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일선 학교의 가장 큰 고민은 수능과 기말고사를 모두 마친 고3 아이들을 어떻게 관리할 것인가에 있을 것이다. 그렇다고 학교마다 뾰족한 수가 있는 것도 아니다. 학교 나름대로 프로그램을 짜서 운영하고 있으나 아직 남아있는 긴 수업일수를 어떻게 채워야 할지 막막하기만 할 것이다.
수능 이전보다 등교시간을 조금 늦춰 학교에 나오도록 하고 있으나 아이들은 긴장이 풀려서인지 등교시간 또한 제각각이다. 그나마 마지막 수시모집 전형(면접, 논술, 실기시험 등)을 앞둔 아이들은 전형을 준비하기 위해 나름대로 무엇인가 할 수 있는 일이 있어 다행이나 수시모집에 최종 합격한 학생들은 등교하여 할 일 없이 빈둥대다 귀가하는 것이 전부다. 그러다 보니, 고3 선배들의 무절제한 행동으로 선의의 피해를 보는 쪽은 결국 1·2학년 후배들이다.
이와 같은 상황을 못마땅하게 생각하는 일부 학생들이 조기 방학을 주문하지만 학교 측면에서는 수업 일수 부족과 도교육청의 방침을 들먹이며 학생들의 요구에 명쾌한 답변을 내놓지 못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무엇보다 수능 성적표가 발표되지도 않고 대학 정시 모집이 남아있는 터라 학생들의 조기방학만이 능사는 아닌 듯싶다.
얼마 전, 수능이 끝난 고3 학생들을 위한 특별 프로그램을 학교 자체적으로 만들어 운영하라는 도교육청의 지시가 있었으나, 아직 한 달 이상이나 남은 기간을 한정된 예산으로 많은 프로그램을 운영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아마 더 심각한 지역은 대도시보다 모든 면에서 열악한 지방 소재 일선 학교일 것이다. 사실 대도시에 소재한 학교의 경우, 학생들이 선택할 수 있는 문화 공연과 체험할 수 있는 것들이 많은 반면 지방 소재 학교는 선택의 여지가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예를 들어, 대도시에서 공연되는 제대로 된 뮤지컬 하나를 보러 가는데도 공연 관람료에 교통비까지 학생 개개인이 부담해야 할 경비 등 이것저것 고려해야 할 것들이 너무 많아 쉽게 결정을 내리지 못한다.
정해진 예산 범위 내에서 유익하고 의미 있는 프로그램을 만들기 위해서라도 학생들의 의견을 최대한 수렴하는 것이 좋다. 학생의 입장을 고려하지 않은 일방적인 시간 때우기 식 프로그램은 어쩌면 학생들에게 무료함만 줄 수 있다. 특강 또한 학교 창체 시간에 자주 들은 내용보다 학생들이 앞으로 사회생활을 하면서 꼭 필요한 내용을 선별하여 실시하는 것이 좋다. 그리고 이웃 학교와 정보를 교환하여 좋은 프로그램을 서로 공유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등교한 학생들이 주위 사람들로부터 눈총을 받게 하기보다 우선 대학 입시 준비로 그간 해보지 못한 다양한 것(바리스타, 미용, 수공예, 케이크 만들기, 마술, 종이 접기 등)을 체험할 수 있는 기회의 장(場)을 마련해 주는 것이 좋다. 그리고 학급 단위로 내 고장 문화재 탐방이나 방송국 또는 박물관 견학을 해보는 것도 좋을 듯싶다. 특히 안보현장 병영체험 및 DMZ 견학을 통해 분단 현실의 올바른 인식과 국가안보의 중요성을 인식해보는 기회를 갖는 것도 좋다.
특별한 일정이 없는 날은 무작정 영화를 보여주기보다 명사(名師)의 특강이나 다큐멘터리 등을 시청하게 함으로써 자신을 뒤돌아보고 대학 새내기로서 미래를 설계해 볼 수 있는 시간을 가져보는 것도 좋다. 그리고 평소 바쁘다는 핑계로 자주 찾아뵙지 못한 분을 방문한다던가 아니면 편지 쓰는 시간을 가져보는 것은 어떨까.
정시를 준비하고 있는 학생의 경우, 가채점 결과의 점수로 본인이 가고자 하는 대학의 입시설명회에 참여하게 하여 많은 정보를 얻도록 한다. 요즘 고교 방문 입시설명회가 많이 활성화되어 있는 만큼 학생들이 희망하는 대학을 학교로 직접 불러 입시설명회를 개최해 보는 것도 좋을 듯싶다.
아직 수능 성적이 발표(12월 02일)까지 시간적 여유가 많다. 무작정 학생들을 학교에 잡아두는 것만이 능사는 아닌 듯싶다. 여건이 된다면, 그간 입시로 쌓인 스트레스를 조금이나마 힐링하는 차원에서 1박 2일간 가까운 곳으로 여행을 다녀오는 것도 괜찮을 듯싶다. 선생님과 학창시절 못다한 이야기를 나누며 사제 간의 정(情)을 돈독히 쌓는 시간을 갖는 것도 아이들에겐 잊지 못할 소중한 추억이 될 것이다.
모름지기 수능 이후 고3 학생들의 수업 파행은 국가 차원에서 대학입시제도가 바뀌지 않는 이상, 이와 같은 악순환은 계속되리라 본다. 그렇다고 학생들을 이대로 방치해 둘 수만은 없는 일이다. ‘대학 합격’이라는 단 하나의 목표를 갖고 앞만 보고 열심히 달려온 아이들이다. 학교 나름대로 다소 어려운 점은 있겠으나, 조금만 더 관심을 갖고 우리 아이들이 마지막까지 유종(有終)의 미(美)를 거둘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하는 것이 선생님의 책무가 아닌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