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고 싶지 않다. 마음 같아서는, 일상의 무료함에 지친 독자들을 생각해서 신문이 소설을 한편 멋지게 썼나 보다 생각하고 웃어넘겨 버리고 싶다. 그도 그럴 것이 한 초등학교 여교사가 밤 10시에 예고 없이 학부모의 집 초인종을 눌렀는데 웬 남자가 동행하고 있었고 어리둥절해 하는 학부모에게 결혼날짜 잡았다며 인사 시키고는 축의금 백만 원을 받아 갔다고 하질 않나, 가정통신 안내문에 교사의 집 주소를 적어 보내서 학부모들이 어리둥절하였다는 사례, 강남 일부 초등학교 촌지가 30만원에서 50만원씩 연 4회 정도 전달되고, 심지어는 명품 핸드백에 학원비 대납, 도시락 배달까지 요구하는 경우도 있다며, 촌지를 주었을 때 선생님의 태도 달라지는 것을 보며 이 땅에 살아야 하는지 탄식하는 학부모들이 많다는 보도를 보고 있노라니, 요즘 유행어로 참 '기가 막히고 코가 막혀서' 무슨 말을 해야 모를 지경이다.
교육 비리공화국을 파헤치겠다며 대문짝만하게 보도된 언론 기사가 사실이라면 이는 너무 충격적인 일이고, 설사 그 보도가 크게 과장되었거나 전혀 사실이 아니라 한들 다시 한 번 땅에 떨어진 교육의 신뢰를 회복하기란 쉽지 않을 성 싶다. 크게는 정권이 바뀌고 장관이 바뀔 때마다, 작게는 각 시도의 교육감이 바뀔 때마다 대규모 비리감찰반을 가동시키면서 무시무시한 사정의 칼날 뽑아들곤 하지만 뿌리 깊은 촌지문화는 여전하고 부끄러운 우리 교단의 독버섯으로 자라나고 있으니 그 근원적 해법을 어디에서 찾아야 한단 말인가.
슬프고 안타까운 것은, 여전히 어려운 생활여건과 열악한 근무여건 속에서도 교사로서의 사명과 책무를 다하며 한 점 부끄럼 없이 아이들 앞에 서고자 도덕적 사표로서의 긍지를 곧추 세우며 부단히 스스로를 채찍질하며 살아가는 절대 다수의 선생님들이 이번 일로 입게 되는 상처가 너무 크다는 것이다. 도매금으로 넘어가버린 명예와 자존심, 교사라는 이름을 가진 것만으로 왠지 죄인이 된 것만 같아 돌아서는 뒷모습에 아프게 꽂혀오는 냉소의 화살. 그렇잖아도 힘든 이 땅에서의 선생님 노릇이, 지금처럼 존경은커녕 한 가닥 사회적 신뢰마저 거두어졌을 때 그 설자리는 너무도 좁다.
고리타분한 교육론일지는 몰라도, 적어도 교육이 기계가 아닌 사람을 앞에 놓고, 그것도 미성숙한 아이들을 앞에 놓고 그의 영혼 속에 내재된 가치 있는 사람됨의 자질을 계발하고 높은 인격의 성숙을 도모하는 일이라면 교사와 학생, 교사와 학부모의 만남은 어떤 경우에도 이해타산을 초월해야 한다. 저자거리에서 마주치는 장사꾼들의 관계처럼 통속적 흥정과 거래가 오가는 가운데서 이루어지는 가르침은 교육이 아니라, 교육을 가장한 한낱 사술(詐術)에 불과한 것이기 때문이다.
공부를 조금 못 가르쳐서 불신 받고, 아이들 아껴주는 정이 조금 부족해서 불신 받는 일이야 교사들의 노력과 각성 여하에 따라 수업기술을 신장시키고 식어가는 열정을 추슬러 나가면 얼마든지 신뢰를 회복할 수 있다. 문제는 금품을 강요하고 촌지를 수수하는 것 같은 일로 교사가 교육자로서의 그 인격 자체를 의심받을 때 교육은 신뢰회복 차원을 떠나 존립 자체가 불가능하다는 사실이다.
우리 사회 구석구석이 아무리 혼탁한 먹이사슬 관계로 얽혀있다지만 교사와 학생, 교사와 학부모의 관계만큼은 사랑과 존경, 신뢰와 감사의 관계로 남아있어야 한다. 그래야 혼과 혼이 만나는 진정한 교육이 이루어질 수 있다. 차제에 교육당국을 비롯한 교육공동체 구성원 모두의 지혜를 모으고 제도적 보완을 통해서 밝고 깨끗한 교단문화와 청렴풍토가 조성됨으로써 학생과 학부모의 신뢰를 바탕으로 교육이 바로서는 날이 어서 오기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