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고등학교의 실정을 우선적으로 고려하여 시스템을 제작한 후 초등학교도 그대로 적용함에 따라 초등 교과 학습지도와 생활지도, 평가방법 등에서 초등이 가지는 특수성을 충분히 고려하지 못하고 지적되어 왔다. 오랜 기간 초등은 중등과 같은 시스템을 운영해 왔는데, 이는 맞지 않은 옷을 억지로 걸치는 것과 같이 매우 부적적하다는 지적이다. 그간 여러 차례 제기된 초등 현장의 요구의 적극 반영돼야 한다.
지난 9월 교육인적자원부는 그동안 논란이 되었던 교육행정정보시스템 중 교원들의 주업무인 교무·학사 부분의 시행 시기를 내년 3월로 연기하고 나머지 재산, 예산, 회계 등 22개 영역은 당초 예정대로 10월말 개통한다고 밝혔다.
교육인적자원부는 이를 위해 시범운영기관을 확대하고 시행 전 사용자 교육을 강화하는 한편 현장의 저성능 컴퓨터에 대한 교체 작업을 병행키로 하였으나, 교원단체가 그동안 문제로 지적한 교사 업무 증가, 개인 정보 침해, 예산 낭비 문제 등은 여전히 논란의 불씨로 남아 있다.
당초 교육행정정보시스템은 전자정부 11개 핵심과제 중의 하나이자 학교정보화 2단계 사업의 일환으로 계획된 사업이었다.
기존의 교육행정 업무는 교육청별 단위 업무 중심의 시스템 개발로 인해 서식, 코드, 업무 처리 절차 등의 표준이 미비하고 전산 기종, 응용 소프트웨어의 다양성으로 정보 공동 활용과 호환이 결여되어 있다는 지적이 있었다. 그리고 시·도교육청의 비표준화된 업무 처리로 체계적인 교육행정정보화가 어렵고, 도시화와 정보통신 발달 등으로 이에 부응하는 교원, 학생, 학부모의 교육정보 서비스에 대한 요구 증대를 충분히 받아들일 수 있는 서비스 체제 혁신이 부족한 것도 문제점이었다.
전국단위 교육행정정보시스템은 이러한 실정을 감안하여 비효율적 요인을 제거한 종합적이고 체계적인 교육행정정보화를 위해 추진한 사업으로 지난 6월부터 각 시·도교육청에 521억 원 규모의 시스템을 구축하고 2002년 10월 본격적인 시행을 앞두고 있었다.
하지만 이 시스템은 지나치게 방대한 양의 입력 내용과 기존 c/s 방식을 3년도 안돼 바꾸는 것은 예산 낭비라는 지적, 그리고 학생과 학부모, 교사의 세세한 개인 신상정보 입력에 따른 개인 정보 침해 우려, 기초 정보 입력과 각종 누가 기록에 따른 교사의 업무 부담 증가 등 도입에 따른 역기능이 강하게 제기되면서 교원단체들의 거센 반발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근거 없는 낙관론과 대안 없는 비관론을 경계하며 합의의 장으로
교육행정업무의 정보화는 거스를 수 없는 시대의 요구이자 흐름이다. 교육부는 교육행정이 전산화되면 업무의 효율성과 정확성, 투명성이 확보되고 궁극적으로 교원의 업무 경감 및 교육의 질을 제고할 수 있으며, 교육행정정보 공유를 통한 행정서비스의 신속·정확한 민원 처리로 국민 만족도를 높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실제로 학교교육과정, 학적, 성적, 학생생활기록부, 학생생활 등을 관장하게 될 교무·학사 시스템의 경우 시·도교육청의 공동 서버 설치로 학교간 연계가 가능해진다는 측면에서 효율성을, 시간표와 출결관리 등의 자동통계기능 측면에서 자동화를, 그리고 교원이 직접 학교내 서버를 관리하던 과거와 달리 시·도교육청에서 서버를 관리함에 따르는 편리성을 3가지 특징으로 제시하고 있다. [PAGE BREAK]그러나 새 시스템 운영 주체인 일선 교사들의 인식은 사뭇 다르다. 기존 학교종합정보관리시스템과 비교할 때 개선된 점도 있으나, 교육활동을 지원하기 위한 정보입력이라기보다는 유용성이 작은 정보까지 행정편의 위주로 누가 기록되도록 되었다는 것이다.
