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오년 한해도 저물어가고 있다. 세모가 닥아 오면 자주 쓰는 단어가 “다사다난(多事多難)”이다. 온 국민의 가슴에 슬픔과 안타까움을 안겨준 세월(世越)호 사고를 비롯하여 수많은 사건과 사고가 기억에 남아있을 뿐 국민의 가슴을 시원하게 해주는 통쾌한 일은 드문 한해였다. 다른 나라들이 300년 걸쳐 이룩할 수 있는 경제 성장을 우리는 40여년 만에 고도성장을 하느라 정도(正道)를 걷지 못하고 부정부패의 그늘이 물질만능을 불러왔고, 인간성은 소외되거나 관심을 두지 않았다.
젊은 학생들 중에는 ‘10억을 벌수만 있다면 감옥에 가도 괜찮다.’는 생각을 한다니 한심스러운 일이 아닌가? 어떤 나쁜 짓을 해서라도 돈만 벌면 된다는 생각을 한다면 인성교육에 적신호가 켜진지 오래되었다. 분명히 너무 편리한 시대에 문명의 이기를 누리며 살아가지만 치솟는 빌딩의 높이만치 자살율과 부패지수 범죄율도 올라가고 있다. 부족함이 없을 만치 풍족하게 살아가면서 행복감을 느끼지 못하고 인간의 삶이 금수(禽獸)만치도 못하다면 미래는 어두울 수밖에 없다.
인성(人性)을 한자로 파자해 보면 人 +忄(心)+生 으로 사람의 마음을 生(나다. 살린다, 자라게 한다. 기르다. 새롭게 한다.)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즉 사람다운 삶을 살아가는 본성을 가지도록 하는 것이다. 인성을 가르치거나 억지로 배운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 어린 시절부터 부모로부터 가정에서 보고 느끼며 배우는 것이다. 생활 속에서 습관화 되어야 하는 덕목이다. 그래서 ‘세 살 버릇이 여든까지 간다.’ 는 속담이 있는 것이다. 정직, 믿음, 사랑, 우애, 효경, 정의, 예절, 배려, 봉사 등의 만고불변의 덕목을 실천하며 살아가는 것이 인간답고 가치 있는 삶을 사는 것이다.
자녀 교육의 목표를 성적만 올려서 좋은 대학에 가고 남들이 부러워하는 직장에 다니는 것으로 삼고 학원공부 시키고 과외공부 시켜서 남들과 경쟁에서 이기는 법만 가르친다. 세계인들이 놀라는 한국의 교육열은 1등을 만들려고만 했지 사람답게 살아가는 법은 가르치지 않고 있다. 나만 잘 살면 되고 내 자식만 잘되면 된다는 생각뿐이다. 더불 어 함께 살아가며 남을 배려하고 봉사하고 나누는 법은 모른다. 남이 있기 때문에 내가 있다는 간단한 이치도 이해하지 못한다.
인성교육은 이론이나 강의로 가르치는 것은 한계가 있다. 몸에 배도록 습관화가 되고 생활 속에서 보고 배우는 것이다. 부모가 좋은 것을 보여줘야 하고 어른들이 모범을 보여주어야 한다. 그래서 인성교육은 때를 놓치면 힘들어진다. 어릴수록 좋고 가족과 가정이 교육의 주체가 되어야 한다. 아무리 늦어도 초등학교 시절을 지나면 어려운 것이다. 묵은 뿌리나 씨앗에서 새싹이 나오듯이 새로운 것은 옛것에서 나오는 것이다. 그래서 옛 선현들이 남긴 말씀을 통해 배우는 것이 가장 효과가 있다. 사자소학, 명심보감, 논어 등의 고전을 통해 배우는 것이 가장 좋다고 생각한다.
인성교육의 필요성을 절감하며 인성교육을 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 중에는 자라는 아이들에게 우리조상이 써온 글인 한자를 가르치지 않는데서 찾을 수 있다. 뜻글자인 한자를 알아야 고전과 만날 수 있고 그 속에서 사람이 살아가는 삶의 지혜를 배우고 인간의 도리를 배울 수 있는데 그 깊은 뜻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도덕이 땅에 떨어졌다고 하고 도덕이 무너졌다고 한탄을 하는 것이다. 3대 이상이 한집에서 살아가던 시대에는 자연스럽게 인성교육이 되었는데 핵가족이 되면서 가정이 기능이 상실되어가고 있는 것 같다.
너무 바쁘게 살아가는 현대인들은 눈에 보이는 물질에만 치우치고 마음의 풍요를 느끼는 정신적인 면을 소홀히 하여 황폐화 되어가고 있다. 물질문명만 추구하던 서양에서도 동양의 정신문명을 배우는 열기가 대단하다고 한다. 조상대대로 지켜오던 우리의 문명을 버리고 물질문명을 추구하는 어리석음에서 벗어나야 할 때라고 생각한다. 자연이 주는 무상의 혜택 속에서 살아가는 우리 인간은 자연의 이치에 순응하며 마음이 따뜻한 사람의 본성으로 살아가는 법을 습관화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