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교육부는 ‘일반고 교육역량 강화방안(시안)’을 발표했다. 이 방안의 핵심은 전국 39개의 자사고에 대해 앞으로 성적 제한 없는 ‘선지원후추첨’ 방식으로 학생선발 방법을 변경키로 했다. 따라서 이들 자사고는 2015학년도부터 평준화 지역에서는 중학교 내신 성적에 상관없이 자율형 사립고에 지원할 수 있게 된다. 이렇게 될 경우, 자사고는 학생선발권이 없는 등록금만 비싼 학교로 전락하게 될 우려가 있다.
사실 자사고의 문제에 대한 논의와 지적은 오래도록 계속돼 왔다. 지난 MB 정부의 고교다양화 정책의 수월성 강조와 자사고의 학생 선발은 궤를 같이 한다. 이번 시안 중 자사고에 대해 학생추첨형으로 학생 선발권을 부여하지 않는 것은 사립의 자율성 보장과 자사고의 설립 목적과도 배치되는 것으로서, 문제가 있다고 교육계는 지적하고 있다.
종래 특목고와 자사고가 성적 우수학생을 우선 선발해 일반고가 ‘잠자는 교실’로 전락하는 위기가 초래됐다는 점에서 자사고에 학생선발권은 부여하되 성적중심이 아닌 학생 개개인별 다양한 능력을 중심으로 한 선발방법으로 개선을 모색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으로 사료되고 있다.
물론 교육은 수월성과 평등성의 두 날개로 날아야 한다. 다만, 교육의 수월성이 부모의 경제력에 좌우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이야말로 부모의 재력에 근거한 현대판 대물림이다. 다양한 잠재적 능력이 탁월함에도 원천적으로 지원의 기회조차 박탈당한다면 이는 상대적 박탈로 공평한 교육에 위배되는 사안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현재의 자사고 등록금이 일반고에 비해 3배 이상 비싸 소위 ‘귀족학교’로 인식되고, 일반 학생들의 지원이 제한되는 구조부터 바꿔야 한다. 능력이 우수한 학생들을 모아 다양한 맞춤형 교육을 통해 미래 인재를 양성하고자 하는 교육의 수월성 취지를 살리기 위해서는 등록금을 일반고와 큰 차이가 없는 범위에서 혁신적으로 줄여 우수한 일반 중산층ㆍ서민층의 자녀들도 지원하고, 재학할 수 있도록 학교선택의 폭을 확대하는 방향으로 이번 교육정책을 개선해야 한다.
물론 만시지탄의 감이 없지 않으나 이번에 정부가 당면한 일반고의 역량 강화와 지원 방안을 제시한 것은 바람직하다고 본다. 다만, 현재 일반고와 자사고 문제는 자사고에 대한 특혜시비 등 상호 공정한 경쟁이 되지 못하고 있는데 그 원인이 있는 바, 고교교육력 제고를 위한 공정한 경쟁 시스템을 도입해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는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
따라서 현 고교체제에 대해 보다 장기적인 안목을 갖고 일반계 고등학교에 대해서도 학생선발권을 점진적으로 부여하는 정책 방안을 마련할 것을 촉구한다. 궁극적으로 자사고의 구조적 문제점은 혁신하되, 학생 선발권은 당해 학교에 부여하는 것이 ‘자립형’, ‘사립고’의 의의와 부합된다고 하겠다.
모름지기, 교육은 백년지대계로 정책의 일관성과 안정성이 중요하다. 교육부가 학생과 학부모 등 교육주체들의 교육선택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중요 정책을 조령모개,식 조삼모사식으로 바꾸는 것도 문제지만, 일반고가 위기라 해서 자사고에 학생선발권 박탈에서 해법을 찾으려는 정책은 다분히 근시안적이다. 정책입안 단계부터 현장모니터링을 통해 현장성과 지속가능한 경쟁력 있는 정책을 구안하고, 정책영향평가제 등 책임성 있는 정책을 펼치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사립학교는 재단의 건학이념에 따라 학교의 설립목적을 구현하려면, 그에 맞는 학생선발 자율권이 매우 중요한 관건인 바, 이를 없애고 건학이념 등 설립목적에 맞게 운영의 책무성만 강조하는 것은 권한과 책임의 균형점을 잃은 정책 방향이다. 또한 사립학교의 생명력은 자율성 존중에 있고, 자율적 운영에 대비 각종 비리 등 교육의 공공성을 훼손하지 않도록 책무를 확고히 하는 정책이 중요하다.
