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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단일기

청소년기 자녀를 둔 부모에게

의존과 독립에의 갈등

둘째 채영이는 성정이 부드럽고 배려심이 많아서 친구들 사이에서도 인기가 많았고 나를 포함해서 우리 가족 모두도 채영이를 많이 사랑했다. 특히 할아버지, 할머니는 매사에 친절하고 늘 웃음띤 표정을 잃지 않는 채영이 사랑이 각별하셨다. 그렇게 사랑스럽던 아이가 어느날 갑자기 변하기 시작했다. 말이 없어지고 표정에서 웃음이 사라졌다. 세상과의 단절을 선언하듯 귀에는 이어폰을 꽂은 채 혼자만의 시공간에 몰입하는 모습은 한번씩 불쑥 불쑥 내뱉는 냉소적인 말들과 함께 예전의 채영이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낯설기만 한 것이었다. 난 이미 큰 아이를 키우면서 사춘기를 맞은 아이들에 대해 어느정도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었다고 믿었지만 채영이의 낯선 모습 앞에서 당황스럽긴 마찬가지였다. 부드럽고 따뜻한 아이여서 그런 모습이 더 도드라지게 느껴졌는지도 모르겠다.

청소년기의 발달과업중 하나는 의존과 독립에의 갈등을 원만히 해결하는 것이다. 청소년들은 신체적, 정서적으로 아직은 미숙한 단계이므로 부모에게 의존할 수 밖에 없다. 하지만 서서히 자아에 눈뜨기 시작하면서 부모로부터 독립하려는 심리적 이유기에 접어들게 되고 의존과 독립에의 갈등이 시작되는 것이다. 이 무렵 부모가 아이에게서 제일 자주 듣는 말 중의 하나는 ‘내가 알아서 할게’ 인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아이의 심리적 욕구를 민감하게 알아차리고 가정의 울타리를 조금은 융통성있게 조절하는 지혜를 부모들은 발휘해야 한다. 그렇지 않고 예전의 방식 그대로 간섭과 통제를 하다보면 아이들은 어느새 부모로부터 저만치 멀어져서 부모 자식간의 심리적 거리는 건널 수 없는 강이 되어 흐르고 멀어진 거리만큼이나 아이들과의 관계회복은 요원한 일이 될 것이다.

자꾸만 부모나 교사의 눈을 벗어나서 어긋나려고만 하는 아이들을 통제하거나 잔소리로 대응하는 대신 기다려주는 인내를 보여줘야 것도 이런 이유에서이다. 그래서 나는 학부모 상담을 하면서 이런 고민을 토로하시는 부모님께 내가 해 드리는 말은 늘 ‘조금만 더 기다려 주세요’ 였다. 물론 대부분의 부모님들은 내 말을 그다지 새겨서 들으시지는 않으셨지만 그래도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그것이 최선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끊임없이 기다려 달라고 당부하곤 했었다.

‘태어나려는 자는 한 세계를 파괴해야 한다’ 아이들은 자신만의 세계에 깊이 침잠해서 알을 깨고 나오려는 고통스런 시간을 보내고 있는 것이다. 긴 시간 동안 자신의 내면을 마주하고 성찰하는 시간의 통과의례를 거치면서 아이들은 기존의 유아적 세계를 깨고 좀 더 넓고 깊은 세계로 훨훨 날아갈 준비를 하는 것이다.

두 아이가 사춘기의 강을 힘겹게 건너는 걸 보면서 부모로서 마음이 많이 아팠지만 긴 기다림의 시간 덕분인지 다행히 두 아이는 무사히 그 강을 건너 한층 성숙해진 모습으로 내 앞에 서 있다.

나무는 겨울에 더 이상 성장을 하지 않는다. 춥고 긴 겨울 동안 성장을 멈추고 매서운 바람을 맞으면서 성숙을 위한 시간을 갖기 위해서이다. 우리 아이들도 사춘기 동안 잠시 성장을 멈추고 내면을 다지는 성숙의 시간을 가질 수 있도록 기다려주는 부모의 인내가 절실히 필요한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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