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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단일기

"나는 너를 믿는다"

이 세상에 믿음(信)만큼 중요한 것도 없을 듯싶다. 믿을 신(信) 글자를 분석해 보면 사람과 말이 보태서 이루어진 것을 보면 사람의 말, 행동은 그만큼 중요함을 강조한 것이리라. 특히 개인주의를 넘어서 이기주의가 극대화된 요즘 세상에는 믿음만한 덕목도 드물다.

이런 믿음과 관련하여 필자를 올바르게 가르치셨던 은사 한 분을 소개하고 싶다.

이분은 필자가 대학 다닐 때 은사님이셨던 오광록 교수(현 건양대 석좌교수, 전 대전광역시교육감)다. 평소에는 무뚝뚝하시고 근엄한 표정이어서 섣불리 접근하기 어려웠었다. 은사님과 가까워진 계기는 역설적이게도 학생과 제자로서의 만남이 아니라 보직교수와 학생회장으로서의 만남이었다. 대학 3학년 때 학생자치기구의 장을 1년 한 적이 있었는데 학내 문제로 본관 측과 심한 마찰이 있었다. 연이은 학내 시위와 본관 진입 등으로 학생에게는 사형선고라고 할 수 있는 제적 위기까지 몰렸었다. 그러던 중 얼마 후 다행히 타협이 잘 되어서 문제가 해결이 되었다.

이후 4학년 때 공직에 뜻을 두고 짧은 수험기간을 거쳐서 졸업 전에 정보통신부에 들어갔다. 그런데 임용시험 필기 합격 후 신상명세서를 제출해야 하는데 그곳에는 신원보증인을 적는 곳이 있다. 대개는 가족을 제외한 주변 사람들을 적는데 어떤 용기가 났는지 용감하게 지도교수인 은사님 방문을 두드렸다. 자초지종을 말씀드리고 보증인에 서명을 부탁드렸는데 교수님 표정과 말씀을 지금도 잊을 수 없다.

“자네를 내가 어떻게 믿나?”

그러시더니 심각한 표정으로 담배를 하나 꺼내 무신다. 몇 번 연기를 내뿜으시더니 이렇게 말씀하셨다.

“자네를 믿겠네.”

그러시더니 아무 말씀 없이 서명을 하신다.

왜 안 그렇겠나. 아무리 제자라고 하더라도 어제는 얼굴 붉히며 싸웠는데 이제 와서 공직에 가겠다고 보증을 서 달라고 하니 어안이 벙벙하셨을 것이다. 나중에 교육행정공무원이 되고서 안 것이지만 교수님은 그때 대학의 보직교수인 기획처장과 함께 교육위원회 교육위원도 겸하고 계셔서 행동을 몹시 조심하고 계셨다. 섣부른 제자에 대한 보증으로 인하여 당신의 공직생활에 혹시 누가 될 것이라고 생각이 들었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필자를 믿어 주신 것이었다.

한때 우체국 공무원일 때 간간히 안부를 묻는 편지를 보내드렸는데 이를 매우 고맙게 생각하셨다고 한다. 이후에 적성에 안 맞아서 그만두고서 현재의 대전시교육청에 들어왔다. 그런데 이곳에서 또 교수님을 만나게 되었다. 10년 전 신규자 발령이 있던 날 인사담당자가 급히 필자를 찾더니 어디로 데리고 간다. 교육위원회 사무실에 들어갔더니 교수님이 그곳에 계신 것이 아닌가?

“아니, 백군. 자네는 우체국에 있는 것으로 아는데 어떻게 교육청에 왔는가? 신규자 명단을 훑어 보는데 자네 이름이 있어서 혹시 동명이인인가 싶어서 인사담당자에게 알아 보니까 자네가 맞다고 해서 얼굴 보려고 이렇게 불렀네.”

그러시더니 인사담당자와 총무과장에게 한 말씀 해 주신다. “내가 믿는 제자 중의 하나”라고, “아니 믿어도 되는 제자”라고 강조하시며 말이다. 당시에는 몰랐지만 그 한마디가 신규 공무원에게는 커다란 힘과 용기가 되었다는 것을 10년이 지난 이제야 느꼈다.

교수님이 사람에 대한 그러한 믿음을 짐작하게 해주는 내용이 있다.

당신께서 쓰신 수상록 '교육은 감동이다'에서 읽은 내용인데, 사람에 대한 믿음의 원천은 할아버지셨다고 한다. 할아버지는 학문으로 대성하지 않으신 촌로셨지만 교수님이 한 가정의 가장이 될 때까지 고비 때마다 짧지만 크고 작은 기침소리와 눈빛으로 암묵적이면서도 강렬한 메시지를 주시며 스스로 깨달을 수 있도록 했다. 한 번도 큰 소리를 내시거나 상스러운 말씀을 하지 않으셨고, 팥으로 메주를 쑨다 해도 ‘나는 네 말을 믿는다’고 항상 손자에 대해 변함없이 깊은 믿음을 주셨다. 또한 ‘나는 네가 희망이다’는 책임감을 북돋는 말로써 ‘교육은 감동’임을 체득하게 하셨다고 한다.

그러한 사람에 대한 믿음을 굳게 가지셨기에 말썽꾸러기 제자의 보증 서명에 두말 않고 응하신 것이리라 생각한다. 사람에 대한 믿음이 점차 사라진 세상이라고 말을 한다. 더욱이 부모와 자식 간에도 믿음이 없어서 볼썽사나운 송사(訟事)로 마음을 어둡게 하는 요즘이다. 하물며 스승과 제자간의 믿음은 또 어떠랴. 하지만 나는 믿는다. 사람에 대한 굳은 믿음이 마음과 세상을 따뜻하게 만들어 줄 수 있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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