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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언·칼럼

말하기 방법보다 내용이 중요하다

사범대학 국어교육과를 졸업하고 줄곧 고등학교에서 국어를 가르치고 있다. 햇수를 따져도 25년을 넘겼다. 오래 한 것으로 치면 뒤지지 않는다. 그러나 그 동안 국어교육을 제대로 했냐고 하면 마음이 무겁다. 이 시점에 국어교육이란 무엇일까. 답을 찾아본다. 국어교육은 말 그대로 국어를 가르치는 것이다. 국가에서 만든 교육과정에 근거하여 국어를 체계적으로 교육하는 것을 일컫는다.

국어의 개념도 찾아갈 필요가 있다. 국어라는 과목이 생긴 것은 1894년 이후 정규 학교 교과서를 편찬하기 시작하면서다. 이후 교육제에서 교과서를 편찬하면서 국어 교과서가 등장했다. 그러다가 다시 일제강점기에서는 국어가 일본어로 대치되고 우리 국어는 조선어 과목으로 전락하기도 했다.

국어는 말 그대로 이해하면 나라말이다. 그러나 이렇게 해도 마음에 차지 않는다. 우선 나라의 말이라고 하면 과거 우리나라의 역사가 걸린다. 우리는 고조선, 그리고 신라, 고구려, 백제의 역사가 있다. 그렇다면 어느 나라의 말을 국어라고 할지 애매하다. 우리가 써야 하는 국어라는 개념은 나라가 사라지는 나라말이 아니라 온 겨레가 함께 쓰는 말이어야 한다. 이래서 쓰기 시작한 말이 겨레말, 배달말(배달민족이 쓰는 말)이라고 했다. 하지만 이도 익숙하지 않다. 그래서 나온 것이 우리말이다. 우리가 오랜 동안 써 온 말이다. 이것이 자연스럽다. 그래서 지금은 보편적으로 우리말이라고 한다. 즉 국어교육은 우리말 교육이다.

그러면 우리말 교육을 제대로 했을까. 다시 말하면 국어교육을 제대로 했을까. 아쉬움이 남는다. 가장 큰 문제점은 기능주의적 관점이다. 언어 사용 신장이라는 활동을 기계적으로 반복하면서 국어교육의 흥미를 잃었다. 국어교육의 목표는 표준어를 바르게, 상급학교에 가서는 어법에 맞게, 효과적으로 혹은 분명하게 등으로 했다. 이는 교육의 수준에 관계없이 동일한 성격을 반복적으로 제시함으로써 학생들이 흥미와 기능을 잃어버리게 했다.

언어 영역을 분절적으로 구분한 것도 문제였다. 듣기, 말하기, 쓰기, 읽기의 구분을 마치 중요한 영역 구분으로 생각했다. 이들 사이에는 국지적이고 지엽적인 차이만 존재한다. 아니 오히려 듣기 말하기 등은 같은 상황에서 일어나는 언어 행위이다. 문학 교육을 할 때도 융합적으로 실행되어야 한다. 신이 아닌 이상 듣기 말하기를 분리해서 교육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말하기와 쓰기도 마찬가지다. 말하기와 쓰기는 그 매체가 음성언어인가 문자언어인가 하는 점에서 다른 것이지 표현이라는 언어활동의 구조는 동일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나눈 것은 기능의 동질성보다는 매체의 이질성이라는 외형적 측면에 주목한 것으로 해석된다.

이런 분절이 ‘국어사용 기능’이라는 목표로 설정되고 결국은 국어가 하나의 도구 교과로 전락했다. 도구는 물리적 개념이다. 언어는 도구로 남아 있지 않는다. 언어 사용에 의해 언어 표현이라는 실체가 생겨나고, 의미가 창조된다는 점이 다르다. 언어의 창조적 기능에 초점을 두는 교육이 미흡했다.

결국 우리 국어교육은 듣기, 말하기, 쓰기, 읽기에 몰입되어 있었다. 그러다보니 말을 잘 하는 법만 가르치고, 듣기, 쓰기, 읽기의 요령만 가르쳤다. 지금부터라도 국어교육의 방향이 바뀌어야 한다. 기능을 강조할 것이 내용을 담는 데에 초점을 두어야 한다. 말이란 주고받기도 하지만 우리 마음 안에 자리 잡고 있으면서 우리의 인격을 지우는 틀이다. 말하는 기능은 조금 떨어지면 어떤가. 그 내용에 진정성이 담겨 있다면 된다. 따라서 국어교육은 언어의 내용을 가르치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

두 살만 지나면 우리말을 유창하게 하는데, 정작 국어가 어렵다고 한다. 청소년의 비속어 사용 빈도도 예전보다 늘어났다. 이 모두가 언어 교육을 하면서 기능에 치우친 결과다. 무엇을 주고받을 것인가를 놓친 결과다. 주고받을 알맹이가 없다. 주고받을 수 있는 것을 챙기는 것 그것이 국어교육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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