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자칭 도시농부다. 도시에서 농사를 짓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내 소유의 농토가 있는 것도 아니다. 그 동안 해마다 내가 살고 있는 아파트 베란다에서 농사를 지어왔다. 흙이 없는 베란다에서 어떻게 농사를 짓는가? 베란다를 흙으로 덮어 밭으로 만들거나 정원으로 만든 것은 아니다. 바로 손쉽게 이동할 수 있는 화분을 이용한 것이다.
벌써 몇 년째 도시농부의 삶을 즐기고 있다. 고추 화분 10여 개, 방울 토마토 화분 몇 개면 족하다. 해마다 봄이면 화분에 흙을 채워 모종을 사다 심는다. 단돈 몇 천원이면 모종값은 해결이 되고 농작물이 자라는 모습을 보며 가꾸는 무한한 희열을 느낀다. 가장 큰 기쁨은 열매를 수확하여 식용으로 할 때다. 풋고추는 아침 저녁 우리 집 식탁 비타민 공급원이고 방울토마토는 식사 후식용인데 그 맛이 일품이다.
작년 겨울 우리 아파트 가까이 있는 일월공원에 붙어 있는 수원시 녹지사업소에서 내건 공원텃밭 분양 안내 현수막을 보았다. 사업소에 분양 신청을 한 결과 올봄에 당첨 통보를 받아 처음으로 3평(10㎡)을 가꾸는 도시농부가 되었다. 우리 부부가 지난 달까지 가꾸고 수확한 농작물은 고추, 가지, 방울토마토, 대추토마토, 옥수수 등이다. 지금은 가을배추 70포기와 와 들깨 10포기, 해바라기 5포기가 잘 자라고 있다.
흔히들 복잡하고 여유 없는 도시의 아파트 생활을 하면서 인근에 작은 텃밭을 마련하여 흙냄새를 맡으며 농작물을 가꾸는 것이 현대 도시인들의 로망이라고 한다. 우리 가족은 수원시의 정책적 배려로 그 혜택을 보게 된 것이다. 수원시 공원녹지사업소 담당자가 보내준 ‘2016 도시공원형 텃밭 운영 현황’ 자료에 따르면 수원시에서는 일월공원, 서호꽃뫼공원, 청소년문화공원, 꽃향기공원, 두레뜰공원 등 5개소의 5,490㎡의 면적을 개인 431명, 단체 18곳에 분양하고 있다. 즉 수원시는 총 449개의 도시공원 텃밭 분양구좌를 갖고 있다.
일월공원텃밭(이하 공원텃밭)은 일월저수지 둑 아래에 있다. 텃밭의 총면적은 1,000㎡인데 개인 80, 단체 6개의 분양구좌로 되어 있다. 이 텃밭은 ‘해와 달 행복 체험텃밭’으로 불리기도 한다. 이 둑 아래 텃밭에서 동쪽으로 400m 되는 지점, 공원과 인접한 곳인 일월도서관 앞에 또 하나의 텃밭이 있다. 이름하여 천천동 시민농장(이하 시민농장). 이곳도 도시농부의 터전이다. 천천동 시민농장은 면적 9,230㎡, 분양구좌 362명이다.
얼마 전 아내와 함께 이곳을 방문하고 깜짝 놀라고 말았다. 시민농장은 일월공원과 붙어 있는데 공원텃밭과는 그 모습이 확연하게 달랐기 때문이다. 공원텃밭이 고즈넉하고 아기자기한 정원풍이라면 시민농장은 마치 농작물 경연대회가 열리고 있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공원텃밭은 꽃과 농작물 종류면에서 볼거리가 많았고 시민농장은 수확할 거리가 많이 보였다. 농장에서 농작물은 무성하게 자라고 있으나 왠지 무섭고 아득한 느낌을 받은 것이다. 공원텃밭은 무상분양이고 시민농장은 유상분양이다.
“타인의 농작물을 가져가시면 형법상 절도죄입니다. 정성들여 재배한 우리 이웃의 농작물 눈으로만 지켜봐 주시기 바랍니다. 수원시농업기술센터” -시민농장 푸른색 물탱크에 붙어 있는 당부의 글-
“부탁드립니다. 정성스럽게 재배한 농작물을 가져가시면 제 맘이 너무 아픕니다. 가져가지 말고 보기만 해 주세요. 텃밭 주인 올림” -공원텃밭 어느 주인의 프린터 출력본-
일월공원텃밭과 천천동 시민농장의 차이점을 보았다. 첫째, 시민농장 면적이 일월텃밭보다 9.2배 넓고 분양구좌는 4.2배 많다. 둘째, 공원텃밭은 분양구좌마다 농작물과 화초가 어울려 자라고 있는데 시민농장은 농작물만 자라고 있다. 셋째, 공원텃밭에는 농기구 보관창고 1개소, 물탱크가 1곳인데 시민농장은 관리사무실 1개소, 옥외화장실 1곳, 물탱크가 7개 있다. 넷째, 공원텃밭은 농기구, 조루 등을 수원시에서 공급하여 공동으로 사용하는데 시민농장은 각자의 농기구를 사용하고 각자 보관 관리한다. 다섯째, 공원텃밭은 농작물 지지대로 대나무, 노끈 등을 사용하는데 시민농장에선 금속 파이프, 비닐끈을 사용하고 있다.
여섯째, 공원텃밭에는 그늘 쉼터인 원두막이 있는데 이곳 시민농장에는 원두막이 없다. 일곱째, 공원텃밭에는 울타리용 비닐끈이 보이지 않는데 시민농장 몇 곳은 개인 울타리용 비닐끈을 쳐놓았다. 여덟째, 공원텃밭은 농약과 비료 사용을 자제하는 대신 퇴비를 사용하고 있는데 시민농장은 이에 대한 제약이 별로 없다. 아홉째, 공원텃밭은 농작물 대신 잡초가 우거진 밭이 한두 개 보이는데 시민농장은 묵정밭이 보이지 않는다. 열 번째, 공원텃밭은 농사지으러 오는 분들이 인근에서 도보로 오고 있으나 시민농장 주차장에는 차량 몇 대가 보인다.
시민 중에서 도시농부가 되어 흙냄새를 맡고자 하는 분들은 자신에 맞는 공원텃밭이나 시민농장을 선택하여 희망하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