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교육 현장에서 학생들이 직접 경비를 부담해야 하는 행사의 종류는 과거에 비하여 매우 다양하다. 야영수련활동, 각종 현장체험학습, 단체수련활동(수학여행) 등 많은 행사가 모든 단위학교의 모든 학년에서 각각의 교육적인 목적을 가지고 매년 반복해서 진행된다. 이러한 행사의 내용이 보다 교육적이면서도 재미있게 진행될 때 학생들은 신명나고 교사들은 보람을 얻는다. 여기에 더 욕심을 부린다면 각종 행사의 예산과 결산이 합리적이고 투명하게 집행된다면 우리 교사들은 학부모들로부터 더 두터운 신뢰를 받게 될 것이고 학생들 앞에서 지금까지보다 훨씬 당당할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한다.
지금까지 우리 교사들이 주도적으로 진행하는 각종 학교행사에서 외부로부터 불신의 의혹을 받는 경우가 있었다. 대부분의 교사들은 우리가 왜 이러한 불신을 받게 되는지를 모르고 있다. 또 무엇이 왜곡되어 있는지 무엇을 개선해야 하는지를 모른다. 그래서 이들은 불신의 눈길에 소극적이나마 불만을 표시하기도 한다. 어떤 교사들은 무엇이 잘못되어 있고 어떻게 개선해야 하는지 알면서도 침묵한다. 소수의 교사들은 ‘과거에도 그렇게 해왔고 다른 학교에서도 그렇게 하고 있다’는 이유를 방패삼아 아직도 각종 학교행사에서 비교육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 또 다른 일부의 교사들은 학교에서 일어나는 각종 불합리를 바로잡아 무너진 교권을 바로 세우고 질 높은 교육을 추구하기에 진력한다.
우리 학교의 경우 합리적이지 못하고 효율적이지 못한 각종 행사의 진행과 교육소비재의 구매를 개선해보겠다는 교사들이 다수 있어 이들의 뜻을 확인하고 하나로 묶는데는 쉽게 성공할 수 있었다. 뜻을 모으기는 쉬웠지만 진행은 쉽지 않았다. 그렇지만 우리는 2년 9개월간 혼신의 힘을 다하여 노력한 결과 교육소비재(교복, 체육복, 앨범)의 구입과 각종 행사(1학년 야영활동, 2학년 수학여행, 3학년 졸업여행)의 진행, 학교수익사업(매점임대) 등에 공개경쟁입찰과 사전답사를 도입하여 기대 이상의 큰 성과를 얻고 있다.
사전답사 통해 기대이상의 성과
우선 단체수련활동을 개선하기 위하여 선생님들의 뜻을 모으고 학교와 이를 협의하기 시작했다. 경비 책정이 합리적이고 교육적 내용이 충실한 단체수련활동을 계획하기 위하여 봄방학에 사전답사를 실시하고 여기에 선생님을 참여시켜야 한다고 학교에 건의하였지만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고 학교를 설득해 갔다. 그 동안 준비한 자료를 바탕으로 설득력을 갖추었으며 지난 세월 개선해 왔던 여러 가지의 일들이 힘이 되어 개혁적인 성향의 선생님이 단체수련활동 사전답사에 참여할 수 있도록 허락을 받아냈다.
