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다산 정약용에 대한 글을 접했다. 다산은 수필가요, 시인이며, 선비요, 실학자요, 정치가였다. 47세때 전남 강진으로 귀양을 갔다. 겨우 방을 하나 얻었는데 그 방의 이름을 ‘사의재(四宜齋)’라고 지었는데 이 말은 ‘네 가지를 마땅히 해야 할 방’이라는 뜻이다.
‘하나는 생각을 맑게, 또 하나는 용모는 엄숙하게, 다른 하나는 움직일 때는 무겁게 움직이고 끝으로 말을 함부로 해서는 안 된다.’였다. 이 네 가지를 꼭 지키겠노라고 다짐을 하고 또 다짐을 하였다. 스스로 반성하고 마음을 다스리기 위한 자기의 원칙을 정해 놓고 글을 배우러 오는 이게 글을 가르치고 자기도 공부하여 500여권의 저서를 완성하였다고 한다.
다산과 같은 마음가짐으로 학생들을 가르치면 빛나는 선생님이 될 것 같다. 생각을 맑게 한다는 것은 긍정적인 생각을 하겠다는 다짐이다. 귀양길에 올랐으니 왕도 밉고 신하도 밉고 그들을 죽이고 싶고 온갖 부정적인 생각으로 가득 찼을 것이다. 악하고 더럽고 추한 생각은 자기에게 도움이 되지 않음을 알고 오직 맑고 밝은 생각, 긍정적인 생각만 하고 살겠노라고 다짐했던 것이다. 제자들을 가르치고 열심히 공부만 하겠노라는 생각만 했다. 그러면서 많은 저서를 남기겠노라고 했다. 이런 맑은 생각이 500여권의 주옥같은 저서를 남기게 된 것이다.
우리 선생님들도 언제나 생각은 맑게 하고 긍정적인 생각으로 가득차면 좋을 것 같다. 부정적인 생각, 미워하는 생각, 나쁜 생각은 도움이 되지 않는다. 희망적인 생각, 착한 생각, 부드러운 생각, 참된 생각, 생산적인 생각으로 학생들의 가르침에 임하면 좋은 결과를 가져오리라 본다. 부정적인 생각은 파멸이고 긍정적인 생각은 생산이다.
다산은 용모는 엄숙하게 하겠다고 다짐했다. 용모를 단정하게 하겠다는 말은 정신을 바짝 차리고 자세를 흐트러지지 않게 해서 오직 찾아오는 제자를 가르치고 오직 공부하는 일에만 열중하겠다는 다짐의 표시였다. 허리띠를 졸라매고 오직 공부, 공부하는 일에만 열중하겠다는 것이었다. 용모단정은 마음의 각오를 나타내는 것이다. 조금도 흔들리지 않겠다. 앞만 바라보겠다. 오직 가르치고 배우고 하겠다. 조금도 흔들리지 않고 오직 배우고 가르치는 일에 열중하는 것은 우리 선생님들의 본분이라 생각된다.
또 다산은 움직일 때는 무겁게 움직이려고 하였다. 가볍게 행동을 하지 않으려고 애썼다. 지금은 죄인의 몸이지만 그래도 학자요, 선비요, 실학자요, 정치가로서 행동을 가볍게 할 수는 없었다. 자기가 구한 집이 주막집이라 매일 같이 손님들과 함께 술을 마시면서 신세타령이나 하고 술주정을 부렸다면 어떻게 되었겠는가?
선생님의 행동은 학생들에게 많은 영향을 준다. 바른 자세, 바른 행동이 필요하다. 선생님을 존경할 마음이 저절로 생겨날 정도로 행동을 가볍게 해서는 안 될 것 같다. 추한 모습 보이면 학생들의 머릿속에서 지워지지 않는다.
그리고 다산은 말을 함부로 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쓸데없는 말, 비방하는 말, 미워하는 말을 하지 않기도 다짐했다. 주막집에서 매일 같이 술타령 하고 임금님 욕하고 신하들 욕하고 말을 함부로 했다면 살아남았을 리가 없다. 어렵고 힘들수록 말을 함부로 하지 않으려고 했다. ‘다언삭궁’이라 말이 많으면 자주 궁지에 몰린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말의 인내, 말의 절제, 말의 훈련이 500여권의 저서를 완성하게 하는 밑바탕이 된 것이다.
우리 선생님들도 문제가 풀리지 않아도, 내 뜻대로 되지 않아도 불평하거나 원망하는 것은 좋지 않다. 그래도 참고 또 참고 말은 아끼고 또 아낄 줄 아는 지혜가 필요하다. 그러면 자신의 부끄러움과 수치를 면할 수 있다. 자신을 지키고 보호하는 길은 말에 대한 절제다. 언제나 아름다운 말, 좋은 말, 남에게 덕이 되는 말을 하면 자기도 살고 남도 산다. 다른 사람의 마음을 상하게 하는 말은 자기는 통쾌할지 모르나 상대는 죽이는 꼴이 된다. 자신도 결국은 말로 인해 한번은 당하고 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