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탈출의 시대다. 돈과 빈곤층의 부유국으로 향하는 이주 행렬은 이 시대의 거스를 수 없는 현상이 되었다. 이민자들의 나라로 세계 최강대국이 된 나라는 미국이다. 많은 부국은 이주자의 나라인 경우가 많다. 부유국인 두바이는 애당초 급속한 이주를 성장동력으로 삼았다. 거주자의 95%가 비원주민일 정도다.
이제 한국 또한 170만명의 외국인이 거주 중이다. 30명 중 한 명꼴이다. 우리 나라가 다문화 국가로 가는 길목에서 어떤 정책이 요구되며, 아직 무엇이 문제의 해법인가 불확실한 시점이다. 앞으로 어떤 방향을 택해야 할 것인가 고민이 요구된다.
하지만 이주에 관한 도덕적 입장은 빈곤, 국가주의, 인종주의 등이 뒤섞인 복잡한 함수다. 단지 옳고 그름으로 판단할 수 있는 게 아니다. 경제학자들은 문호 개방을 선호하지만 시민들 사이에는 외국인을 향한 적대심이 널리 퍼져 있다. 이주정책을 결정하는 정치인들 입장은 유권자의 염려와 경제학자들의 모형 사이에 끼여 고민이 많다.
실제로 영국은 1950년대 이후 네 차례나 문호 개방과 폐쇄를 반복했다. 스위스 국민은 이슬람 사원 첨탐 건설 금지안을 국민투표에 부쳐 통과시키기도 했다.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나라 중 하나인 일본의 경우 이주에 완전히 폐쇄적이다. 넓은 홋카이도를 가보면 그 실상을 바로 볼 수 있다.
나라마다 이주자 선별에서도 다양한 모습을 보여준다. 학력 조건에서 호주와 캐나다는 미국보다 훨씬 까다롭고, 미국은 유럽보다 엄격한 편이다. 이처럼 전 세계 모든 국가가 공유하는 이주 문제를 어떻게 접근해야 할까. 세계적 경제학자인 폴 콜리어 옥스퍼드대 경제학과 교수가 쓴 `엑소더스`는 대규모 국제 이주에 관한 통찰을 담아낸 책이다. 그는 객관적 자료와 근거를 바탕으로 `이주의 요인, 유출국에 남은 이들에게 미치는 영향, 유입국 국민에게 미치는 영향`이라는 큰 질문에 대해 답한다.
빈곤국 국민이 부유국으로 이주를 감행하는 이유는 극단적인 세계 불평등 때문이다. 저자는 통계를 통해 부국과 빈국 간 경제적 격차가 커질수록 이주의 속도도 가속된다는 것을 발견한다. 이 밑바닥의 인구는 10억명에 달한다. 하지만 이주에는 `두 얼굴`이 있다. 극빈국의 젊은이들(주로 잘 교육받은 사람들)은 자국에서의 삶은 희망이 없으며 다른 곳에 기회가 있음을 깨닫고, 때로 가족의 전 재산을 털어 이주를 감행한다. 그로 인해 열 배 정도 소득 증가를 이룬다. 모국에는 송금 수혜와 교육열이라는 혜택도 준다. 선진국의 민주적 정치제도를 경험하고 돌아와 자국의 정치의식을 높이는 데 일조하는 것이다.
동시에 부정적 요소도 있다. 빈국들은 이주 때문에 고학력 인재를 잃게 되어 발전 기회를 빼앗긴다. 유입국은 이주민을 통해 부족한 노동력과 인구를 벌충할 수 있지만 공공재 확충 등을 위한 사회적 비용이 든다. 서로 융합되지 못하는 문화 사이의 충돌과 폭력도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
저자는 자유주의 사상가들의 "근대 서구 사회가 탈국가적 미래를 포용해야 한다"는 생각에 비판적 입장을 취한다. 만약 모든 이들이 국가를 넘나든다면 어떻게 될까? 아프리카의 다문화 사회는 약한 국가 정체성 때문에 부정적 여파를 분명하게 겪고 있다. 국제 이주로 아이티는 교육된 인구 중 85%를 잃었다. 결국 대규모 이주는 유출국과 유입국 모두에 손해이고, 부의 재분배도 제대로 이루지 못한다.
이주 문제에 대한 논쟁은 흔히 외국인 혐오와 국가주의를 바탕으로 전면 반대를 외치는 진영과 다문화주의와 세계적 불평등의 해결을 근거로 다문화주의를 외치는 진영으로 양분된다. 하지만 이 책의 결론은 `행복한 중간지대`를 찾자는 것. `이주가 좋은가, 나쁜가`보다는 `어느 정도로 개방해야 하는가`에 집중해야 한다는 조언이다.
저자는 교육 열기와 송금 수혜라는 유출국의 두 가지 이득이 최고점에 이르는 적정 수준의 이주율을 찾자고 주장한다. 확실한 이주 인구 상한선을 정하고, 더 나은 기준으로 이주자를 선별하는 방법을 통해서다. 이주의 규모와 성격을 통제할 수 있는 것은 결국 유입국의 정책뿐이다. 저자는 이 책을 "금기를 깨려는 시도"라고 말한다.
유럽, 미국, 아프리카 등 전 세계의 유출국과 유입국, 이주자와 원주민의 경제적 좌표를 정교하게 제시해 설득력이 높다. 유럽과 미국의 오늘을 통해 한국의 내일을 위한 지혜를 얻을 수 있는 책으로 다문화 정책 수립자나 다문화 교육에 관련 있는 학교에서도 미래를 성찰하는 책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