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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탐방

부모라는 이름으로 사는 남자-엄마도 상처받는다를 읽고

고등학교에 다니는 딸은 요즘 들어 제2의 사춘기가 오는지 외모에 대해 무척 예민하다. 등교시간이 가까워오는데도 거울 앞에서 머리를 만지느라 떠날 줄을 모른다. 그만하고 빨리 밥 먹고 학교에 가라는 내 잔소리에도 묵묵부답이다. 속이 새까맣게 타들어 가는 것은 나뿐이다. 거듭되는 나의 채근에 마지못해 퉁명스레 "네-" 하곤 밥상머리에 앉는다.

이 같은 사례는 분명 우리 딸만의 이야기는 아닐 것이다. 다른 부모들도 다 겪는 흔한 얘기일 것이다. 우리들 클 때하고 요즘 아이들은 모든 면에서 확실히 다른 것 같다. 내 어린 시절을 회상해보건대 부모님 말씀이라면 절대적인 것으로 알았고, 그 말씀을 거역한다는 것은 큰 불효로 생각됐기에 거의 무조건적으로 따랐다. 물론 그 말씀의 옳고 그름을 떠나서 말이다.

하지만 요즘 아이들은 다른 것 같다. 부모님 말씀을 그리 중하게 생각하지도 않으며 매사 힘들여 노력하는 모습도 보이지 않는다. 삶에 욕심도 없고 즉흥적이고 찰나적이고 반항적이다. 책을 읽기 보다는 운동이나 게임에 몰두하는 경향이 강하다. 물론 우리 부모세대와 자라온 생활환경이 다르고 사고방식과 가치기준이 달라서 그런 것이라고 백 번 이해한다손 치더라도 부모 된 입장에선 정말 분통이 터질 일이다. 그러다 보니 매사 아이와 부딪히게 되고 그 과정에서 본의 아니게 부모들은 큰 상처를 입게 되는 것 같다.

요 며칠 동안 나는 딸아이 문제로 깊은 시름에 빠져있다. 성적은 점점 떨어지고 공부에 대한 취미와 흥미도 사라지는 듯해서이다. 지난밤에는 참다참다 연예인들에게만 신경 쓰는 딸과 새벽까지 오랜 시간 대화를 나눠보았지만 나와 딸과의 입장차이만을 확인했을 뿐, 별 신통한 해결책을 찾지 못했다. 그래서 기분이 우울하던 차에 학교 도서관에서 이 책을 발견하게 되었다.

제목을 보니 '엄마도 상처받는다'였다. 우선 제목에서 내 모습을 발견할 수 있어 큰 흥미가 느껴졌다. 프롤로그를 보니 저자가 20년 동안 소아정신과 아동상담센터의 전문상담가로 활동하면서 느꼈던 생각과 사례들을 책으로 엮은 것으로, 나와 같은 고민을 하는 부모들에게 큰 도움이 될 것 같았다.

첫 장부터 차근차근 읽어가며 그동안 나 자신의 생각과 행동이 과연 우리 딸아이에게 옳은 행동이었는지 다시 한번 생각해보았다. 딸아이는 나에게 늘 아빠의 삶을 나에게 주십시키지 말라고 반박했었다. 그럴 때마다 나는 딸에게 너를 위해서 하는 잔소리라며 호통을 쳤었다.

"이 녀석아, 좋은 대학에 들어가면 네가 좋지 내가 좋니?"

"공부해서 엄마, 아빠 줄거니? 다 너 잘되라고 하는 소리야!"

하지만 저자는 부모들의 이런 이중적인 마음을 교묘하게 꼬집어 내고 있었다. 그랬다. 나는 딸에게 잔소리를 할 때마다 내 내면의 불만족이나 내가 이루지 못한 꿈을 은연중 딸에게 강요하고 있었던 것이다. 오죽하면 고3 수험생 아들이 엄마를 살해하는 끔찍한 일까지 벌어졌겠는가. 세상에서 가장 행복하고 사랑스러워야할 부모자식간의 관계가 어쩌다 이 지경에까지 이르렀는지 모르겠다.

이런 패륜은 아이의 잘못이라기보다는 우리 어른들의 잘못이 더 크다는 사실을 나는 책을 읽으며 깨달았다. 우리 어른들은 자녀를 교육할 때 모든 사고의 틀을 기성세대의 룰에 맞추어 주입하려다보니 반항심이 생기고 각종 부작용이 나타나는 것이리라. 때문에 우리 부모들이 조금만 더 희생하고 이해해야 된다고 작가는 주장하고 있었다. 작가의 말에 나 또한 전적으로 동감한다.

그래서 나도 오늘부터 딸에 대한 내 욕심을 한 가지씩 내려놓기로 결심했다. 주말에 오후 늦게까지 잠을 자도 얼마나 피곤하면 저럴까 생각하며 깨우지 않기, 칭찬을 받은 아이를 원하는 대신 손가락질만 받지 않아도 행복해 하기, 항상 손에서 책을 놓지 않는 모범생 대신 휴대폰을 달고 사는 아이를 이해해주기, 의자에 구멍이 나도록 책상에 앉아 공부하는 아이 대신 거실에 배 깔고 누워 깔깔거리며 텔레비전 개그프로를 보는 아이를 측은한 눈빛으로 바라보기, 하루도 거르지 않고 독서실에 가는 이웃집 아이 대신 컴퓨터게임을 한시간만 하는 아이를 대견하게 여기기 등등.

이렇게 결심을 하고 나니 나도 이영민 작가님처럼 우리 아이가 비로소 객관적으로 보이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신기하게도 딸아아에 대한 신뢰감 비슷한 것이 생기기 시작했다.

책 내용 중에 어떤 아이가 자기 휴대폰에 엄마 전화번호를 '미친년'으로 저장했다는 부분을 읽으며 큰 충격에 빠져 한참 동안 멍하니 앉아있었는데 책을 다 읽은 지금 왜 그 아이가 자기의 사랑하는 엄마를 미친년으로 저장할 수밖에 없었는지 조금은 이해가 간다. 자기 엄마를 미친년으로 저장해야만 했을 그 아이의 서글픈 현실이 가슴을 먹먹하게 한다.

지금 우리 사회는 다들 뭔가 큰 착각에 빠져있는 듯하다. 모든 가정이 행복해지려고 불철주야 노력은 하는데 아무도 행복하다는 사람은 없으니 말이다. 그렇다면 생각을 약간 달리해보면 어떨까. 우선 억지로라도 우리 모두 행복해지자. 그러면 자녀도 엄마도 아빠도 다 성공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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