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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1.14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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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단일기

신발을 새로 사고

구두를 새로 샀다. 새 것이어서 빛이 나고 멋있다. 발도 편하다. 뒷굽이 온전해서 키도 커 보인다. 걸을 때마다 소리도 크다. 새 구두를 신으니 기분도 들뜨고 걸음걸음이도 자신감이 붙은 모양이다.

  구두가 낡았다고 아내가 진작부터 핀잔을 줬다. 하지만 내가 보기에는 오래된 느낌은 있을지언정 낡지는 안았다고 생각했다. 시간이 오래된 만큼 익숙함이 좋았다. 나란 위인은 워낙 새것에 둔감하다. 새것을 자유롭게 부리지 못하는 능력 탓이다. 그러다보니 구두도 오래 신었다. 그뿐이 아니다. 애정도 깊다. 오래된 구두는 일상에 허덕이는 나를 분신처럼 받쳐주고 있었다. 아침마다 힘차게 출발하는 길에 동행을 했다. 매일 남 몰래 찬란한 꿈도 담았던 신발이다.     

  값어치가 없어 버려도 아깝지 않은 것을 비유적으로 이를 때 헌신짝이라고 하지만, 지금 신발은 버리기 아깝다. 신발은 삶의 수고를 감내하고 왔다. 뙤약볕이 숨을 찌르는 날에도 소나기가 분노처럼 내리는 날에도 묵묵히 함께 걸어왔다. 왠지 울어버리고 싶은 만큼 힘겨운 날에는 터벅터벅 소리를 크게 내면서 나를 위로 했다.

  나는 사람을 만나면 신발을 보는 습관이 있다. 신발은 그 사람의 인간됨을 이끄는 힘이 있다고 생각한다. 점잖은 사람은 신발이 먼저 움직인다. 다소곳이 모아 배려와 겸양의 뜻을 보인다. 말을 함부로 하고 예의가 없는 사람은 신발이 말해준다. 반짝거리는 것이 깨끗한 것이 아니라 오만함이 보인다. 신발이 움직이는 것을 보라. 거침이 없다. 순한 구석이라곤 눈곱만큼도 없고 매사에 거슬린다. 기업인이 자신의 운전기사에게 폭언하고 폭행까지 일삼았다고 한다. 정치인이 상대방에게 험한 말을 하는 것은 물론 텔레비전 마이크에 반말을 한다. 개인의 탐욕으로 조직을 운영하는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그들의 사람됨은 이미 신발에 나와 있다.

  얼마 전 새벽 운전을 하다가 인력 시장을 지난 적이 있다. 마땅한 직업이 없어 잡일을 위해 모이는 사람들이다. 3월이지만 새벽은 찬바람이 등을 후려친다. 그들은 제대로 앉지도 않고 장작불에 등을 보이고 서 있다. 일자리를 얻겠다고 언 손을 입김으로 녹이며 서성이고 있다. 그들의 신발에서 삶의 고달픔을 읽었다. 구차하고 고통스러운 생활을 웅변하듯 신발은 모두 낡았다. 그들이 운명처럼 붙어 다니는 빈곤을 이기지 못해 고생하는 모습을 보니 가슴이 아프다. 

  고대 이집트에서는 귀족이나 성직자만 신을 신었다. 하지만 이제 신발은 누구나 신는다. 신발은 빈부의 차이도 없고, 권력과 힘의 모습도 읽을 수 없다. 그야말로 평등의 상징이다. 벗어놓으면 입을 벌리고 있어 주인이 누구인지 모른다. 그래서 신발은 우리 외모에서 주목받지 못하는 소외 영역이다.

  여성들의 신발은 반대다. 의복과 함께 멋을 내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적당히 높은 굽은 키도 크게 보이고 멋스러운 옷차림에 어울린다. 알맞게 높은 구두를 신어서 그런지 여유와 넉넉함이 보이고, 인간관계에서도 겸허한 수용을 보인다. 아침 햇살이 이슬을 말리듯, 예쁜 구두를 신의 여인의 모습은 보는 사람들의 마음을 밝게 한다. 지나치게 높은 구두를 신은 여인들은 불안하다. 외모는 화려하게 보이지만 자세히 보면 허무해진다. 걸을 때도 자만의 무게에 도취되어 가끔 뒤뚱거린다. 멋을 내기 위해 신었지만, 자칫하면 사치와 허영처럼 보인다. 자신의 허물과 미숙함을 가리려고 한 것은 아닐까. 아니 가리는 것이 아니라 진실을 호도하려는 의도가 아닐까라는 생각에 미치게 된다.

  식당에서 신발을 잃어버려 남은 신발을 신은 적이 있다. 식당 주인은 오히려 새것이라며 자신의 불찰에 대한 보상을 하는 것처럼 말을 건넸다. 그러나 취객이 남겨 놓고 간 신발은 맞지 않았다. 몇 발자국 걷고 나니 발이 아프고 온 몸에 힘이 들어가 허리가 아팠다. 집에 와서도 그 신발은 쓸모가 없었다. 아무리 좋은 신발도 내게는 소용이 없다. 내 발에 맞아야 한다. 

  지금 세상에 넘치고 풍족한 것이 많더라도 내 것이 아닌 것과 마찬가지다. 손에 들어올 수 없는 것을 욕심내면 욕망이 된다. 사람들은 험난한 욕망의 길을 소망인양 착각하기도 한다. 헛된 욕망은 고삐 풀린 말이 되기 십상이다. 욕망은 소유에 대한 탐욕으로 위험을 초래한다. 우리는 햇살처럼 눈부신 소망을 가슴에 품고 걸어야 한다. 어쩌다 발길에 닫는 절망은 귀갓길에 만나는 눈 시린 달빛에 걷어차고 오라. 발걸음에 저마다 소망을 담고 걸어라. 작은 소망이라도 있다며 내일이 기대된다. 내일을 기다리는 습관은 힘든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커다란 힘이 될 수 있다. 하루 일과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터벅터벅 걷지 말고, 신발을 끈을 매고 힘차게 걸어보자.  뼈마디 부스러지는 온갖 고달픔도 가벼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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