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 원서접수(8.25.~9.12.)가 시작되었다. 재학생을 포함해 졸업생들은 이 기간에 반드시 원서를 작성하고 접수해야 한다. 원서 작성 첫날, 1학년 때 담임했던 한 아이가 교무실을 서성거렸다.
처음에는 대학 개강을 앞두고 학교 선생님들께 인사차 학교를 방문한 줄 알았다. 그 아이는 지난해 서울 소재 모(某) 대학에 최종 합격하여 친구들의 부러움을 많이 사기도 했다. 반가움에 내가 먼저 아는 척을 했다.
"오랜만이네. 대학생활 재미있니? 개강은 언제?"
고교 졸업 뒤, 오랜만에 만난 모든 제자에게 늘 그랬듯이 틀에 박힌 질문을 하였다. 그러자 그 아이는 머리를 긁적이며 대답했다.
"선생님, 저 휴학했습니다."
그 아이의 대답에 휴학 사유가 궁금해졌다.
"휴학했다고? 그럼 군 입대? 집안에 무슨 일이? 아니면 어학연수?"
여타 아이들이 가기 힘든 대학에 입학했고 본인이 원했던 대학에 들어갔기에 그 아이의 휴학 사유가 될 만한 통상적인 질문 몇 가지를 연거푸 던졌다. 그러자 녀석은 내 추측성의 질문을 차단이라도 하려는 듯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
"학과가 적성이 맞지 않아 재수하려고요? 그래서 오늘 수능원서 작성하러 왔습니다."
순간, 재수한다는 녀석의 말에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리고 녀석은 재수하게 된 이유를 솔직히 털어놓았다. 문득 1학년 때의 일이 떠올려졌다.
사실 1학년 말 계열 선택으로 녀석과 갈등을 빚은 적이 있었다. 담임으로서 모든 면을 고려해 보건대, 인문계열에 적성이 맞는 그 아이는 의대를 원하는 부모님의 고집으로 결국 자연계를 선택했다.
그 이후, 자연계 공부를 하면서 적성이 맞지 않아 고민을 많이 했다. 나중에 안 사실이었지만 2학년에 올라와 전과문제로 몇 번이고 나를 찾아와 의논하고 싶었으나 죄송함에 차마 용기가 나지 않았다고 했다.
학기 초. 아이들의 경제와 시사상식을 쌓아주기 위해 경제신문을 구독하여 나눠준 적이 있었다. 내 취지와는 반대로 신문을 읽는 아이들은 거의 없었으며 심지어 읽히지도 않은 채 쓰레기 통으로 버려지는 경우가 많았다.
그런데 녀석은 신문에 나온 기사 하나하나 꼼꼼하게 챙겨가며 주요 내용을 스크랩까지하며 활용하였다. 그래서인지 우리 학급뿐만 아니라 1학년 전체에서 경제상식을 제일 많이 알고 있는 학생으로 소문나기도 했다.
여름방학을 앞두고 지원자의 'Know-how'를 아이들에게 발표했다. 그 아이의 영향을 받아 학급 아이들은 신문 읽는데 습관이 되었으며 읽히지 않고 버려지는 신문도 차츰 줄어 들었다.
평소 이와 같은 학습 성향으로 보아 녀석이 으레 인문계를 선택할 줄 알았으며 나 또한 인문계를 선택하라고 권유하였다. 이제야 녀석은 1학년 때 담임선생님인 내 말을 듣지 않고 적성에 맞지 않는 자연계를 선택하여 공부하느냐 고생을 많이 했다며 자신의 속내를 드러냈다. 그리고 그 어떤 선생님보다 자신을 정확하게 판단할 줄 아는 분이 1학년 때 담임인 나라며 내 말을 듣지 않은 것에 때늦은 후회를 하였다.
조금 뒤늦은 감이 있지만, 올해는 본인이 원하는 학과에 꼭 합격하여 그 아이의 꿈이 꼭 이뤄지기를 기대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