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선생님들은 수업에 어려움을 느끼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컨설팅을 의뢰한다. 그리고 새로운 수업 기술을 배우기를 원한다. 하지만 나는 오히려 선생님 수업 기술에 이러이러한 것이 좋다고 일러준다. 그러면 그들은 자신감을 갖는다. 어떤 선생님들은 마음속에 담고 있는 어려움을 쏟아내기도 한다. 이때도 해결책을 제시하기보다 그냥 한참 들어준다. 그 선생님은 미안해하다가도 응어리가 풀렸다고 고마워한다.
그런데 며칠 전에 나이 지긋한 선생님을 만났다. 경력도 제법 많은 선생님이 컨설팅을 의뢰해서 놀랐다. 그래서 다른 때보다 조심스럽게 정보를 나누었다. 그러더니 컨설팅 끝물에 내 손을 붙잡고 애원하듯 질문한다. 수석교사 생활이 궁금하다고 한다. ‘어떻게 힘든 것은 없나요. 저도 수석교사를 하고 싶어서요’ 하면서 속내를 털어놓는다.
사적인 자리에서도 이런 질문을 하는 선생님들을 몇 번 만났다. 대개 이런 선생님들은 본인 신상과 관련된 이야기이기 때문에 명확한 답을 원한다. ‘편하다, 힘들다’ 둘 중에 하나를 요구한다. 아니 은근히 편한 길이니 들어오라고 권유받고 싶어 한다. 그러나 이런 질문에 나는 대답을 못하고 머뭇거린다. 답을 알 수도 없어 그렇겠지만, 세상일이 두부 자르듯 구분되는 것이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답은 본인이 어떻게 하느냐에 달라지는 것이지, 정답이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이 문제에 답하기 전에 현 상황을 말하고 싶다. 수석교사제는 교육계에서 1981년부터 30여 년간 간절하게 원하던 제도다. 수업 전문성을 지닌 교사가 우대받는 교직 분위기 조정을 위해 법안이 만들어졌다. 교육부(당시 교육과학기술부)는 현행 1원화된 교원 승진체제를 교수 경로와 행정 관리 경로로 2원화 체제로 개편한 것이라고 홍보했다. 수석교사(master teacher)는 경력 15년 이상의 교사들이 지원하고, 선생님들의 교수·학습 지도 지원을 맡도록 했다. 올해로 도입 3년차다. 그러나 여전히 자리를 잡지 못하고 있다. 교육 당국의 지원 미비로 지위가 불확실하고 역할이 모호하다. 그러다보니 기존 학교 시스템에서 융화되지 못한 채 부유하는 모양새다.
가슴앓이를 심하게 하는 수석선생님은 학교에서 하루하루가 버겁다고 한다. 교수·학습 지도 지원의 업무 구조가 없으니, 일도 없고 능력도 발휘하지 못한다. 학교의 수직적 구조에 끼어들지 못하니, 하루 종일 침묵 모드로 지낸다. 소통이 단절되니 외톨이가 된 기분이 든다. 가슴은 답답하고, 어디 기댈 데도 없다. 그저 왕따 당하는 느낌이라고 한다.
이런 문제는 수석선생님이 업무적으로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구조가 아니기 때문에 생긴다. 한직에 몰려 있고, 조직에서 존재감이 없다. 당연히 영향력이 줄어들고 급기야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존재이다. 반면에 수석교사로 훌륭한 길을 가는 분도 있다. 높은 식견과 인자한 인품을 지니고 선생님들의 교육 활동을 지원하고 있다. 당당하고 떳떳하게 교육적 가치 실현을 위해 노력하는 선생님을 보면 우리 교육계의 발전 동력을 느끼게 한다.
사실 나도 수석교사의 길에 망설이다가 뛰어들었다. 이유는 내가 선생님들을 지원할 수 있는 자격과 역량을 갖추었는가에 대한 의구심 때문이었다. 하지만 모든 일이 조건이나 환경을 모두 갖추고 시작하는 것은 거의 없다. 목적을 갖고 떠나는 여행보다 정처 없이 떠나는 여행에서 많은 것을 느낄 때가 있듯이, 수석교사라는 길에서 새로운 것을 배우고, 나를 발견하기 시작했다. 수석교사로 늘 교직 생활을 성찰하며 가는 긴장감이 행복하다.
마찬가지다. 지금 수석교사가 되고 싶어 하는 선생님들은 혹독한 현실의 들판에 나선다는 생각을 해야 한다. 고난의 짐을 짊어지려고 해야 한다. 수석교사는 상시 수업 공개 등으로 누군가에게 보이고, 새로운 면류관의 무게도 감당해야 한다. 그러다보면 본능적으로 더 긴장하고 위축된다. 꽃방석인 줄 알았다가 가시방서임을 느끼고 괴로워하는 사람들도 있다. 역할은 힘들게 하지만, 결국은 초라한 조연일 뿐이다.
그러면서도 내 생각은 다른 구석도 있다. 수석교사제는 현재는 법령의 일부 미비한 시행으로 아픔이 있지만, 우리나라 교육계에 발전의 동력이 될 것임을 확신한다. 근대교육 이후 교직 체계의 변화로 미래 학교에서 가르치고 배우는 교육의 핵심 리더 역할이 기대된다. 그렇다면 막중한 사명감과 비전이 함께 해야 한다.
그럴 리야 없겠지만 혹시 명성을 얻고 편리함을 보장받기 위한 선택한 것이라면 수석교사의 길을 말린다. 아이들을 가르치고, 동료 선생님들과 희망을 만들어가겠다면 기꺼이 선택을 권한다. 새로운 교직 문화를 창출하기 위한 열정만 있다면 지금 망설임 없이 선택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