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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탐방

안견을 만나러 도원동으로 가는 길

우리나라의 숨은 문화유적을 찾아서(1)

우리나라 3대 미술 천재를 들자면 신라의 솔거, 고려의 이녕, 조선의 안견을 꼽는다. 이토록 유명한 안견이지만 정작 서산 시민들 중 안견 선생이 서산출신이고 지곡 면소재지에 안견기념관이 있다는 사실을 아는 이는 적다. 하여 언젠간 꼭 이 글을 쓰고 싶었다.

세상의 온갖 만물이 꽁꽁 얼어붙은 땅 속에서 새로운 생명을 틔우려는 3월 초순, 서산의 천재 화가인 현동자 안견 선생과 그 분의 작품 몽유도원도(전시품은 모사품임-진품은 일본 덴리대학 지하 소장고에 있음)를 취재하기 위해 지곡면에 있는 안견기념관을 찾았다. 기념관으로 오르는 언덕은 매우 가팔랐다. 길섶의 누리끼리한 잔디는 아직 겨울잠의 미몽에서 깨어나지 못한 채 스산한 겨울하늘아래 누워있었고 벚나무의 잎새에도 어느새 좁쌀만 한 꽃망울이 반나마 돋아나고 있다. 바야흐로 봄이 안견기념관 코앞까지 다가와 있었다.

얼굴에 번진 땀을 손수건으로 연신 닦으며 몽유도원도 앞에 섰다. 은은한 묵향이 풍기는 전시실 벽에는 가로 106.5cm, 세로 38.7cm 남짓으로 된 두루마리 그림이 걸려있었다. 1447년에 그려진 것이고 게다가 모사본인 데도 그림은 너무도 생생하다. 실제로 연분홍 복사꽃이 바람에 흩날리는 듯하고, 옹기종기 모여 있는 지붕의 노란 초가에서는 금방이라도 저녁밥 짓는 연기가 피어오를 것만 같다. 꼬불꼬불하게 중첩된 산자락에서는 허연 수염을 길게 늘어뜨린 산신령이 나타나 주장자를 내리치며 티끌만도 못한 권력과 재물에 눈이 어두워 와각지쟁(蝸角之爭)을 일삼는 우리 인간들을 질타할 것만 같다.
 안평대군이 박팽년과 함께 꿈에서 본 이상향을 안견에게 말하자 안견이 이를 듣고 사흘 만에 완성했다는 몽유도원도! 몽환적인 꿈의 세계를 현실 속의 산수화로 재구성하여 박진감 넘치는 필치로 재현했다는 몽유도원도를 보면서 나는 문득 1580년 전, 풍운의 삶을 살다간 도원명의 ‘도화원시’란 시 한 수가 떠올랐다.

거친 길은 아득하게 뻗어있고
닭과 개는 서로들 울부짖는구나.
제물을 차리는 것은 옛 격식 그대로이고
입은 옷은 새로운 것이 없도다.
어린아이들은 마음대로 뛰놀며 노래하고
반백의 늙은이는 기뻐하며 서로를 찾는다.
풀이 자라면 계절의 온화함을 알겠고
나무가 마르면 바람의 세참을 알겠구나.
비록 책력의 기록은 없어도
사계절은 절로 흘러 한 해를 이루어가네.

몰락한 양반 가문에서 태어난 천재 시인 도연명. 뛰어난 총명으로 일찌감치 벼슬길에 나섰으나, 당시의 현실은 청량한 시인이 꿈을 펼치기에는 너무나 타락해 있었다. 출사와 사퇴를 반복하면서 젊은 시인은 정치에 염증을 느끼게 된다. 불의에 눈감고 함께 진흙탕 속에 뛰어들어 호의호식하느냐, 아니면 가난을 각오하고 은퇴하여 선비의 도를 지키며 바르게 사느냐. 기로에 선 순간이었다. 그러나 도연명은 단호하게 후자를 택한다. 위 시는 도연명이 은퇴한 뒤에 자연에 묻혀 살 때 쓴 ‘도화원시’의 일부분이다.

