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너

2024.11.15 (금)

  • 맑음동두천 10.9℃
  • 구름많음강릉 16.0℃
  • 맑음서울 14.0℃
  • 맑음대전 13.2℃
  • 맑음대구 13.6℃
  • 구름많음울산 17.4℃
  • 맑음광주 14.1℃
  • 맑음부산 19.2℃
  • 맑음고창 11.3℃
  • 맑음제주 19.9℃
  • 맑음강화 12.4℃
  • 맑음보은 11.3℃
  • 구름조금금산 7.5℃
  • 맑음강진군 15.9℃
  • 구름조금경주시 14.7℃
  • 맑음거제 17.0℃
기상청 제공
상세검색

교단일기

구겨버린 용지 한 장 

“어이, 김 선생, 여기 급한 공문이 있어서 어서 작성해서 보내야겠는데, 얼른 해주어야겠어.”
교장선생님의 말씀이었습니다. 교장선생님은 김 선생님의 초등학교 4학년 때의 담임선생님 이셨습니다. 그래서 이제 교사가 되어서 돌아온 제자이자 바로 자신의 초등학교, 그리고 사범 고등학교의 후배이기도 한 김 선생님은 유난히 사랑하셨습니다.
멀리 남쪽 바닷가에 맞닿은 면의 외진 한 마을에 위치한 이 학교는 3개 리의 어린이들이 모여 공부하는 곳으로 12학급짜리 아담한 학교였습니다. 바로 김 선생님을 지금의 교장선생님이 담임하시고 계시던 4학년 때에 이 곳에 분교가 생겼었습니다.
그래서 지금까지 함께 다니던 후배들이 이제 이곳에서 공부하게 된다고 하여, 1,2학년의 아이들이 방앗간으로 쓰던 곳에서 기계들을 뜯어내고 임시 교실로 개조하여 공부를 시작하였었습니다. 그러던 것이 그 동안에 산밑에 자리를 마련하여 학교를 짓고 개교를 하여 벌써 10회 째 졸업생을 배출한 학교가 되어 있었습니다. 이 학교에 병아리 교사 티를 벗지 못한 김 선생님이 부임한 것은 2년 전이었고, 이제 은사님을 교장으로 모시게 된 것이었습니다.
교장선생님이 부임해 오시던 날의 풍경은 늘 많은 사람들의 이야깃거리가 되곤 하였습니다. 교장선생님이 부임을 하여 오셨지만, 변변한 음식점은 물론 밥 한 끼 먹을 곳도 없는 시골이라서 환영회를 마련할 만한 장소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학교 앞의 구멍가게에 부탁을 하여 닭이라도 한 마리 잡아서 점심을 준비하여 주시도록 부탁을 하였고, 그렇게 마련한 환영회 자리는 가게 안방에 간신히 모두 함께 앉을 자리를 마련하기 위해서 미싱이며 간단한 가구까지 들어내고서야 간신히 상을 차릴 수 있었습니다.
환영 인사가 끝나고 부임하신 교장선생님의 인사도 있었고, 이제까지 너무 늙으신 교장 선생님을 모시고 있다가 젊고 팔팔한 교장선생님을 모시게 되었다고 모두 흥겨워하면서 식사가 끝이 났습니다. 물론 술도 한 순배 돌았습니다. 요즘 같으면 어림도 없는 일이지만 그 무렵에는 당연한 일처럼 여겨지던, 식후 연초라고 담배들을 꺼내어서 피우시기 시작하였습니다.
김 선생님은 이제 교육경력 5년 차인 이 학교의 막내 교사입니다. 이 무렵에는 선생님들도 선후배 구별이 엄격해서 술자리에 가거나 학교 안에서도 언제나 나이 적은 막내는 심부름꾼처럼 선배님들의 일을 돌보는 것이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심지어는 술자리에 가면 무릎을 꿇고 앉아서 차례로 술을 따르는 것은 물론 안주 심부름 술심부름을 다 해야 하는 그런 시대였습니다. 그래서 선배님들 앞에서 함부로 담배를 피워 물 수조차 없었습니다.
더구나 김 선생님은 부모님이 사시는 이 고장이 자신의 고향이기 때문에 마을에서도 늘 조심스럽고 말 한 마디라도 함부로 할 수 없는 그런 형편이었기 때문에 아직 담배를 배우지도 않아서 피울 줄도 몰랐습니다. 그런데 교장선생님께서 담배를 꺼내어서 피우시려다가
“아, 김 선생, 자네 담배를 피우지? 자, 이제 자네도 같은 선생인데 담배도 피울 줄 알아야 하지 않나? 함부로만 하지 말고 오늘은 여기서 피우게.”