1박 2일 동안의 답사에서 우리 강산의 아름다움은 보지도 느끼지도 못한 채 변화를 부정하는 현실의 답답함과 씨름하였고 영구불변일 것만 같던 답답한 현실에서 변화를 일구어내는 성취감을 맛볼 수 있어 피곤함을 덜 수가 있었다. 숙박업소와 버스 회사에서 공통적으로 느낀 것은 소비자에게 봉사를 하겠다는 자세보다는 법적인 근거도 없는 협정요금을 내밀어 소비자를 우롱하는 자세였다. 그렇게 마음에 들지 않는 분위기에서도 단체수련활동의 개선을 위하여 우리는 우리들의 의지를 설명해 갔다. 과거의 관행이 어떻게 잘못되었던 그보다는 잘못된 관행의 개선이 중요하다고 믿고 일했다.[PAGE BREAK]그래서 ‘학생들이 지불하는 경비가 오로지 학생들의 편익을 위해서만 쓰일 수 있도록 하자’고 상인들을 설득했고 그렇게 했을 때의 최소경비를 책정하고자 노력했다. 그러나 그 사람들은 우리의 말을 도무지 믿으려 하지 않았다. 믿지 않으려는 사람들을 믿게 하는데는 많은 노력이 필요했으며 또한 우리 선생님들이 그간 얼마나 못 믿게 했으면 이런가 하는 생각에 이를 때는 지난 17년의 교직생활이 한없이 부끄럽기도 했다. 이렇듯 어려운 가운데에서도 무사히 답사를 마치고 우리가 원하던 성과를 얻어 가벼운 마음으로 학교로 돌아왔다.
학교에 와서는 답사 결과를 바탕으로 빈틈없는 계획을 세우는 일에 최선을 다했다. 2학년 학년부장을 중심으로 한 학년회의에서 답사결과를 발표하고 선생님들의 의견을 쫓아 단체수련활동계획을 차근차근 세워나갔다. 자신들의 의견이 반영되는 계획에 모든 선생님께서 기뻐하였고 단체수련활동계획은 충실해지면서 동시에 교사의 보람도 조금씩 커 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왜 진작에 이런 일들을 하지 못했나 하는 자책도 동시에 마음 한 구석을 메워왔다. 학생들에게 단체수련활동계획을 알리고 참여 동의를 받으면서 절대 다수 학생의 참여에 다시 한번 놀람과 기쁨을 맛보고 지금껏 없었던 기대를 안고 여행을 출발했다.
경비는 오로지 학생들 위해 써야
호사다마라 했던가? 그렇게 순조롭게 진행되던 행사에 그림자가 드리워지기 시작한 것은 첫 식사에서부터였다. 답사할 때의 식사 수준이 아니었다. 학생들의 실망 가득한 눈빛에 나는 스스로를 죄인으로 몰았으며 숙박업자를 불러 책임을 묻기에 바빠졌다. 숙박업자로부터 식사를 개선하겠다는 약속을 받아내고 다음의 일정들을 진행했다. 두 번째 식사에서도 학생들의 실망은 마찬가지였다. 단체수련활동의 개선에 동참했던 선생님들의 도움을 청하면서 단체수련활동의 개선에 냉소를 보이던 선생님들의 눈치를 보게 되었다. 선생님들은 숙박업자에게 거세게 항의하고 숙박업자의 사과와 식사의 질 개선을 약속 받았다. 이 후 편안하고 쾌적한 여행에 모두 만족해 했고 가슴속의 뿌듯함은 말로 다할 수 없었다.
단체수련활동을 개선하기 위하여 정신없이 뛰는 가운데 확인한 사실은 ‘학교에서 이루어지는 많은 행사들이 그러하듯이 단체수련활동도 합리적이지 못한 요소가 많다’는 것을 대부분의 선생님이 공감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아직 많은 선생님들이 “여태 그렇게 해왔지 않느냐?” “다른 학교도 다 그렇게 하지 않느냐?” 하는 소극적 논리로 스스로를 위안하면서 변화를 거부하고 있었다. 그리고 단체수련활동 개선의 장애물로는 첫째, 기득권을 지키고 싶어하는 상인들의 조직적인 방해를 느꼈으며 둘째, 교사가 해내기에는 불가능하다고 생각하는 패배의식이 교사들의 가슴 깊이 자리하고 있음을 확인하였다. 올 단체수련활동을 개선하면서 경비의 투명성과 효용성 확보에 많은 비중을 두다보니 일정이나 내용이 좀 더 교육적이고 다양하게 채워지지 못한 아쉬움을 남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