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처음으로 실시된 교원능력개발평가제(이하 교원평가)가 무사히 막을 내렸다. 평가 결과까지 모두 개인에게 통보되었다. 평가 결과에 대해 교직 사회는 기대와 우려가 엇갈린다. 학부모와 학생 만족도 조사는 참여 과정이 투명하지 못해 별로 기대를 하지 않는 분위기다. 그러나 일부 교사들은 동료 평가에 대해 내심 기대를 한다. 자신이 어떻게 평가받고 있는지 궁금한 것이다.
필자도 이런 마음이 조금 있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필자는 평가 결과를 받고 뜬금없이 이런 생각을 해 보았다. 우리는 살면서 올바른 생각을 하는가. 혹시 남을 평가해야 할 때는 공정함보다는 지극히 사적인 감정을 담고 있지는 않는가. 그리고 내 생각이 절대적이라고 잘못 생각하고 있지는 않는가. 이 말에 대한 답을 얻기 위해 장자를 인용해 본다.
제자가 한동안 지그시 그 나무를 지켜보다가 장석에게 달려와 물었다. “저는 도끼를 잡고 선생님을 따라다니게 된 뒤로 이처럼 훌륭한 재목은 아직 본 적이 없습니다. (그런데) 선생께선 거들떠보지도 않고 그대로 지나쳐 버리시니 어찌 된 일입니까?” 장석이 대답했다. “그만, 그런 소리 말게. (그건) 쓸모없는 나무야. (그것으로) 배를 만들면 가라앉고, 널을 짜면 곧 썩으며, 기물(器物)을 만들면 곧 망가지고 문을 만들면 진이 흐르며, 기둥을 만들면 좀이 생긴다. (그러니) 저건 재목이 못 되는 나무야. 아무 소용도 없으니까 저처럼 오래 살 수 있었지.”
장자의 ‘인간세’ 편에 나오는 글이다. 이 글에는 우리가 깨우치지 못한 역설이 있다. ‘제자는 스승에게 이것이야말로 우리가 찾던 훌륭한 재목이라며 도끼를 빼들었’지만, 목수 장석은 ‘아무 소용도 없으니까 저처럼 오래 살’수 있다고 가르친다. 이 글은 겉으로는 쓸모없어 사람들에게 버려진 나무를 비판하고 있는 것 같지만, 장자는 이를 통해 우리의 사고를 비판하고 있다.
우리 주변에 있는 나무는 절대적 가치가 있는 것이 아니다. 상황에 따라 쓸데없음과 있음이 달라질 수 있다. 이처럼 객관적 실제의 상대성과 변화의 절대성은 장자 철학의 출발점이다.
장자의 자연관뿐만 아니라 인간 사회의 모든 현상도 부단한 변화의 과정에 놓여 있다. 대상에 대한 절대적 판단은 그 자체가 모순이며 동시에 편견에 빠질 우려가 있다. 이번 교원평가의 항목을 예로 들어보자. ‘교육과정 분석을 통하여 교과 특성에 맞는 수업을 설계하는가?’, 혹은 ‘학년 및 교과 특성을 반영한 수업 계획을 수립하는가?’ 등등의 질문에 어떠한 판단을 내릴 수 있는가. 아무리 전문가라고 해도 그 판단은 분명 개인의 의견에 지나지 않는다. 그리고 그 판단의 결과는 절대적 가치를 지닐 수 없다.
하지만 우리는 그 결과 값에 절대적 가치를 인정하려 한다. ‘좋음’과 ‘나쁨’, ‘그런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의 이분법의 논리에 빠져 있다. 절대적 가치를 지니지 못하는 항목의 합으로 대상의 본질을 파악하려는 것은 위험한 사고다. 따라서 절대적 값이 없는 주어진 지표에 인상적 반응을 하는 형식으로 이루어져 있는 현재의 교원평가는 평가목적을 제대로 구현하기 어렵다. 현재와 같은 한정된 수의 몇몇 지표만으로 한다면 그것은 평가의 개념과는 차이가 있는 평정이라고 할 수 있다.
신뢰성이 확보되지 않은 평가로 학교 사회는 구성원 간의 신뢰가 무너지고 있다. 우스운 이야기 같지만 교사들은 공황 상태에 빠져 있다. ‘학생들의 발언에 경청하는가?’라는 질문 등에 절대적 평가 개념에 자신이 없어 ‘매우 우수’라고 했지만, 정작 본인은 모두 ‘보통’이나 ‘미흡’이라는 평가를 받고 충격에 휩싸여 있다.
물론 모든 일에는 일장일단이 있고 동전에도 양면이 있듯이 교원 평가는 선의의 참가자와 함께 악의의 참가자도 나온다. 그러나 현재와 같은 산술적인 평가에 의해 순위를 매기는 것은 아무리 편리해도 신뢰해서는 안 된다. 더욱 현재 학부모와 학생 만족도 조사 및 동료 평가는 객관성과 신뢰성이 없다. 그런데 이 결과로 격리 연수 운운하는 것은 발상 자체가 너무 어이가 없다.
교직 사회 구성원은 다양하다. 연령대, 남녀, 전공 그리고 수여받은 학위도 모두 다르다. 교사들은 저마다 교수 학습 방법과 학생에 대한 구체적인 지도 방법에서 개성을 발휘하고 있다. 다시 말해 교육은 어느 세계보다 복합적인 현상의 총체다. 이는 교직 사회만이 갖는 특징으로 학교 발전의 원동력이 된다. 그런데도 하나의 틀에 꿰어 맞추려는 현재의 교원평가는 교직 사회를 하나의 틀로 고정시키겠다는 의도다.
금번 교원평가는 정부에서 서두른 느낌이 있다. 교원평가는 시기가 중요하지 않다. 원칙적으로 교원평가에 대해 동의하지 않지만 꼭 해야 한다면 최소한 신뢰성만이라도 확보해야 한다. 신뢰성이 없는 평가는 조직의 긍정적인 변화를 가져오지 못한다. 오히려 갈등만 조장할 수 있으니 시기를 늦춰서라도 종합적인 점검을 할 필요가 있다. 끝으로 현재 교원평가는 교사다면평가와 겹치는 부분이 많아 낭비적 요소도 많다. 이에 대한 정비도 시급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