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경제의 성장동력인 제조업이 위기에 빠졌다. 제조 강국 일본이 주춤하는 사이 우수한 인력과 추진력을 앞세워 세계 시장을 호령한 대한민국이 불과 10여 년 만에 바톤을 중국에 넘겨줬다. 이를 이끌던 기업들도 위기에 빠졌다. 삼성전자와 LG전자는 스마트폰 시장에서 부진하며 성장동력을 잃어가고 있다. 현대자동차는 내외부의 도전 속에 미래 전략 부재로 최대 위기에 빠졌다. 세계 1~3위의 조선사를 두며 오대양을 누비던 조선산업은 지난 2분기 5조원에 육박하는 영업적자를 기록하며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수준이다. 이들뿐만 아니라 철강, 정유, 화학, 가전 등 우리의 주축 산업 모두에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우고 있다.
대한민국 제조업이 한계에 다다르면서 수출 제조업을 바탕으로 성장해 온 우리나라의 미래도 불투명하다. 하지만 이대로 끝은 아니다. 우리에게도 기회는 있다. 이 기회는 그저 우연히 오는 것이 아니다. 지식경제의 시대가 되면서 이러한 산업을 뒷받침할 지식의 부족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이를 인식하고 구성원들이 학습을 위한 학습조직이 필요하다.
정치도 학습으로 성공한 나라가 있다. 이 나라가 바로 스웨덴이다. “스웨덴의 민주주의는 스터디 서클 민주주의(Study Circle Democracy)다.”라고 말 할 수 있다. 또, 스웨덴의 전 총리 올로프 팔메(1927~86)는 한 연설에서 이렇게 말했다. “자발적으로 생겨난 스터디 서클은 스웨덴인에게 합리적 분석력과 비판의식을 심어줬다. 이것이 스웨덴의 사회 변화를 이끈 원동력이 됐다.”고 강조했다.
북유럽의 ‘스터디 서클’ 역사는 100년이 넘는다. 1900년대 초, 스웨덴은 가난한 나라였다. 공업화가 진행되면서 많은 농민들이 도시로 나왔지만 제대로 된 교육을 받지 못했다. 고등교육은 귀족층에게 한정됐다. 이에 1902년 교육학자이자 정치인인 오스카 올슨(1877~1950)이 ‘스터디 서클’이란 말을 처음 만들었다.
노동자들을 대상으로 한 다양한 공부 모임, 생활개선 모임을 조직했다. 1914년 ABF라는 총괄조직이 생겨났고 스웨덴 정부가 지원을 결정하면서 스터디 서클은 일종의 사회운동으로 확산됐다. 1905년 스웨덴에서 분리 독립한 노르웨이, 1917년 러시아에서 독립한 핀란드도 이 제도를 적극 수입했다.
스터디 서클은 ‘싸게’ ‘자발적으로’ ‘모든 멤버가 평등하게 참여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정해진 형식이나 의무는 없으며 리더는 팀 내에서 정하되 ‘서로 가르치고 배우는 것’을 기본으로 한다. 요즘 한국사회에서 활발하게 생겨나고 있는 인문학 공부모임과 비슷한 성격이라 할 것이다.
80년대까지 스터디 서클은 철학이나 역사, 정치적 문제를 토론하는 장이었다. 금주교육 등 생활개선 모임과 함께 냉전, 복지국가, 유럽통합 등이 주요 주제로 다뤄졌다. 80년대 이후에는 외국어·취미생활 등의 실용적 주제로 무게중심이 옮겨가고 있다. 스웨덴 웁살라대 사회인류학과 브라이언 파머(49) 교수는 “내 삶의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라는 ‘셀프 헬프 퀘스쳔(Self-help Question)’에서 시작된 스터디 서클이 보다 풍요로운 삶을 향한 ‘셀프 헬프 인터레스트(Self-help interest)’ 영역으로 확장되고 있다”고 말했다.
지금 우리 사회는 정치, 경제, 사회 모든 분야에서 변화가 요구되고 있다. 각 분야의 중추역할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 학습조직을 만들어 어려운 돌파구를 찾아내는 일이다. 현재 막힌 것이 무엇이며, 미래에 대응할 전략을 어떻게 만들어 낼 것인가를 학습을 통하여 발견하여 문제해결에 임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