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학기가 열리는 3월 4일 손 전화의 벨이 울린다. 고석원이라는 이름이 뜬다. 반갑게 통화버튼을 누르고 전화를 받았다.
“선생님 ! 고석원입니다.”
“잘 있었나, 어디인가?”
“예 부산입니다.” 부산엔 어쩐 일인가?
“예, 부산대학교에 전임교수 발령을 받았습니다.”
“그래 잘되었다. 정말 축하하네!”
이사할 집을 구하기 위해 혼자 내려갔다고 한다. 나는 반가운 전화를 받고 가슴 뿌듯한 전율 같은 감동을 느꼈다. 내 자녀가 잘되었다는 소식보다도 더 기뻤다. 지금부터 33년 전 목계초등학교에서 3학년 담임을 맡았던 것이 인연이 되었다. 얼굴이 동그랗게 생겼고 눈동자가 또랑또랑했던 아이로 기억된다. 그 후 어떻게 성장하였는지 전혀 알지 못하고 있었던 2007년 여름방학에 아내와 함께 은행볼일을 보고 있을 때 처음으로 전화를 받았었다. 어디서 무얼 하며 지내느냐는 나의 물음에 의외의 대답을 들었다.
“선생님 덕분에 그림을 그리고 있습니다.”
초등학교 때 선생님의 칭찬을 듣고 화가가 되려고 그림공부를 열심히 했다고 한다. 2007년 제26회 대한민국 미술대전 서양화부문 대상을 받았다며 이렇게 큰상을 받은 것이 선생님 덕분이라는 말을 듣고 나는 어리둥절하고 말았다.
나 때문에 화가가 되어 미술대전에서 대상까지 받았다는 것이 믿어지지가 않았다. 나는 갑작스런 제자의 반가운 소식을 듣고 선생님이 된 것이 보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축하한다는 말만 몇 번을 해주었고 나를 잊지 않고 찾아서 기쁨을 전해줘 고맙다는 말을 하며 전화를 끊었다. 집에 돌아와서 검색창에서 ‘고석원’이라는 이름 석 자를 치니 제26회 대한민국미술대전 서양화부문 대상을 받았다는 뉴스 기사가 떴다.
작품도 사진파일로 올라와 있고 약력도 볼 수 있었다. 미술 분야 명문대학인 홍익대학교대학원에서 박사과정을 밟고 있으며 고등학교 교사로 재직하고 있었다. 나는 너무 기쁜 나머지 제자에게 다시 전화를 걸어 좀 더 자세한 이야기를 나눴다. 그 후 가끔 안부전화를 하였고 연말연시에 연하장을 보내주며 사제의 정을 나누는 사이가 되었다.
충주에서 치과의사를 하는 남자제자와 대구에서 교감을 하는 여자제자는 업무관계로 나의 정년퇴임식에 늦게 참석하겠다는 연락을 받았다. 하는 수 없이 고석원 제자에게 사은사를 부탁했는데 30여 년 전의 이야기를 꺼낸다. 미술시간에 그림을 잘 그린다고 하며 이다음에 커서 훌륭한 화가가 되겠다고 재능을 칭찬해 주었다고 한다. 그리고 충주에서 미술대회가 있어 시외버스를 타고 나갈 때 석원이를 무릎에 앉혀서 격려의 말로 재능을 인정해 주어서 화가의 길을 걷게 되었다고 어린 시절을 회고하며 감동을 주는 사은사를 하였다.
정년퇴임기념으로 책을 만들어 출판기념회도 겸했는데 책의 표지그림도 고석원 제자의 그림을 넣었다. 멀리 포천에서 정성 드려 그린 그림 한 폭을 들고 와서 퇴임선물로 받았다. 41년의 정들었던 교직을 떠나는 자리에 가장 큰 보람을 느끼며 교직을 마무리한 것을 지금도 자랑으로 생각하고 있다.
교직생활을 회고해보면 어린아이들 마음에 상처를 주는 말을 한 적은 없는지 후회 섞인 걱정도 해본다. 기억도 희미한 제자가 나의 칭찬 한마디에 미술계에 주목을 받으며 국립대학의 교수가 되었으니 이 보다 더 큰 보람이 있을까? 그러나 나의 칭찬 한마디는 숨어있는 재능이라는 씨앗의 싹을 틔웠을 뿐이라고 생각한다. 그 싹이 잘 자라도록 물을 주고 거름을 주며 햇볕을 받으며 튼튼하게 자라 결실을 맺는 데는 더 많은 선생님들의 가르침이 있었기 때문이다. 부모님의 뒷받침과 본인의 꾸준한 노력의 소중한 꿈을 이루었다고 생각하면 선생님 덕분이라는 말은 나 혼자서 들을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새 학년 새 학기를 맞이하여 전국의 수많은 교실에서 선생님과 학생들이 인연으로 만났는데 칭찬과 사랑으로 타고난 재능의 싹을 틔웠으면 하는 소박한 바람을 가져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