 시와 음악의 시간이 전개된다. 오늘 아침에도 아름다운 피아노 음악을 배경으로 이정하 시인의 ‘사랑한다는 이유만으로’라는 시가 교실마다 잔잔하게 퍼져나갔다. 내 방에도 아름다운 시가 들려왔다.
이정하 시인의 시를 조용히 다시 읽어보면서 우리 학교에 첫 부임했을 때를 생각했다. 첫 마디가 ‘교육은 사랑이다’는 말을 하였다. 오늘 이 시는 자신을 되볼아보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 얼마만큼 학교를 사랑했는지, 학생들을 사랑했는지, 동료직원들을 사랑했는지 되돌아보았다.
사랑한다는 이유만으로 모든 것을 용서받을 수 없기에 더욱 마음은 오늘 날씨만큼이나 무겁다. 학생들을 외롭게 하고, 슬프게 하고, 절망케 했다면 이를 어떻게 용서받을 수 있겠나? 선생님을 외롭게 하고, 슬프게 하고, 절망케 했다면 이 또한 어떻게 용서받을 수 있겠나?
더욱이 학생들을 화나게 하고 울게 했다면 이 또한 어떻게 용서받을 수 있겠나? 학교 선생님을, 동료직원들을 화나게 하고 울게 했다면 이 또한 용서를 받을 수 있겠나? 내가 너를 사랑했기 때문에 화나게 하고 울게 했다고 하면 상대방이 이해를 해 줄 수 있을까? 현실이 그러했노라고 변명한다고 이해하며 너그러이 받아줄 수 있을까?
물론 사랑하는 마음 자체가 변했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따지고 보면 사랑에 대한 미숙함 때문이 아니고 그 무엇일까? 또 말만 사랑한다고 했지 진정한 사랑이었을까? 그리고 사랑한다고 하면서 근성으로 사랑한 것은 아닌지? 아니면 덜 사랑한 것은 아닌지?
사랑하는 학생들을 덜 사랑한다고 눈물을 흘리게 했다고, 화나게 했다고, 마음을 상하게 했다고 이제 더 이상 사랑을 할 수 없으니 떠나가라고 할 수 있을까? 그럴 수는 없다. 그건 교육을 포기하는 것밖에 되지 않는다.
미숙한 나의 사랑의 방법을 바꾸어야 한다. 마음을 아프게 했고 눈물을 흘리게 했다면 이제 눈물을 닦아주고 마음을 시원스럽게 해 줄 수 있도록 최선의 방법으로 사랑해야 한다. 지금까지 외롭게 하고 소홀히 하고 관심 밖에 두었다면 다시 초심으로 돌아가서 관심을 갖고 외롭지 않게 해 주어야 한다.
슬프게 하고 실망을 안겨주었다면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서 기쁨을 주고 희망을 줄 수 있도록 해 주어야 한다. 현실 탓으로만 돌릴 수는 없다. 환경 탓만 해서도 안 된다. 남의 탓으로만 돌려서도 안 된다. 오직 나의 사랑하는 방법의 미숙함 때문이라는 것을 알고 나의 사랑하는 방법을 바꾸어 나가야 한다.
덜 사랑했다는 변명만 늘어놓아서도 안 된다. 이제 더 이상 사랑할 자신이 없으니 내 곁을 떠나가라고 하는 것은 더욱 안 된다. 끝까지 내가 책임을 져야 한다. 내가 맡은 학생들을 끝까지 사랑해야 한다. 상처를 주었다면 상처를 씻어주고 눈물을 흘리게 했다면 눈물을 닦아주면 된다.
이제 내가 더 이상 사랑할 수 없다고 하면서 자포자기해서는 안 된다. 그런 자세는 교육자의 자세가 아니다. 이제 너의 길로 떠나가라고 하는 것도 교직의 임무를 포기하는 자세다. 내가 다시 시작해야 한다. 내가 다시 사랑해야 한다. 내가 다시 출발해야 한다. 처음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고 사랑하면 된다. 아픈 마음을 감싸주면서 다시 사랑해야 한다. 그러면 처음보다 나중의 사랑이 더욱 짙으질 것이고 그 사랑의 열매는 더욱 달콤할 것이다.
교육은 사랑이다. 그 사랑의 주체는 나다. 내가 상한 심령을 안아주는 역할을 해야 한다. 그러면 이별의 아픔도, 후회도 없을 것이다. 용서해 달라는 말도 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사랑한다는 이유만으로 변명을 만드려고 하는 것보다. 사랑한다는 이유만으로 교육에 대한 열정이 더욱 불타올라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