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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언·칼럼

인문학 관련 학과와 학문의 위기

한국의 대학에서 인문학의 위기라는 말이 나온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최근 소위 문사철(文史哲) 학문이 위기라고 걱정하는 사람들이 많다. 철학과를 비롯하여 문학과, 사학과 등이 존폐의 위기에 몰리고 있다.

이와 각은 와중에 각 대학에서 구조 조정과 통폐합 등으로 소위 인문학 관련 학과들이 사라지고 있다. 학문의 귀천은 있을 수 없다. 하지만 학문의 성격에 따라 뿌리와 가지로 나눌 수는 있다. 뿌리는 기초학문, 가지는 실용학문으로 구분할 수 있다. 뿌리인 기초 학문의 으뜸이 곧 철학인 것이다. 

철학적인 규명을 거치지 않은 학문은 공허한 것이다. 모든 학문을 통틀어 어떤 이론도 그것이 참인지, 현실적 가치는 있는지 등의 문제를 검증받으려면 철학의 문으로 들어가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철학은 모든 학문의 근본으로서 아주 소중한 학문인 것이다. 인문학의 모든 학과와 학문이 마찬가지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근 각 대학에서 이와 같은 인문학의 학과인 철학과, 문학과, 사학과 계통의 학과를 없애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로 나누어 고찰할 수 있다.

첫째는 철학과 등 인문학 관련 학과 출신자들이 취업률이 현저히 떨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 요즘같이 삼팔선, 사오정, 오륙도라는 신조어가 횡행하는 취업이 어려운 시대에 인문학 관련 학과 졸업생들이 정규직으로 취업하기는 어렵다. 공문원 채용시험 합격도 녹록치 않다. 상대적으로 수월했던 국어, 영어 등 주 교과의 교사 임용시험 합격도 옛날 이야기가 됐다. 반면, 컴퓨터관련 학과, 미용관련 학과, 패션관련 학과, 뷰티관련 학과, 승무원관련 학과, 실용예술관련 학과 등 실용학문 중심의 학과들의 취업률은 상대적으로 높은 편이다. 이와 같은 실용 학문, 실기 실습 위주의 학과들의 학문적 뿌리는 얕을 수 밖에 없는 것이다.

특히 문사철 등 인문학 관련 학과들에 비하여 실용 학문 관련 학과들은 취업률이 상대적으로 높아 선호도가 높기 때문에 학생들이 몰리니까 대학에서도 이런 학과들을 개설, 증원하는 악순환이 계속되는 것이다.

둘째, 교육부의 대학 평가 기준에도 문제가 있다. 대학 평가 기준 중에서 졸업생 취업률은 매우 중요한 척도이다. 그런데 문사철 인문학 관련 학과 출신자들의 취업률은 낮을 수 밖에 없다. 이 대학 평가 기준이 개정되지 않으면 앞으로 더욱 인문학은 고사 위기에 몰리 것이라는 점은 명약관화한 사실이다. 졸업생 취업률만 놓고 보면 4년제 대학보다 전문대학이 훨씬 더 높다. 하지만, 4년제 대학과 전문대학의 교육 목표는 서로 다르다. 

근본적으로 뿌리 학문인 문사철 인문학은 돈과는 거리가 먼 학문이다. 예전에도 철학과는 ‘의식주와 거리가 먼 학과’였다. 예나 지금이나 철학은 현실과는 거리가 있다. 대학의 학과들도 마찬가지이다. 전국의 각 사범대학에도 대부분 교육학과가 있지만, 교육학과 출신자들이 ‘교육학’ 교사자격증으로 교사 임용이 되는 경우는 ‘가뭄에 콩 나듯 하거나 낙타가 바늘 구멍 들어가기’보다도 어려운 게 현실이다.