이러한 관점에서 자사고는 기본적으로 다양한 교육 선택권을 보장한다는 큰 골격을 유지해야 바람직하다고 본다. 다만, 지난 MB 정부 식의 자사고는 교육의 수월성 등 경쟁력 제고 보다는 학생의 수요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채 경쟁률 미달 등 사실상 실패를 예상할 수밖에 없는 문제를 안고 있었다는 점에서 객관적인 평가를 통해 새롭게 재정립해야 한다. 이러한 문제점 혁신에 자사고 교육 정책의 기본을 두어야지 학생선발권 박탈은 잘못하면 개선이 아니라, 개악으로 전도될 우려가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장기적으로는 사립학교 재단의 재정자립도 등을 감안한 엄격한 지정 과정을 출발점으로 삼고, 해당 학교의 자구적 노력도가 평가에서 존중되는 방향으로의 새로운 자사고 지정 및 평가 방식 변화가 필요함을 강조한다. 단, ‘자율성’을 자칫 운영의 편법으로 삼아 각종 비리를 양산하고, 공익성을 훼손할 경우 더 이상 국민들은 해당 학교뿐만 아니라 제도 유지에 대한 신뢰를 보내지 않을 것인 바, 특화된 교육활동 프로그램 개발 등 학생유치와 운영의 경쟁력을 갖출 수 있도록 끊임없이 연구하고, 학교운영의 투명성을 확보할 수 있는 시스템 가동 등을 통해 학부모와 학생의 신뢰를 이끌어내야 할 것이다.
자라나는 미래 세대를 대상으로 재력이 선택의 기준이 되는 수월성 교육은 있을 수 없다. 현재 자사고 등록금이 일반고의 3배 이상인 잘못된 등록금 징수 등 문제점을 개선해야 한다. 학생의 능력이 아닌 부모의 경제력 즉 ‘돈’이 자사고의 선택 기준이 되는 상황에서 고교다양화 정책으로 교육의 수월성을 강조한다면 이는 자사고의 지정 취지에 크게 위반되는 처사이다. 이로 인해 제도 자체에 대한 거부감 등이 확산되는 측면과 비싼 등록금이 학생과 학부모의 선택권 역시 제한하고 있기 때문에 일반고와 큰 차이가 없는 범위에서 등록금을 줄여야 한다.
다만, 자사고에 대해 교직원 인건비와 특화된 프로그램 운영에 소요되는 경비 등을 시도교육청에서 적극 지원하는 방식으로 개선해 등록금 인하로 인해 학교운영이 위축되는 문제를 개선해야 한다.
한편, 일반고도 교육활동 및 학업성취 노력도 중심의 평가지표 개발, 점진적으로 학생 능력 중심의 선발권 부여해야 한다. 현재 상대적으로 위축된 일반고가 경쟁력을 갖기 위해서는 일반계 고교의 학교장을 비롯한 교원들의 열정이 매우 중요하다. 학생의 입학단계별 성적, 적성, 능력 등을 고려한 다양한 학생맞춤형 진로 교육활동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인성과 창의성의 인재 핵심역량 강화 교육방법 개발 등 ‘명품 일반고’로의 경쟁력을 갖추는데 노력해야 할 것이다. 이러한 학교의 자구적인 노력이 평가받아 점진적으로 일반고도 학생선발권이 부여되는 교육체제로 나아갈 때 대한민국 교육은 상향식 평준화로 교육경쟁력을 갖출 수 있을 것이다.
결국 교육은 수월성과 평등성이 상극이 아니라 상생으로 나아가야 한다. 또 자사고와 일반고가 제로 섬 게임으로 경쟁하는 체제에서 벗어나 함께 윈윈(win win)하는 상향 평준화의 방향으로 나아가도록 교육정책의 입안, 지원 등이 뒤따라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