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방학이 깊어가고 있다. 엄동설한의 모진 추위가 때 아닌 영화열풍으로 훈훈해지고 있다. 방학을 맞아 평소보다 시간적 여유가 많아진 고등학생들이 영화 ‘변호인’에 빠져들고 있는 것이다.
학생들의 이런 반응은 정말 의외이다. 액션 영화도 아니고 그렇다고 달콤한 연애영화도 아닌 다큐멘터리 형식 같은 이런 영화에 매료되고 있는 것이다. 리포터처럼 1980년대 최루탄 가스를 맡으며 대학을 다닌 40, 50대도 아닌 어린 학생들이 변호인에 감동하다니. 하긴 심금을 울리는 감동에 어찌 남녀노소가 따로 있을 수 있겠는가.
리포터가 대학을 다닐 때에는 일 년 중 거의 3분의 2 이상을 데모에 시달려야 했다. 이념과 민주화 투쟁은 이미 일상이 되어있었고 최루가스는 일 년 내내 코끝을 맴돌았다. 그래도 누구 하나 불평불만을 말하지 않았다. 우리나라의 미래와 민주화를 위해 이 정도의 고생쯤이야 기꺼이 참을 수 있다는 강한 자부심이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데모의 ‘데’자도 모르고 자란 요즘의 고등학생들이 변호인에 열광하고 있다. 그 이유를 물었더니 무조건 재미있단다. 그렇다. 열광하는 가장 큰 이유는 바로 재미에 있었다. 재미는 곧 감동을 의미하며 카타르시스의 또 다른 이름이다. 송우석이란 속물 변호사가 인권 변호사로 거듭나는 과정이 그렇고 송강호의 연기가 소름끼치도록 강렬하기 때문일 것이다.
민주주의니 인권이니 하는 거창한 말보다 이 한 몸 잘 먹고 잘 살면 그만이라는 변호사 송우석. 오로지 내 가족 내 안위만을 걱정하며 어떻게든 돈을 벌어 호위호식하며 잘 살아보겠다던 속물변호사가 우연한 계기에 인권변호사로 변신하는 드라마틱한 과정이 학생들의 심장을 울린 모양이다. 물론 그것이 픽션이든 팩트이든 상관이 없다. 학생들은 그저 영화 속에 몰입되어 눈물을 흘리고 박수를 칠뿐이다.
학생들은 어쩌면 탈출구가 없는 답답한 현실에서 영화를 통해 자신들의 모습을 보았고 또 송우석이란 인물을 보며 대리만족을 했를지도 모른다. 다람쥐 쳇바퀴 돌 듯 24시간 학교, 집, 학원만을 반복하며 정형화된 삶을 살아가는 학생들에게 어쩌면 송우석의 자유와 인권에 대한 외침은 구원과도 같았을 것이다.
“변호사란 사람이 국가가 뭔지도 몰라?”
증인으로 출석한 고문 경감이 송우석에게 이렇게 윽박지르자 송우석이 이렇게 대답한다.
"압니다. 너무 잘 알지요. 대한민국 헌법 제1조 제2항!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그러므로 국가는 곧 국민입니다!"
학생들은 이 부분에서 아마도 이렇게 외쳤을지도 모른다.
"학교의 주인은 학생이고 모든 권력은 학생으로부터 나온다. 그러므로 학교는 곧 학생입니다."
학생들에게 있어 송우석은 단순히 영화 속에 등장하는 이상적 배우가 아니라 그들의 답답한 가슴 속을 대변해 주는 리틀 히어로인 셈이었던 것이다.
영화 ‘변호인’은 많은 사람들에게 쉽게 포기하면 찬란한 미래로 갈 수 없다는 사실을 웅변으로 알려주고 있었다. 그런데 영화를 보는 내내 한 가지 강한 의문점이 들었다. 그 때 그 사람들이 그렇게 피투성이가 되며 절실하게 쟁취해 낸 미래가 바로 오늘 일 텐데, 오늘을 사는 사람들 대부분은 행복하지가 않으니 역사는 참으로 아이러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