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일 결행된 2011년 예산안 통과를 보는 마음은 참으로 착잡했습니다. 다른 항목은 깊이 따져 보지 않아 뭐라고 할 입장이 못 되지만 방학 중 결식아동 예산을 한 푼도 책정하지 않은 것에는 분노를 금할 수 없어서 이 글을 씁니다. 우리 학교 아이들만 보아도 상당수가 결손 가정이거나 조손가정으로 방학을 하면 점심을 대충 먹거나 아예 집에서 식사가 힘든 아이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하루 중 한 끼 만이라도 제대로 된 식사를 하는 학교 급식이 없는 겨울방학은 그 아이들에게는 슬픈 시간이 분명합니다. 이와 같은 아이들이 전국적으로 얼마나 많을 텐데 방학 중 결식아동 지원을 더 늘여야 할 판에 아예 책정된 예산마저 없애버린 어른들의 처사를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요?
방학 중 결식아동 지원예산 0원 소식에 생각나는 분교장의 애환
엄연히 공무원인 처지로 대놓고 국가 일을 비판할 수는 없지만 교단 현장에 몸을 담고 있는 현직 교사로서 현장의 실태까지 외면하는 일은 리포터의 자세가 아니라는 판단으로 이 글을 씁니다. 결식아동 예산이 0원이라는 소식은 오래 전 분교장 시절의 애환을 떠올리게 합니다. 지금도 그 때만 생각하면 몇 년의 시간이 흘렀음에도 불구하고 화가 나니까요.
2년 동안 분교장부장교사를 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일은 학년 초 예산을 짜서 본교 교장 선생님의 재가를 받는 일이었습니다. 첫해 1년은 다행히 인정 많은 교장 선생님 덕분에 가난한 분교장의 실정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서 요청한 예산보다 더 많이 얹어주셔서 폐교의 어두운 그림자까지 떨쳐 내며 행복한 학교를 가꿀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다음 해 새로 오신 본교 교장 선생님은 분교 예산을 사사건건 트집 잡아서 뭉텅뭉텅 깎아내리기 시작한 겁니다. 마치 폐교를 기정 사실로 받아들인 것처럼 분교장의 어린이들에게는 모든 것이 불리하도록 일처리를 해 나가는 관리자 앞에서 분교장부장교사 업무를 추진하던 필자의 고충은 뒤로 하고 불이익을 당하는 아이들의 모습이 너무나 화가 났습니다.
그래서 투쟁 아닌 투쟁을 위해 내 나름대로 설정한 예산안으로 1년 간 몸부림을 치던 기억이 생생하게 떠올라 마음이 경직되어 이 글을 쓰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분교장부장교사로서 내가 생각해 낸 살아남기 전략은 이러합니다. 어떠한 경우에도 아이들의 학습권을 지켜주는 최저생계비, 즉 학습준비물은 단 1원도 깎지 않도록 지켜낸 것입니다. 겨울철 난방비인 기름 값은 깎아도, 복사용지를 최대한 아껴 쓰며 용지값은 깎을 때에도 참았습니다. 그러나 마지막 최저생계비인 1인 당 1만원의 학습준비물은 단 한푼도 깎을 수 없게 못을 박았던 것입니다.
학습준비물 품목을 보면서 항목마다 붉은 줄을 그으며 삭제를 종용하던 관리자에게, "교장 선생님, 그것만은 안 됩니다. 분교장 아이들의 최저생계비입니다. 추운 겨울에 덜덜 떨면서 추운 교실에서 공부를 할 망정 학습 준비물 없는 공부만은 시킬 수 없으니 손대지 마십시오." 라며 지켜 냈던 씁슬한 기억이 국회 예산 통과를 보면서 다시 살아난 것입니다. (유감스럽게도 그 분은 사도대상까지 받으셨으니, 더욱 기가 찰 노릇이라며 분개했던 선생님들의 목소리가 귀에 쟁쟁합니다.)
국격에 먹칠한 엉터리 국회, 아이들에게 부끄럽다
최소한의 규칙도 지키지 않은 채 힘의 논리로 밀어부치는 모습은 아이들에게도 부끄럽습니다. 예산안을 심의하고 토론하며 계수를 조정하는 일은 기본 중에 기본이라고 생각합니다. 한 번 결정되면 뒤집을 수도 없는 국가의 법이 한 순간에 날치기로 통과하는 모습은 배우는 아이들에게 은연중에 어른들을 무시하게 만드는 계기가 되기도 합니다. 민주주의의 기본은 결과보다 과정의 중요함에 있음을 배우는 아이들에게 국회의 모습은 부끄러운 어른들의 숨기고 싶은 모습이기에 더욱 안타깝습니다.
특히 가난하고 불쌍한 아이들을 더 생각해 주고 보듬어 주어야 할 국민의 대표인 국회의원들이 한참 자라나는 아이들이 제대로 먹지 못하고 굶는 결식아동의 방학 중 점심값보다 더 급한 예산이 뭐라고 그렇게 불이나케 통과시킨건지 변명조차 할 수 없을 만큼 부끄럽습니다. 언제까지 이런 모습을 보아야 하는지, 각계 각층에서 대한민국의 위상을 세계에 떨치고 있는데 국격에 먹칠하는 국회의 모습을 2011년도에는 더 이상 중계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강한 자에게 더욱 강하고 약한 아이들의 최저생계비엔 냉혹한 대한민국 국회의 부끄러운 모습을 어떻게 씻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