하시면서 담배를 권하시는 것이었습니다. 김 선생님은 귀밑까지 빨개지면서
“교장 선생님 전 아직 담배를 배우지 못했습니다.”
하고 말씀드리자, 교장 선생님은 그 말을 믿지 못하시겠다는 듯이
“자네, 나 때문에 피우던 담배를 끊으려고 하는 것 아닌가? 만약 그렇다면 나도 담배를 끊겠네. 나 하루 두 갑씩 피우는 사람인데 자네가 안 피운다면 나도 끊어야지. 자, 어떻게 하겠는가?”
당신 때문에 이제 교사가 되어 돌아온 제자가 혹시 불편해 하지 않는가 싶어서 이렇게까지 말씀하시는데 어쩔 도리가 없었습니다.
“선생님, 저 진짜로 담배를 아직 못 피웁니다. 정말입니다 믿어 주십시오. 그리고 저 때문에 담배를 끊으신다는 말씀은 하시지 마십시오. 본래 못 피우니까 그런 걱정<선생님 앞에서 피울 수 없어 안 피운다>은 안 하셔도 됩니다.”
하고 말씀을 드렸지만, 교장 선생님은 담배를 내밀면서
“어쨌든 오늘은 여기서 한 대 피워 보게. 이제 자네도 엄연한 사회인인데 학부모님을 상대하다보면 필요할 때도 있을 것이네.”
하셨습니다. 이제 더 이상 못 피운다, 안 피우겠다는 말씀을 드릴 수가 없었습니다. 김 선생님은 단정히 무릎을 꿇고 두 손을 내밀어 주시는 담배 한 대를 받으면서
“저 담배 못 피운 것을 선생님들이 다 아시는데, 그럼 받기는 받겠습니다.”
하였더니, 교장 선생님은 김 선생에게
“자, 그럼 피워 보게.”
하시면서 라이터를 넘겨주셨습니다. 김 선생님은 학생 시절 친구들과 장난삼아 한 모금 빨았다가 혼이 난 뒤로 입에 댄 적이 없는 담배를 은사님의 말씀에 따라 난생 처음으로 피워 무는 것이었습니다. 선배선생님들은 이런 김 선생님의 모습을 보고도 단 한 마디도 거들지 않고 지켜보기만 하였습니다. 모두들 속으로
‘저 막내 오늘 단단히 걸렸군. 어쩌나 한 번 보자. 정말 못 피운 걸까?’
하면서 정말 못 피우는 것인지 조심하느라고 안 피우고 살아 왔는지 확실히 알 수 없다는 생각으로 김 선생이 하는 짓만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사실 선배 선생님들은 대부분이 김 선생의 위로 두 분 형님의 친구 분들이거나 또래 연배가 되어서 김 선생이 조심스러워서 함께 담배를 안 피우고 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오늘 이 자리에서야 비로소 하게된 것입니다.
선배 선생님들의 이런 호기심 때문에 방안은 조용히 김 선생의 움직임만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정말 숨소리가 들릴 만큼 숨죽여 바라보고 있는 은사님과 선배 선생님들의 앞에서 김 선생은 몸을 돌려서 라이터를 “팍” 소리가 나게 켜고 확 타오르는 불꽃에 담배를 가까이 가져갔습니다. 입에 문 담배에 불꽃이 닿는가 싶은 순간에 김 선생은 천천히 담배를 빨아들였습니다.
권련 담배를 통하여 빨려 들어온 담배 연기는 김 선생의 가슴에 들어가기도 전에 목구멍에서 거부하였습니다. 매캐한 담배 연기에 놀란 목구멍에서 발작적으로 기침이 터져 나왔습니다.
“콜록, 콜올록, 카악 칵.”
김 선생은 숨이 넘어가는 것 같은 고통으로 눈물까지 흘리면서 한 동안 기침을 견디지 못하여 정신없이 기침을 해대었습니다.
이 모습을 본 교장 선생님과 선배 선생님들은
‘저 사람 정말 아직 담배를 안 피워 봤구만......’
하며, 이제는 담배를 피워 보라는 말을 해서는 안 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교장 선생님도
“김 선생, 미안하네. 난 정말 자네가 나 때문에 담배를 못 피운다고 하는 줄만 알았네.”
하시면서 물 잔을 권하면서
“물을 한 잔 마시면 좋아 질 걸세.”
하시면서 껄껄 웃으시는 것이었습니다.
이런 일이 있고 나서 간신히 담배를 피워 보라는 말씀은 안 하시게 되었지만, 늘 김 선생님은 담임이셨던 교장 선생님이 관심을 기우려 주신 것에 감사하고 있었습니다.
  




