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막내딸이 두 살 된 아들을 데리고 왔다. 사위의 새 차에 동승하여 울고 넘는다고 하는 박달재 옛길을 올라갔다. 황금송도 드문드문 보이는 소나무 숲이 우거진 도로를 굽이굽이 돌아서 정상에 주차를 하였다. 차에서 내리니 언제나 들려오는 ‘울고 넘는 박달재’ 노래가 구성지게 울려 퍼지고 있었다. 공원에는 조각품들이 잘 어울려 있는데 박달도령과 금봉이 조각 작품이 눈길을 끌었다. 길 건너편 조각공원에는 나무로 조각한 작품들이 여기저기에 보인다. 좌측으로는 거란군과 싸워 박달령을 지킨 고려의 김취려 장군이 말을 타고 함성을 지르는 동상모습이 위풍당당해 보였다.
아이들 장난감과 이 고장 특산품을 판매하는 가게를 한 바퀴 돌아보고 나오니 큰 물레방아가 맑은 물을 쏟아 부으며 힘차게 돌아가고 있었다. 옛날의 물레방아 정취를 느낄 수 있었다. 목각 수공예품을 만들어 큰 상도 받은 분이 육각정 아래 가게에서 목공예 체험과 판매도 하고 있었다. 장난감 자동차를 유난히 좋아하는 외손자는 트레일러처럼 만든 나무자동차를 쥐고 놓지 않는다. 장난감을 손에 쥐고 아장아장 걸어 다니는 모습이 귀엽기만 했다.
스님이 고목에 오백나한을 조각한 작품이 TV에 소개된 것을 보았다며 구경하고 가자고 아내가 말하였다. 차를 타고 백운방면으로 조금 내려가니 푸른색 포장을 씌운 것이 보였다. 차에서 내리니 작업장 안에서 스님 한분이 환하게 웃으시며 구경하라고 하셨다. 스님은 승복을 입고 조각 작품을 열심히 만들고 계셨다. 오백 나한전을 조각한 작품은 3년 6개월 동안 작업을 하여 완성했는데 작품을 전시할 공간을 마련하지 못하고 있어 임시로 포장을 씌워놓고 있다고 한다. 대형 정각(亭閣)을 조각공원에 짓게 되면 많은 관광객이 볼 수 있을 것이라고 한다.
천년의 세월이 지난 대형 느티나무 고목의 뿌리부분까지 빈 공간에 오백나한을 끌과 조각도로 새겼다고 한다. 조각한 솜씨가 예술의 경지를 넘어선 느낌이 들어 조각을 전문적으로 배우셨느냐고 여쭤보았더니 그냥 혼자서 시작하셨다고 한다. 아무리 타고난 재주가 뛰어나다고 해도 믿기지 않았다.
스님은 목각을 하며 수행을 하시는 것 같다. 바로 옆에 또 하나의 포장이 씌워진 것이 있었다. 목굴암(木窟庵)이라고 하는데 한사람만 엎드려 들어가서 한 가지 소원을 비는 곳이라고 하는데 역시 고목을 이용하여 만들었다고 한다. 입구에는 일인일실, 일인일원(一人一室, 一人一願)이라고 쓰여 있다.
작업장 앞에 큰 느티나무 뿌리가 하나 더 있는데 이것은 관세음보살상을 조각할 예정이라고 한다. 요즈음은 너무 더워서 선선한 바람이 불면 작업을 시작 할 계획이라고 하였다. 작업장 뒤편에 조립식으로 지은 거처하는 집이 보인다. 우측으로는 절처럼 보이는 건물이 있어 암자(庵子)냐고 여쭤보니 암자가 아니고 박달재의 전설을 지키는 ‘금봉이 박달이 사당’이라고 한다. 금봉(선녀) 박달(신선) 수호신으로 사당을 짓고 벽화, 현판 조각 등을 손수 그리고 만드셨다니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가족이 작업장 앞에서 구경을 하려고 하니 작업을 중단하고 나오셔서 많은 말씀을 해 주셨다. 종교에 대한 이야기로부터 목각작품을 종교차원을 넘어 하나의 문화로 이해해 주었으면 좋겠다는 의견도 피력하였다. 지방자치단체의 지원을 받아 조성되고 있는 조각공원이 우리의 전통문화를 감상하며 스스로 깨닫는 공간으로 가꾸어 나가고 싶다고 하였다. 전국적인 명성과 함께 박달재의 관광자원이 되도록 제천시의 적극적인 지원을 기대해 본다.
조각공원에는 스님이 조각하여 세운 박달도령과 금봉이 상을 비롯하여 장승과 해학적인 조각 작품들이 산책로에 세워져있고 전망대도 보였다. 이곳을 찾는 관광객이 아름다운 자연경관과 어울리는 전설어린 수많은 조각 작품을 감상하면서 테마가 있는 관광지로 가꾸어 갔으면 한다. 합천 해인사 문중이라고 소개하시며 남쪽지방 자치단체에서 오백나한전 조각품을 가지고 오면 정각을 비롯한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하는데도 박달재를 지키며 오늘도 나무망치로 조각을 하며 구슬땀을 흘리시는 스님이 한없이 존경스럽다는 생각을 하고 청풍으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