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개봉한 영화 ‘소리굽쇠’는 여러모로 ‘커다란’ 영화다. 규모만 따지면 제작비 3억8000만 원에 불과한 작은 영화지만 담긴 뜻이 크다. 국내에서 일본군 위안부를 다룬 첫 번째 극영화이다. 추상록 감독(배우 고 추송웅 씨의 아들)과 배우 조안 김민상을 비롯한 모든 스태프가 노 개런티로 참여했다. 김원동 아시아홈엔터테인먼트 대표가 사재 3억 원을 털었으며, 이 영화 수익금은 모두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을 위해 쓰인다고 한다.
배우 이옥희를 한국 사람은 잘 모른다. 그녀는 중국서 1978년 데뷔해 연극 공연과 TV 출연을 많이 했다. 2005년에 공적을 인정받아 ‘1급 배우’ 직함을 받았다. 중국 정부 국무원서 대중예술 종사자에게 내리는 것이다. 이 자격을 받으면 주요 국가행사에 참가하고, 은퇴하면 연금도 나온다. 조선족 동포들에겐 ‘수이러우(水肉·물고기)’란 별명으로 더 친숙하다.
연기를 40년 가까이게 연길 해왔지만, 영화 출연은 ‘소리굽쇠’가 처음이라고 한다. 출연을 마음 먹고 시나리오를 탁 보는 순간에 눈물이 멈추질 않았다는 것이다.
‘소리굽쇠’는 조선족 귀임 할머니와 손녀 향옥(조안)에 대한 얘기이다. 귀임은 일제강점기 방직공장에 취직시켜준단 말에 혹해 중국까지 끌려가 일본군 위안부가 됐다. 해방이 되고도 조국에 오질 못해 조선족으로 남았다. 애통한 생애지만서도 유일한 피붙이인 향옥이 삶의 낙이 되어준다. 근데 할머니를 고향에 모시겠노라 한국에 간 손녀도 운명의 장난에 휘말려 마치 하나가 울리면 공명하는 소리굽쇠처럼 기구한 삶이 이어지는 것이다.
아직도 가슴에 피멍이 맺혔을 이들에게 우리 세대, 우리 후손들이 어찌 고개 돌릴 수가 있겠는가? 연기하다 목이 메어도 물 한 모금 먹기도 쉽지 않고…. 그래도 촬영 내내 참으로 행복했다는 것이다. 물론 베이징서 차로 3시간 떨어진 과거 일본군 막사로 쓰였던 민가서 찍는데 몸 고생은 말로 못 할 정도였다. 근데 한국 사람들 원래 그런지 좋은 일 하는 이들이라 그런지, 친절하여 추위에 몸은 달달 떨어도 가슴은 따뜻했다는 것이다. 촬영 마지막 날이 마침 생일이었는데, 내도 까먹은 걸 한 맘으로 축하하는데 그런 정은 처음 느꼈다.
"소리굽쇠는 그렇게 정이 뭉쳐서 만든 영화임다. 내외 동포 모두가 잊지 말아야 할 얘기이다. 무엇보다도 위안부 할머니에게 조금이나마 보탬이 된다면…. 그리고 조금 더 욕심내자면, 향옥처럼 한국 와서 고생한 조선족 70만 동포에게도 위로가 되길 바란다. 지금은 처지가 많이 나아졌지만, 한때 가슴에 응어리 맺혀 돌아온 이들이 적지 않다."는 것이다. 극중에 향옥이 “한국에선 짱깨, 중국에서는 가오리방쯔(高麗棒子·한국인 비하하는 호칭)”라 되뇌는 장면이 있다. 열악한 처지에도 열심히 사는 연변 동포들, 한국이 많이 감싸주길 바란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