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사회 트랜드 가운데 하나가 '통섭과 융합'이다. 그래서 교육분야에서도 문과, 이과의 통합이 중요한 과제로 대두하고 있다. 인문과 결합하지 않은 기술로는 충분하지 않다고 한 스티브 잡스의 말이 아니더라도 ‘통섭’하고 ‘융합’하는 균형 잡힌 인간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이를 위해 기술뿐만 아니라 인문학을 함께 이해할 수 있도록 최근 몇 년간 인문학 관련서가 쏟아졌고, 각 기관이나 대학에서도 인문학 관련 강좌를 수없이 개설하고 있다.
인문학이 마치 편향된 사회를 위한 만병통치약처럼 거론된다. 하지만 과연 어떻게, 어떤 식으로 중요한지 잘 설명해주는 사람은 별로 없다. 인문학은 정말 누구에게나 필요한 것이라는 인식은 아직도 거리가 있다. 누구에게든 갖다 붙이기만 하면 융합적 인간이 되는 걸까? '엔지니어의 인문학 수업'을 쓴 새뮤얼 플리먼은 이 질문에 단순하게 대답한다. 다른 사람은 모르겠지만, 엔지니어에게는 꼭 필요하다고 말한다.
저자가 인문학을 말해 주려 하는 대상은 바로 엔지니어, 공학도다. 엔지니어가 직업의 기술적인 측면에 집중하느라 균형 잡힌 인간이 되지 못하고 삶의 결핍과 불만을 느끼게 되는 것은 바로 인문학과 교양교육이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가 엔지니어에게 교양교육을 강조할 수 있는 이유는 그도 엔지니어이며 기술회사를 운영하고 있는 사업가이기 때문이다. 그가 말하는 교양교육의 장점은 첫째, 지적 역량을 향상하고 상상력을 넓힌다. 둘째, 리더십과 성공적인 경력에 도움이 된다. 셋째, 개인의 삶을 풍성하게 만든다. 넷째, 공학 직종의 위상을 높이고 사회에서 존경받도록 도움을 준다. 다섯째, 공공의 이익에 이바지하게 한다. 여기서 말하는 교양교육이란 서양 중세대학의 일곱 분과를 말하는데, 그중에서 엔지니어에게 부족하기 쉬운 역사·문학·철학·미술·음악을 공부하고 채워야 한다고 강조한다.
사람들은 돈 버는 방법에는 관심이 많지만 정작 생활하는 환경에는 둔감하다. 그래서 역사적인 건축물은 어느덧 거의 사라지고 새것이 그 빈자리를 메꾸어 간다. 역사가 온통 사라지는 것이다. 어느 신도시 공간구조를 디자인하는데 도시 가운데를 관통하는 도로가 있었다. 교통심의에서 인구가 많으니 차도를 넓게 하라고 지시가 내려졌다. 도로를 넓게 하다 보니 그다음 환경심의에서 차가 많아 시끄러우니 길을 따라서 방음벽을 만들라는 지시가 내려왔다.
두 차례 심의를 거쳐서 차는 안 막히고 집안에서는 조용히 지낼 도시는 만들어졌다. 하지만 도시 중앙으로 방음벽이 처진 도로가 관통하면서 도시는 두 동강이 나고, 집 밖에 나가서 걷고 싶은 거리는 하나도 없는, 사람이 살 만한 도시가 아닌 공간이 되어버린 결과를 초래한 것이다. 조각조각 난 심의 과정을 통해서 나온 결과물은 괴물이 되어버린 도시였다.
도시설계를 하는 목적은 사람이 살 만한 도시를 만드는 것이다. 이를 위해 교통, 환경 등으로 나누어서 관찰한다. 하지만 각 분야 전문가들은 자신들 분야가 가장 중요하다며 높은 기준치를 적용한다. 그 결과 최종 결과물은 엉뚱한 것이 나온다. 교향곡에서 바이올린, 첼로, 트럼펫 등이 모두 중요하다고 큰소리를 내면 소음만 될 뿐이다. 각 악기는 지휘자에게 제재를 받아야 한다. 교향곡의 목적은 아름다운 음악을 통해서 사람에게 기쁨을 주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여러 심의를 거치는 목적은 심의 자체가 아니라 행복한 환경이 만들어져야 한다.
변화가 급속히 이뤄지는 사회에서 지금까지는 하나의 우물을 파는 전문성이 매우 강조된다. 하지만 이에 못지않게 다양한 다른 분야를 폭넓게 공부하여 마지막으로 어울림을 이끌어 내야 한다. 이 어울림이 없이는 감동을 끌어내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러한 최종 산물을 결정짓는 것이 통섭과 융합의 시각이 필요한 시대이다. 이 바탕이 바로 학교 교육에서부터 축적되어 가야 한다. 인간은 물론 인간을 둘러싼 환경을 만드는 작업이 바로 교육에서 가능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