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풍이 정말 무섭다는 걸 이제야 알겠다. 생명을 앗아가고 나무를 무너뜨리고 자연을 짓밟고 가고 마구 닥치는 대로 할퀴고 지나가는 태풍을 보면서 피해 없이 빨리 지나갔으면 하는 마음이 간절하다. 어찌 그리 시간이 길게 느껴지고 가지 않는지? 피해가 최소한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바람이 잔잔하니 살맛이 난다. 학생들도 걱정을 면케 되고 학부모님도 걱정을 면케 되며 선생님도 걱정을 덜게 되니 얼마나 기쁜가?
조선 중기의 문신이었던 신흠(1566-1628)의 한시를 한 편 읽었다. 신흠의 시에서 배울 점이 있다. 우선 내 앞에 펼쳐지는 걱정을 술로 해결하려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함을 가르치고 있다. 예전이나 지금이나 걱정거리는 떠나지 않았던 모양이다. 걱정을 떨쳐 버리기 위해 예전에도 요즘처럼 술로서 걱정을 달래보려고 하였다. 하지만 도움이 되지 않았다.
“믿지를 못하겠네. 인간의 술이 가슴속 걱정을 풀어낸다는 말” 인간의 술이 걱정을 풀어내기는커녕 오히려 건강만 해치니 소용없는 짓임을 일찍부터 깨달았다. 술은 걱정을 풀기 위한 방법이 될 수 없다. 신흠의 첫 가르침이다. 걱정거리가 태산 같아도 술로써 해결하려고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음을 알 필요가 있다.
다음은 답답한 일을 당하였을 때 술로 해결하는 것보다는 음악으로, 자연과 친함으로 해결하는 것이 바람직함을 가르치고 있다. “거문고 가져다가 한 곡조 타고 휘파람 길게 불며 언덕에 올라 천리 너머 먼 곳을 바라보자니 광야에는 쏴아 쏴아 몰려온 바람” 오늘 같은 태풍이면 곤란하겠지만 언덕에 올라 넓은 들을 바라보며 바람을 쐬는 것을 당면한 문제를 해결하는 좋은 방법임을 알 수 있다. 잘 타는 솜씨로 거문고를 가져다가 한 곡조를 타고, 잘 치는 기타로 한 곡을 뽑고, 잘 부는 트럼펫으로 한 곡을 연주하면서 자신의 마음을 가다듬고 답답했던 것을 풀고 문제를 해결하면 좋을 것 같다.
신흠은 작은 이익 때문에 아웅다웅 다투고 경쟁하고 시비하고 상처를 입고 입히고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음을 가르치고 있다. “현자도 바보도 끝은 같나니 결국에는 흙만두가 되어버리지 작은 이익 얼마나 도움 된다고 소란스레 다투다가 원수 되는가?”
지금까지의 삶을 되돌아보면 정말 어리석은 일 많이 했다 싶다. 어느 누구도 죽으면 끝은 똑 같은데 그것 깨닫지 못하고 앞서기 위해, 자랑하기 위해, 높아지기 위해 경쟁하며 다투며 지나온 날들이 부끄러울 뿐이다.
작은 이익을 위해 다투는 것도 어리석은 일, 자신을 유익을 위해 남에게 해를 끼치는 일도 어리석은 일이다. 이것을 일찍 깨달은 분이 바로 신흠이다. 지금도 남을 미워하고 시기하고 질투하고 흠집 내는 짓을 하고 있다면 신흠 선생님에게서 한 수 배워야 할 것 같다.
신흠 선생님은 그 때 당시 누구보다도 높은 경지에 이른 분이라 그분의 뜻을 이해하는 이가 없는 것 같았다. “그 누굴까 내 마음을 알아줄 이는” 그래도 조금도 서운해 하지 않고 어느 누구도 탓하지 않고 자신의 몸을 일엽편주 조각배에 몸을 맡기고 싶어 했다. 자연과 더불어 살고 싶어 했다. “머리 풀고 일엽편주 물에 띄우리” 가장 가벼운 몸차림으로 자신을 물과 친하고 싶어 했다. 자연 속에서 자신을 위로 받고 싶어 했다.
물이 자신의 마음을 알아주는 것을 알았다. 생명을 주는 물, 남을 이롭게 하는 물, 자신은 언제나 낮아지는 물, 언제나 말이 없는 물, 물과 친함이 행복을 누리는 삶임을 신흠 선생님은 깨달았다. 상선약수(上善若水) 즉 가장 좋은 것이 물임을 알았다. 가장 행복한 삶이 물과 같은 삶임을 알았다.
가장 바람직한 자세가 상선약수(上善若水)와 같은 자세임을 알았다. 언제나 겸손한 자세, 언제나 배우고자 하는 자세, 언제나 말이 없는 자세, 언제나 깨끗한 자세, 언제나 유익을 주는 자세. 이런 자세가 신흠 선생님이 우리에게 가르쳐 주시는 자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