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한 공립학교 교사들의 성추행 사건으로 세상이 온통 떠들썩하다. 어제는 황교안 국무총리가 직접 나서서 엄한 처벌을 약속하고 각 지방자치단체들 또한 이에 적극 동조하기로 하는 등 각 분야에서 발 빠르게 후속 대책을 세우고 있다. 교원이 성범죄로 수사만 받아도 직위해제하고 군인 공무원이 성범죄로 벌금형만 선고받아도 임용을 제한한다고 한다. 조희연 서울시 교육감도 성범죄 사실이 확인된 교원은 바로 퇴출시키는 ‘원스트라이크 아웃제’를 도입하겠다고 발표했다. 이러한 모든 대책들은 정말 쌍수를 들어 환영할만하다.
하지만 정작 가장 중요한 것이 빠졌다. 그것은 바로 지금의 경직된 학교문화를 바꾸는 일이다. 현재의 학교장, 교감, 부장교사로 이어지는 수직적이고 권위적인 학교문화가 변하지 않는 이상, 언제든 제2의 G고교의 성추행 사건은 다시 일어나리라고 본다. 모든 교사가 꼿꼿한 자세로 교장과 교감이 일방적으로 지시하는 사항만을 받아 적기만 하는 현재의 교직원회의는 반드시 바뀌어야 한다. 직위에 상관없이 누구든 자유롭게 자신의 의견을 개진하고 최적의 결론을 이끌어내는 토의식 회의가 절실한 이유이다. 바른 말을 했다가 혹여 학교장과 교감의 눈밖에 벗어나지는 않을까, 인사고과상 불이익을 받지는 않을까, 교직원들 사이에서 왕따를 당하지는 않을까 하는 우려와 걱정 때문에 하고 싶은 말이 있어도 쉽게 나서지 못하는 게 작금의 교직사회의 풍토이다.
학교는 가장 민주적이고 자유로운 토론의 장이 되어야 한다. 그래야 미래를 짊어지고 나갈 아이들에게 눈부신 삶과 한없이 아름다운 자유를 가르칠 수 있기 때문이다. 저 파릇파릇한 우리의 아이들에게 이렇게 칙칙하고 어둡고 억압적이고 폐쇄적인 문화를 물려주어서는 절대로 안 된다.
이순신 장군의 예를 들어보자. 장군께서는 임진왜란 때 스물세 번을 싸워 스물세 번을 모두 이겼다. 물론 장군의 출중한 지략과 참모들의 헌신이 있었기에 가능했겠지만, 대부분의 학자들은 이순신 장군의 백전백승의 비결은 바로 민주적인 토의문화에 있었다고 주장한다. 장군은 싸우기 전에 반드시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모든 사람의 의견을 자유롭게 청취했다고 한다. 특히 바다에 밝은 어촌 어부들과 촌로들의 의견을 들어 이를 전략과 전술에 적용했기 때문에 승리할 수 있었다. 당시의 수직적이고 권위적인 봉건사회에서는 엄청난 파격인 셈이다. 요즘처럼 민주화된 20세기에도 어떤 정책을 세울 때 그 지역 주민들의 의견을 수렴하는 경우는 매우 드물기 때문이다.
사람은 마음이 편할 때 자유롭게 말을 할 수가 있다. 권위적이고 억압적인 분위기에서는 말문을 닫아버린다. 공산주의가 망하는 이유가 바로 이런 분위기 때문이다. 어찌 보면 가장 자유스럽고 민주적이어야 할 학교가 가장 어둡고 폐쇄적이란 게 참으로 아이러니 하다. 학교뿐만 아니라 군대, 공무원, 회사조직 등이 지금보다 더 민주적이고 완벽한 의사소통의 구조를 지닐 수 있도록 노력하는 것이 제2, 제3의 성추행과 성폭력을 막을 수 있는 가장 근본적인 대책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이번에 성추행을 당한 G고교의 한 여학생이 남긴 말을 되새기며 이글을 마친다. “졸업하면 다 말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지금은 아니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