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인간의 삶은 매일 일어나는 사건과 이를 다루는 사람들 사이에 이뤄지는 한편의 드라마와도 같다. 이 드라마는 사실과 거짓이 함께 뒤섞여 있어서 어느 한 면만 보고는 무엇이 사실인가를 파악하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그래서 이때 사실을 증명해 낼 수 있는 증거가 필요한 것이다. 또한, 우리가 ‘사실’이라고 믿고 있는 많은 것들이, 사실이 아니라 ‘해석’의 결과물인 경우가 허다하다. 사람들은 항상 자신이 갖고 있는 배경 지식을 통해 사물을 바라본다. 이해관계, 취향, 정서, 이데올로기, 신념 등이 항상 끼어드는 것이다.
사람들이 철석같이 사실이라고 믿고 있는 것들은, 대부분 사실이 아니라 이와 같은 매개물들을 통해 읽어낸 것들의 집합이다. 플라톤의 ‘동굴의 비유’에 나오는 사람들은 이를 잘 설명하여 주는 사례이다. 어릴 때부터 평생 동굴의 벽만 바라보도록 사지가 묶여 있는 사람들은 등 뒤의 불빛이 벽에 그려낸 그림자를 실물로 착각하며 살아간다. 동굴 밖으로 나온 다음에야 그것이 실물이 아니라 그림자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알튀세의 말마따나 “이데올로기 내부에는 아무런 모순이 없다.” 모든 이데올로기는 사실과 해석을 동일시한다. 그리하여 해석을 사실로 믿게 하는 것, 그것이 이데올로기다. 이데올로기는 해석을 사실로, 그림자를 실물로 믿게 만들기 때문에, 적어도 그 내부에서 보면 아무런 문제 즉, 모순이 없어 보인다. 그러기에 많은 이데올로기가 등장하였다가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사라진 것이다.
이처럼 왜곡이 우리의 일상생활을 지배한다. 우리는 자식, 이웃, 배우자뿐만 아니라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사회적 현상들을 ‘해석’하고, 그 해석을 ‘사실’이라고 믿는다. 그러나 우리가 사실에 대한 객관적 지식이라고 확신하는 많은 것이, 개인적인 신념 혹은 의견에 불과하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놀랍게도 이런 사례는 허다하다.
팔레스타인 출신의 문학평론가 에드워드 사이드는 이런 점을 들어 모든 지식 혹은 문학 텍스트의 "세속성"에 대해 언급한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무사 공평한", 객관적 지식은 없다는 것이다. 모든 지식에는 개인 혹은 집단의 '세속적' 이해관계, 이데올로기, 취향이 개입된 것으로그에 의하면 문자 그대로 '순수한' 지식이란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 지식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노력하는 사람들이 지성인이다.
버젓이 눈앞에 있는 '사실'들에 대해서도 이러할진대 발생과 동시에 사라지는 '역사적 사실'에 대해서는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가? 잘 살펴보면 우리가 사실로 착각하고 있는 모든 역사는 이미 사라지고 없어진다. 남은 것은 ‘문자화된 역사’, 다른 말로 하면 '해석된 역사'로 존재한다는 것이다.
최근에 국사 교과서의 국정화 문제 때문에 온 나라가 시끄럽다. 다시 말하지만 사실로서의 역사는 이미 사라지고, 남은 것은 그것에 대한 해석밖에 없다. 지금 우리는 다른 나라의 역사왜곡에 대응하고 있다.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무엇을 배우고 있는 것일까 곰곰히 생각해 봐야 한다. 이런 우리 나라가 교과서를 국정화한다는 것은 바로 이 해석의 권리를 일부 권력이 독점하겠다는 것이다. 막말로 누가 그 권리를 독점해도 상관없다고 치자. 그러나 반드시 전제가 있어야 한다. 그것은 바로 ‘해석의 무오류성’이다. 그런데 정부뿐만 아니라, 신이 아닌 이상 지상의 그 누가 감히 이 해석의 무오류성을 보장할 것인가.
그래서 '국사 교과서 쓰기'라는 ‘해석’의 통로는 다양하게 열어 놓아야 한다. 다양한 해석들이 서로 충돌하고 영향을 주고 받으며 해석의 오류를 최대한 줄여나가는 것, 그리하여 어렵지만 공동체의 동의를 이끌어내는 것, 그것이 성숙을 지향하는 사회가 나아가야 할 길이다. 사실에 대한 해석을 누군가가 독점하겠다는 것은 다수 국민을 자기만의 동굴에 가두겠다는 것이다. 플라톤의 동굴 이야기에 나오는 사람들처럼 살고 싶은가. 그리고, 모든 국민을 그런 존재로 만들어야 할 것인가? 그림자를 실물로 계속 믿고 싶은가? 동굴 밖으로 나오지 않는 한 실물을 제대로 보기는 어렵다. 그림자는 그림자일 뿐, 실물이 아니다. 시대의 흐름을 거스르는 것은 많은 사람들로부터 희망으 빼앗아 가는 일이 될 것이다. 힘들지만 희망을 가질 수 있도록 하는 일이 국사 교과서 만들기부터 시작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