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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소식

사랑하는 딸에게(3)

비둘기의 죽음

2008년이었던 걸로 기억이 된다. 우리학교에 시인이신 국어선생님이 전입을 오셨다. 첫 인상이 날카롭고 예민해 보여서 한 눈에 봐도 예술가의 끼를 타고 나신 분 같았다. 나와 같은 부서였지만 연배 차이도 있고 그 분 특유의 분위기 때문에 친하게 지내지는 못했지만 아직까지도 잊혀지지 않는 기억이 하나 있다.

우리가 인천에 살 당시 엄마는 대부분 전철을 이용해서 출퇴근을 하곤 했었는데 그 날도 여느날과 다름없이 전철에서 내려 학교 앞 횡단보도에서 신호를 기다리고 있었다. 무심히 땅을 내려다보는 엄마의 시야에 비둘기의 시체가 들어왔다. 우리가 흔히 볼 수 있는 동물의 사체는 아니어서 순간 흠칫하긴 했지만 큰 감정의 동요 없이 신호가 바뀌자 서둘러서 학교로 들어섰단다. 학교 바로 앞에서 비둘기가 죽어 있어서인지 그 날 나와 같은 장면을 목격한 선생님이 여러 분 계셨다.

점심을 먹고 도서실에 일이 있어서 잠시 들렀더니 시인 선생님께서 나에게 시 한편을 주셨다. 제목이 ‘비둘기의 죽음’이었다. 시인께서도 그 날 아침 비둘기의 죽음을 목격한 것이었다. 출근길 아침 마주한 한 마리 비둘기의 죽음 앞에서 폭풍우처럼 밀려드는 감정의 파편들을 한 편의 시로 승화시키셨던 것이었다. 안타깝게도 엄마가 그 때 그 시를 간직하지 못하고 잊어 버렸지만 시의 내용은 아직도 엄마 기억속에 희미하게나마 남아 있단다.  비둘기의 죽음을 통해 유한한 우리의 삶을 돌아보고 죽음에 대해 성찰하는 내용이었던 것 같다. 

당시 엄마는 꽤 충격을 받았었다. 같은 장면을 보고도 사람마다 반응이 이렇게 다를 수 있을까 라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민감하지 못한 엄마는 비둘기의 죽음을 보면서 삶에 대한 통찰은 고사하고 징그러우니까 어서 그 자리를 뜨고 싶다는 지극히 단세포적인 생각밖에는 하지 못했었다. 하지만 시인의 감수성은 남달랐다. 길거리에 외롭게 죽어서 버려진 비둘기의 모습에서 자신을 보았고 더 나아가 외로운 우리 인간존재를 느꼈던 것이다. 우리 삶도 비둘기의 삶과 다르지 않을 것이다. 어느 순간 우리가 인식하기도 전에 제어할 수 없는 속도로 우리 삶을 훑고 지나가는 시간앞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으니까 말이다.

사무엘 베케트의 ‘고도를 기다리며’란 희곡은 실존주의 철학의 영향을 받은 작품으로 오지 않을 ‘고도’란 사람을 기다리는 상황을 묘사한 인간의 허무함을 파헤친 대표적인 부조리 극이다. 실존주의 철학자들은 말한다. 우리는 세상 속에 던져진 존재이며 세상은 낯설고 부조리하다. 부조리한 세상에서 삶이란 무의미하지만 그 속에서 자신의 존재를 긍정하고 세상을 향해 용기를 가지고 자신을 지켜나가자고 한다. 그래서 실존주의는 인본주의다.

비둘기의 죽음이 부조리하고 허무하게 느껴질 지라도 엄마는 그 속에서 또 다른 희망을 보는 실존주의자이고 싶다. 낯설고 부조리한 세상이지만 그럼으로 인해 역설적으로 삶이 더 의미가 있는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부조리한 세상을 인정하고 받아들일 때 인생이라는 영화의 피날레를 아름답게 장식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알고 있기로 라티노들은 열정적으로 놀면서 정열적으로 인생을 즐긴다고 알려져 있다. 그런데 의외로 이 사람들은 인생에 대해 비관적으로 생각한다고 한다. 우리처럼  인생은 장미빛 가득한 아름다운 여정은 아니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역경과 좌절이 와도 당연히 받아들이고 또 자연스럽게 극복을 하면서 순간 순간의 인생을 즐긴다고 하는구나. 라티노들의 인생철학이 실존주의 철학과 일맥상통하는 면이 있는 것 같지 않니?

영아야~ 네 앞에 펼쳐질 인생도 장밋빛 미래만 있는 건 아니란다. 험한 가시밭길도 건너고 높은 산을 넘어야 할 때도 있을 것이다. 인생에 대해 네 나름대로의 확고한 철학을 가지고 있다면 비록 장애물이 네 앞을 가로막더라도 슬기롭게 극복할 수 있을 것이다.

이제는 엄마도 한 마리 비둘기의 죽음에서 인생의 의미를 발견할 정도로 조금은 철은 든 것 같기도 하다. 더운 날씨에 건강 조심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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