대부분이 교원들이 재학생인 교육대학원에서도 최근에는 교육공학 전공자들은 증가하는데, 교육철학 전공자들은 자꾸 감소한다는 걱정을 하고 있다. 교육철학을 전공하여 활용할 분야가 딱히 생각나지 않는 것도 사실이다.
철학은 모든 학문의 뿌리다. 철학은 기초 학문의 근본이다. 학문 중 최고의 학문은 누가 무래도 철학이다. 교육학에서도 교육철학이 기초 학문이다. 인문학도 자연과학도 그 정점에는 철학이 자리하고 있다. ‘사람의 문제’를 다루는 인문학이나 ‘사물의 문제’를 탐구하는 과학도 학문의 궁극적 기반은 철학이다. 철학이 없는 학문과 실용은 사상누각에 불과한 것이다. 대학의 전공학과로서 철학과를 비롯한 인문학 계통 학과가 사라지고, 교양 교과목에서도 인문학 계통 교과목들이 수강 신청되지 않는 푸대접 속에서 결국 인문학이 설 자리는 자꾸만 좁아질 수 밖에 없는 것이다. 

하지만, 대학에서 철학과 등 인문학 계통 학과를 없앤다는 것은 학문의 뿌리를 잘라내겠다는 거나 마찬가지다. 예전에는 ‘철학 개론’이 교양 필수 교과목으로서 대부분의 학생들이 이수하고 졸업하였다. 하지만, 현재는 기피 대상 교과목으로 홀대받고 있는 게 현실이다. 이러한 여파 속에서 미구에 삭막한 ‘인문학 부재의 시대’ 내지 ‘철학 부재(不在)의 시대’가 다가올 것이다.

대학은 졸업생 취업률 등 대학평가 기준과 지표가 한 대학의 전체 경쟁력을 떨어뜨리고, ‘대학 평가’에 불리하게 작용하면서 정부 지원을 못 받는 ‘부실대학’으로 전락할 수도 있다는 우려를 하는 것이다. 부실대학으로 낙인찍히면 학생 충원이 더 어렵고 그래서 대학이 더 부실해지는 악순환에 빠질 가능성도 있다. 인문학의 중요성을 모르는 바 아니나 대학이 생존하기 위해선 어쩔 수 없지 않느냐는 논리다. 철학이 ‘뿌리 학문'이긴 하지만 당장 먹고 사는데 도움을 주는 기준으로 보면 경쟁력은 떨어질 수 밖에 없고, 대학은 현실을 무시하고 교육과 경영을 할 수 없다는 논리이다. 이런 사정 때문에 인문학 관련 학과 폐지를 현실을 감안한 불가피한 선택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철학과 등 인문학 관련 학과 폐지는 신중해야 한다. 한 번 폐지된 학과를 부활하기는 참으로 어렵기 때문이다. 현실적으로 어렵기는 하지만, 미래를 위해 모집 정원을 줄여서 명맥을 이어가는 혜안을 발휘해야 할 것이다. 유사 학과 통폐합이라는 명목으로 교육 목적이 다른 학과를 묶어서 절름발이 학과를 개설하는 것도 숙고해야 한다.

외국의 많은 나라에서 철학을 고등학교에서부터 배우는 교육정책과 교육과정 운영의 함의를 성찰해야 한다. 따라서 정부의 ‘대학 평가’ 기준도 재고돼야 하고, 각 대학의 구조 조정 계획도 현실을 감안해 개선돼야 한다. 철학 등 인문학은 ‘밥먹고 살기’라는 현실보다 훨씬 깊고 높은 우리의 ‘삶의 가치’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실용 학문들은 눈에 보이기 때문에 돈이 되지만, 인문학은 보이지는 않지만 더 중요한 인간의 정신적, 내면적 가치에 관한 학문이라는 점도 유념하여야 할 것이다.

철학과 사학, 그리고 문학 등 인문학과 인문학 계통 학과들은 사회과학은 물론 자연과학에 포함되는 모든 학문과 학과를 떠받치고 있는 주춧돌과 같은 구실을 한다는 점을 유념하여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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