그러고 보면 안평대군 또한 도연명과 닮은 점이 참으로 많다. 시문과 글씨, 그림 등에 능했으나, 메이저리그에 속하지 못하고 평생을 마이너리그로 일관하다가 비운의 삶을 마친 점이 그렇다.

항상 자신의 목숨을 노리는 적들과 싸우며 힘겨워하던 안평대군이 마지막으로 꿈꿨던 세상은 권력도, 암투도, 정쟁도 없는 도원의 세계였다. 이런 점에서 몽유도원도는 단순한 상상화가 아니라 당대 지식인들이 꿈꿨던 유토피아인 셈이었다. 몽유의 세계는 인간들의 조악한 구속이나 음모, 심지어는 시간의 변화도 느끼지 못하는 꿈속의 마을인 것이다. 자연과 더불어 살고 인간이 인간을 사랑하고 서로의 것을 나누며 사는 행복의 세계이다. 도연명과 안평대군은 이심전심으로 그러한 세계는 끝내 우리 인간 세상에는 나타나지 않으리라는 것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도연명은 시로, 안평대군은 꿈으로라도 실현해보려고 그리도 애썼던 것이리라.





만리관산에 계수나무 그림자가 드리운 가을
누가 높은 누각에 기대어 옥피리를 부는가.
그 소리, 은하수 끝까지 퍼져가니
아, 저기에 내 아름다운 친구가 있구나.
- 안평대군의 칠언절구 중 -

일찍이 프로이트는 예술에 대해서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예술은 어떤 내적인 결핍에서 창조되는 경향이 강하며, 다른 의미로는 치유제 혹은 카타르시스라고도 한다.”

그렇다. 도연명도 안평대군도 예술을 통해서나마 그들의 이상향을 쓰고 그리며 현실에 대한 위안으로 삼았을 것이다. 마음 내키는 대로 시를 짓고 그림을 즐겼다. 그것도 싫증이 나면 술을 마시며 취했다. 평생을 제 뜻대로 자유롭게 살았고, 마음 내키는 대로 글을 짓고 그림을 그리다가 원 없이 죽어갔던 것이다.

그렇다면 대체 그들이 꿈꾸었던 도원동은 그 어디쯤에 있을까. 유한한 인간의 한계를 벗어난 영원 속에 존재하는 것일까. 아니면 갈등과 질곡으로 분열된 시대에 도원동은 이미 그림 속을 떠나 하늘로 날아오른 것은 아닐까. 나는 그만 서러워진 채 안견기념관을 내려왔다. 언덕길을 내려오면서 나도 모르게 이백의 ‘산중문답’을 읊조리고 있었다.

問余何事棲碧山
그대, 무슨 생각으로 산중에 사느냐고 묻는다면,

笑而不答心自閑
“그러게 말입니다.”라며 그냥 웃지요.

桃花流水杳然去
흐르는 물 따라 복사꽃은 아득히 멀어지고,

別有天地非人間
아, 이곳은 별천지! 사람 사는 세상 아니라오.

시를 읊조리며 오랜 묵상 끝에 결국 꿈속에서 노닐던 도원경의 세계는 실제로 오늘, 이 치열한 현실을 사는 우리들의 세계라는 것을 깨달았다. 우리들의 인생이란 안견의 몽유도원도처럼 한바탕 짧은 꿈에 불과한 것이란 것을 깨닫고 문득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니 하늘은 어느새 석양으로 물들어가고, 그 하늘 아래 바람이 불고, 바람은 다시 앙상하게 마른 억새더미를 흔들어대며 서쪽으로 사라지고 있었다.

<참고 자료>
       관람 정보
• 건립년도 : 1991년 10월
• 위치 : 서산시 지곡면 안견관길 15-17
• 관람시간 : 09 : 00 ~ 18 : 00(월요일 휴관)
• 관람안내 : 안견기념관(041 – 660 – 2536)
• 관광해설신청 : 041 – 660 – 2536(사전예약)
• 관람료 무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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