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은 우리 선생님들에게 충전의 시간을 주는 것 같아 마음이 한결 가볍다. 오늘 아침은 상쾌한 아침이다. 하늘은 푸르고 푸르며 멀리 바라다 보이는 푸른 산의 나무들은 깊이를 더해가고 있다. 길가에 늘어선 나무들은 제철을 만난 듯 싱싱함을 더해간다.
오늘 아침은 네 부류의 지도자에 대한 글을 접했다. 우리 선생님들은 지도자인데 어느 부류에 속할까? 본인은 어디에 속할까? 생각해 보았다. 그리고 노자의 도덕경에 나오는 최고의 부류에 속하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최고의 지도자는 있다는 존재만 느끼게 한다. 그 다음은 친절하여 칭찬받는 지도자다. 그 다음은 그 앞에 서면 두렵게 만드는 지도자다. 그 다음은 뒤돌아서서 욕하는 지도자다”
노자께서는 최고의 지도자는 유지(有之)의 단계라고 한다. 지도자는 부하들이 느끼기에 ‘있다’는 정도만 느끼게 하는 것이라 한다. 그런 것 같다. 우리 선생님이 학생들에게 있다는 정도만 느끼게 하는 것이 학생들이 가장 평온하게 생활할 수 있을 것 같다. 지금까지 ‘우리 선생님 최고다. 우리 선생님 아니면 안 된다. 우리 선생님 멋지다. 우리 선생님은 무엇이든지 잘해…’ 이렇게 칭찬을 늘어놓은 선생님이면 최고인 것 같이 생각해 왔다. 그러면 최고의 선생님임에 틀림없다.
이렇게 되려면 선생님은 너무 피곤하다. 언제나 칭찬의 자리에 머물기 위해 노력에 노력을 더한다. 그래도 부족하다 싶어 진을 다 뺀다. 그렇다고 완벽할 수는 없다. 자기도 모르게 칭찬의 자리에서 벗어날 수 있다. 칭찬이 욕으로 변할 수도 있다. 그러면 학생들은 돌아선다. 학부모님들도 그 선생님을 믿었었는데 아니구나 하며 서운해 한다. 그러니 칭찬의 자리에 머무는 지도자는 그래도 상급의 지도자이지만 유지의 단계만 못한 것이다.
따뜻한 어머님이 우리 곁에 계시는 것으로 만족하고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것처럼 우리 선생님이 언제나 우리 곁에 계서 우리를 인도하고 위로하고 격려하며 잘 이끌어주시는 것으로 만족할 수 있는 선생님이 최고의 선생님이 아닐까 싶다. 그래야 오래 갈 수 있고 피곤을 막을 수 있고 만족을 느낄 수 있다. 유지(有之)의 단계가 최상의 단계라고 하신 노자의 말씀이 새롭게 들린다.
예지(譽之)의 단계는 우리가 늘상 바라던 최상의 단계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너무 칭찬받는 선생님만 되려고 애쓰면 피곤하고 힘들고 지치게 되니 그것을 최고의 단계로 여기지 않았으면 한다. 있는 것만으로, 옆에 있어주는 것만으로 만족해하며 기뻐하며 즐거워하는 선생님이 되면 좋겠다 싶다. 그 다음의 단계인 외지(畏之)의 단계는 ‘아니다’ 싶다. 학생들이 선생님만 계시면 무서워하고 두려워하며 열심히 하는 체하고 이중적인 모습을 드러나게 하는 것은 아니다 싶다. 학생들은 ‘우리 선생님 참 무섭다. 잘 해야지’ 하는 생각을 가지게 하면 학생들은 위압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진정으로 학생답게 활동하게 되는 것이 아니라 선생님을 의식해서 이중적인 행동만 하게 되는 것이다.
선생님이 학생들에게 무서운 존재로만 인식되게 하는 것은 학생들의 바른 성장에 큰 도움이 되지 않을 것 같다. 때론 무섭고 두려워하는 마음을 가지게 할 필요는 있지만 그것만으로 학생들을 잘 지도할 수 없다.
가장 ‘아니다’ 싶은 선생님의 단계는 모지(侮之)의 단계다. 학생들이 선생님을 존경하기는커녕 돌아서면 그 선생님을 욕하고 미워하고 선생님답지 않다고 입에 올린다면 정말 부끄러운 일이다. 그런 선생님은 어떤 일이 있어도 되어서는 아니 된다. 올라갈수록 좋다. 네 단계의 선생님 중 가장 마지막 단계만은 피해야 할 것 같다. 선생님에 따라 2단계부터 4단계까지는 좋은 선생님으로 인정을 받을 수 있지만 4단계의 선생님이 된다면 그것은 최악의 단계가 되고 만다. 좋은 선생님이 되기 위한 우리의 발걸음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