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부터 서술형․논술형 평가를 35% 이상 출제하라고 한다. 작년까지는 서술형만 30%였는데, 금년에는 비율이 늘고 논술형도 새로 추가됐다. 부담이 늘었다. 내년부터는 이 비율도 더 늘린다는 전망을 내놓고 있다.
현장에서는 조심스럽게 걱정을 드러낸다. 업무와 수업에 쫓기는 와중에 오랜 시간 채점을 해야 한다는 부담이 있다. 그리고 현재의 상대 평가 체제에서는 학생의 우열을 명확히 가려야 하는데, 논술형은 채점의 신뢰성 문제가 될 수 있어 걱정이라고 말한다. 선생님들이 논술형 문항 출제 경험이 풍부하지 않은 것도 이야기한다. 마지막으로 학생들이 논술 능력이 제대로 정착되지도 않았는데, 평가를 강행한다면 점수가 낮을 것이라는 우려도 있다.
이런 부분은 모두 근본적인 문제가 되지 않는다. 오히려 여기에 제시된 문제점은 해결 방안이 분명하게 제시된 꼴이다. 즉 출제만 잘하면 평가가 제대로 진행될 수 있다는 답이 담겨 있다. 그리고 교사는 전문가이다. 수업 전문가이고 평가 전문가이다. 논술 능력도 아주 기초적인 것이다. 이런 기초적인 능력을 교사는 충분히 기를 수 있다. 결국 평가에 대한 우려는 현장의 몫이라는 것만 명확해진 셈이다.
문제는 평가의 비율 및 형식 그 자체보다 이를 수업과 연계시키는 교육철학으로 해석해 내는 사고의 전환이다. 평가의 본질은 평가에 있는 것이 아니라 수업에 있다. 우리는 그 동안 단순 지식을 이해시키는 교육을 했다. 지식의 암기가 학습의 전부였다.
21세기는 세계화 정보화로 특징짓는다. 이 사회에서는 지식을 기억하고 재생하는 능력보다 사고력과 창의력, 문제 해결력 등의 능력이 중요하다. 이 시점에 학교 교육은 학습자의 다양한 개성과 잠재력을 키워줘야 한다. 그렇다면 암기 위주의 평가를 배제하고 사고력과 문제 해결력을 키우는 고등 정신 기능 중심의 평가로 전환하는 것은 당연하다.
2009개정 교육과정을 보면 이런 평가의 방향이 보인다. 현재 교육과정은 학생의 지나친 학습 부담을 감축하고, 학습 흥미를 유발하며, 단편적 지식․이해 교육이 아닌 학습하는 능력을 기르도록 하고, 지나친 암기중심 교육에서 배려와 나눔을 실천하는 창의 인재를 양성하는 교육으로의 변화를 추구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유의미한 학습과 전인적인 성장이 가능하도록 교육과정이 구성되어야 한다.
최근 경기도 교육청의 창의지성 교육도 마찬가지다. 지성교육은 비판적 사고력을 키우는 것이다. 비판적 사고력은 분석적, 추론적, 종합적, 대안적 사고 등을 말한다. 학력은 지적 능력과 정의적 능력으로 구성된다. 그러나 우리는 그동안 지적 능력을 키우면서 지식과 기능에만 치중한 측면이 있다. 비판적 사고력은 소홀히 한 것이다. 따라서 창의지성교육의 방법론으로서 수업에서 학생들의 자기 생각 만들기를 하는 것이다. 그리고 학생들의 창의성을 측정하기 위해 서술형․논술형 평가를 하자는 것이다.
평가의 본질은 수업의 질을 향상시키는 것이다. 남의 지식이나 생각을 외우는 것보다 자기 생각 갖기를 해야 한다. 자기 생각이 배제된 배움은 상상할 수 없다. 토론 학습, 협동 학습 등 참여형 수업을 확대해야 한다. 토론을 하고 글로 정리하는 과정이 연속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이 과정에서는 학생이 주체가 된다. 스스로 문제를 발견하고 해결함으로써 고등 정신 능력이 길러진다. 수업이 이렇게 진행되면 평가는 자연스럽게 서술형․논술형으로 간다. 이런 흐름이 일상화된다면 우리 교육은 역동적인 변화를 한다. 수업의 질이 높아지고, 교사의 전문성도 성장한다.
평가의 주목적은 피교육자인 학생들의 지적 정의적 측면의 모든 행동을 바람직한 방향으로 변화시킬 방법을 파악하는 일이다. 우리는 그동안 개인별 성적 비교를 위한 결과 평가에 치중했다. 이를 토대로 개인 성적표를 만들고 그 자료를 근거로 상급 학교 진학을 위한 내신 자료를 만들었다. 이러다보니 평가를 위한 평가, 시험을 위한 시험으로 고착화되었다. 결국 평가에 얽매이고, 경쟁은 갈수록 치열해지면서 교실은 정서적 갈등만 양산하게 되었다. 평가는 학습자의 다양한 개성과 잠재력을 키워주는 것이다. 그렇다면 결과보다는 과정 평가를 해야 한다. 결과를 중시한다면 굳이 서술형․논술형 평가를 할 필요가 없다. 현재 선택형으로 충분하다. 아는 지식을 평가하는 것이 아니라 알게 하는 지식의 힘을 키워야 한다.
교사들은 누구나 단순 정답을 외우고 선택하는 평가 방식은 사라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학생 개개인의 학습 경험과 성장을 강조하는 평가가 이루어져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현실론을 내세워 선뜻 행동을 변화하는 것을 주저한다. 사고의 변화도 꺼린다. 토론을 시키면 떠든다. 글을 쓰라고 하면 어려워한다. 이 문제는 학생을 아름답게 바라보는 사랑이 있다면 쉽게 풀린다. 박제된 지식을 줄기차게 외우게 하는 것보다 차라리 떠들게 하는 것이 낫다. 어려우면 내 아이라고 생각하고 차근차근 가르쳐주면 된다.
학교 현장에서 교사들은 늘 현실과 정책의 괴리 때문에 괴로워한다. 그러나 이번에는 아니다. 교사들이 늘 바라던 평가 방식이다. 교실에서 수업을 변화시키고, 그에 맞는 평가를 통해 올곧은 학교생활을 경험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