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규 교육과정을 거치지 않고도 일과 독서로 사회철학자의 반열에 오른 에릭 호퍼의 글은 현장감이 뛰어나다. 그의 글은 절박한 삶의 현장에서 나온 목소리라서 더 매섭다.
그는 평생을 길 위에서 일하며 사색한 미국의 사회철학자 에릭 호퍼.1902년 뉴욕 브롱크스의 독일계 이민자 가정에서 태어났다.
어렸을 때 사고로 시력을 완전히 잃어 학교에 다니지 못했으나, 열다섯 살에 기적적으로 다시 시력을 회복했다. 언젠가 다시 앞을 볼 수 없게 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닥치는 대로 독서에 몰두했다.
일찍이 부모를 여의고 오렌지 행상, 시간제 웨이터, 사금채취공, 부두노동자로 전전하면서 많은 책을 읽고 글을 쓰며 11권의 저서를 남겼다.
부두노동자로 일하면서 1951년에 출간한 『맹신자들The True Believer』은 대중운동의 속성을 탐구한 책으로, 나치즘 광풍과 2차 세계대전 후 황폐한 유럽의 상황과 맞물리며 미국사회에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평생 동안 떠돌이 노동자로 살면서 보통 사람은 상상할 수 없을 만큼 책을 읽고, 깊이 사색하면서 독학으로 독자적인 사상을 수립했다. 인간의 삶과 냉철한 현실 인식으로 세계적인 사상가의 반열에 오른 호퍼는 1983년 사망했으며, 그해 미국 대통령의 ‘자유훈장’이 수여되었다. 2001년 호퍼의 이름을 딴 ‘에릭 호퍼 문학상Eric Hoffer Award’이 제정될 정도로 그의 위상은 특별하다.
다음은 필자가 <인간의 조건>에서 골라내어 메모해 둔 주옥같은 문장들을 소개해 올린다. 철학적 사유를 담고 있는 책이라서 다소 난해한 점은 있으나 정곡을 찌르는 작가의 생각은 시대를 관통하고도 남는다. 세상은 늘 어렵고 힘들다. 세상이 좋아지고 있다는 확신을 갖지 못하는 것은 여전히 숙제로 남는다. 그가 말한 인간의 조건은 다분히 철학적이고 자연 속의 인간이다. 작가에게서 루소의 모습이 보이는 것은 가공되지 않은 삶을 살다간 탓일까?
"교육의 주요 역할은 학습 의욕과 학습 능력을 심어주는 것이다. 교육은 배운 사람이 아니라 배우는 사람을 양성해야 한다. 진정으로 인간적인 사회는 배우는 사회이며, 그곳에서는 조부모도 부모도 자식도 모두 학생이다. 급변의 시대를 이어갈 사람은 계속 배우는 학습자이다. 배움을 끝낸 사람에게는 과거의 세계에서 살아가는 기술밖에 남아 있지 않다."
(57쪽)
"이견(異見)을 제기하는 소수가 활개를 칠 여지가 있을 때만 그 사회는 자유로운 사회라고 할 수 있다. 실제로 이견이 있는 소수가 자유를 느끼는 경우는 자기의 의견을 다수에게 강요할 수 있을 때뿐이다. 소수가 가장 혐오하는 것은 다수의 반대이다." (70쪽)
"코메니우스의 말을 빌리면 창의적인 교사는 덜 가르치면서도 학생이 좀 더 많이 배우게 하는" 사람이다. 창조적인 조직가는 자기 없이도 잘 굴러갈 수 있는 조직을 만들어낸다." (126쪽)
"인간의 위상은 현재 자신의 위상을 스스로 생각하는 자신의 위상으로 나눈 값이다."
(175쪽)
"자기 자신과 대화를 더 이상 하지 않을 때 종말이 온다. 이는 순수한 사고의 종말이며 마지막 고독의 시작이다. 주목할 것은 자기 내면과의 대화 중단이 주변 세계에 대한 관심에도 종지부를 찍는다는 사실이다. 우리는 마치 자신에게 보고를 해야 할 때만 세상을 관찰하고 고찰하는 것 같다." (205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