                         1970년 재직중이던 득량서국민학교 모습       

그러던 어느 날, 교장 선생님의 부름에 달려간 김 선생님에게 교장 선생님이 말씀하신 것은 급한 공문이 있으니 어서 공문을 작성하여 보내라는 것이었습니다. 국가적인 사업으로 추진 중에 있는 여러 가지의 일 들 중에서 공터를 이용한 생산물에 대한 보고를 하라는 것이었습니다. 학교 주변에 호박도 심고, 논둑에 콩을 심게 하는 등 농산물을 더 생산하게 하는 여러 가지 방법을 학교에서부터 시범을 보이라는 것이었습니다.
김 선생님은 학교에서 하고 있는 것들을 보고하기 위하여 기안 용지에 결재를 맞기 위한 서류를 작성하고 있었습니다. 기안을 마치고 나서 성안 용지에 옮기는 도중에 그만 간을 그리다가 잘 못 그어서 망치고 말았습니다. 김 선생님은
“에이 참, 이게 뭐 람. 또 망치지 않았어.”
혼자 투덜거리면서 버려진 성안 용지를 구겨서 쓰레기통에 던져 넣었습니다. 이것을 본 교장 선생님은 버럭 화를 내시면서
“김 선생! 그게 뭐 하는 짓이야. 지금 버린 것이 뭐지?”
김 선생은 의아해서
“네? 지금 버린 것이요? 망친 성안용지를 버린 것입니다.”
하고 말하자, 교장 선생님은 정색을 하면서
“김 선생, 그건 자네 개인 것이 아니야. 비록 종이 한 장이라도 그것은 국가의 것이지 자네 것이 아니야. 종이 한 장은 왜 함부로 버리는 거야. 당장 그 종이 한 장을 사다 놓아야 해. 자넨 지금 국가의 재산을 함부로 한 것이야. 자네가 무슨 권리로 그렇게 함부로 버린단 말인가? 당장 종이를 사다 놓도록 해. 알겠지?”
김 선생은 당황하고 어이가 없었으나 그것은 분명하고 맞는 이야기이었습니다. 김 선생은 교장선생님의 꾸중을 듣고서야 깨닫게 된 것입니다.
“네, 죄송합니다. 전 그렇게까지 생각하지 않고 그냥 이까짓 종이 한 장 그렇게 생각해 왔습니다. 이 공문 만들어서 보내고 곧 사다 놓겠습니다.”
김 선생님은 이렇게 말씀드리고 나서 서둘러 공문을 작성하였습니다. 공문을 작성하여 발송해주고 나서 학교 앞의 구멍가게로 가서 16절 갱지 10원어치를 사니까 4장을 주었습니다. 부지런히 학교로 돌아 와서 종이를 드리고 나서 교실에 들어가서 수업이 끝난 교실을 정리하면서 가만히 생각을 해봅니다.
‘이건 내가 미워서가 아니라, 공무원의 자세를 가르치기 위해서 이실 거야. 분명 그렇지 않다면 왜 그 까짓 종이 한 장에 대해서 그 만큼 화를 내시면서 기어이 사다 놓으라고 까지 하셨을 리가 없어.’
이렇게 생각을 하면서, 이제부터 학교의 물건이라고 함부로 하지 않겠다는 각오를 다지게 되었습니다. 별 것도 아닌 종이 한 장, 요즘 같으면 아무도 그런 소리를 할 사람도 없을 것이고, 그런 일로 신경을 쓰려고도 하지 않았을 조그만 것이 그처럼 꾸중을 들어야 하고 꼭 다시 사다 두어야 할 만큼 철저하게 가르쳐 주신 은사님이 어쩜 이 시대의 파수꾼이 되게 해주시려는 뜻이 아니었을까?
2003. 8. 25. 지난날을 되새기며

배너



배너


배너
배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