지나치게 방대한 양의 정보입력은 교사들을 학생들 곁이 아닌 컴퓨터 책상 앞에 묶어 둘 것이라고 우려하고 있다. 특히 시스템에 대한 학교현장의 인식 부족으로 전산 업무를 맡고 있는 교사들의 업무 부담과 책임은 기존 C/S 시스템과 별반 다르지 않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오히려 교육업무에 한정되었던 기존 시스템과 달리 교무·학사 외에 인사, 회계, 물품, 시설 등 교육행정 전반에 걸친 업무로 시스템 관리자의 부담이 가중되는 것 아니냐는 인식이 지배적이다. 실제 현장에서는 교육행정정보시스템 사용을 위한 전자인증서 발급 과정에서 시스템 관리자가 교감, 행정실장, 정보부장 중 누가 되어야 하는지 서로 눈치를 살피는 와중에서 경험이 부족한 젊은 전산업무 담당 교사를 시스템 관리자로 선정하는 학교가 대부분인 형국이다.
현장 교사들의 불신은 이미 99년부터 도입된 학교종합정보관리시스템 운영에서 시작된 것이다. 불완전한 시스템으로 밤을 지새우며 똑같은 일을 반복해야 했던 선생님들의 고생을 교육부가 기억하고 있다면 새 시스템은 철저한 사전 분석과 충분한 시범운영 기간을 두어야 했다. 하지만 10월 도입을 앞두고 여름방학 때 전격적으로 이뤄진 교육행정정보시스템 연수는 잦은 오류와 접속 불가, 잡무 경감 기대를 무색하게 하는 세세한 정보 입력 등으로 선생님들을 시행 전부터 또다시 실망하게 만들었다.
새 시스템 도입 과정에서 교육부에서 운영하는 교육행정정보시스템 홈페이지의 ‘묻고 답하기’ 게시판은 교육부와 학교 현장과의 현실적 괴리를 여실히 드러내며 합의 부재의 우리 교육 현실을 함축하고 있었다.
다소 동떨어진 이야기지만 제7차 교육과정의 적용, 교원 성과급 문제, 자립형 사립고 문제, 그리고 최근의 초등학교 3학년 전체를 대상으로 하는 기초학력 진단평가까지 교육부가 추진하고자 하는 일련의 정책들이 여러 입장 차이로 자주 논란이 되고 있는 것은 정책 집행에 앞서 합리적 의사결정 과정을 거치지 않았기 때문이다.
지금이라도 정부는 교육행정정보시스템의 보완을 위해 일선 교사들을 비롯한 교육공동체의 다양한 의견을 적극적으로 수렴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그리고 상충하는 가치들 속에서 최선이 아니면 차선을 선택할 수 있는 타협과 절충의 지혜를 발휘해야 할 것이다.
같은 목표를 지향하고 있지만 한쪽은 교육적 요구에 역행하는 것이라며 우려를 제기하고, 다른 한쪽은 이것이야 말로 교육 발전을 위한 일이요, 우려하는 문제는 발생하지 않을 것이라 한다. 교사들은 행정업무 지원이 아닌 교육활동 지원이 시급하다고 하고 정부는 행정 지원은 넓은 의미에서 교육활동 지원과 다름 아니라고 한다.
교육에 있어서 ‘학생의 학습권 보장’보다 우선하는 가치는 없다. 그리고 그것은 교사들이 잡무로부터 해방되어 가르치는 본연의 임무에 몰두할 수 있을 때 가능한 것이다. 아이들의 학습 권리가 전자정부 구축과 업무의 효율성 제고라는 명제가 학생들의 교육 활동을 궁극적으로 지원할 수 있을지 두고 볼 일이다.
낭만적이고 근거 없는 낙관론과 구체적인 대안 없는 비관론 사이에서 표류하는 교육행정정보시스템의 가장 큰 피해자는 결국 우리의 어린 학생들이자 교육 구성원 모두이다.[PAGE BREAK]
수단적 효율성만 강조하다 보면 교육적 효과 기대할 수 없어
교육인적자원부는 정보통신기술의 급격한 발전과 교육정보화 조기 시행으로 2001년도에 단위 학교 멀티미디어실 구축, 교단선진화 장비 도입, 학내망 구축, 인터넷 연결, 교사 1인 1PC 보급 등이 완료됨에 따라 좀더 진보된 교육행정정책 패러다임을 보이기 위해 그동안 운영해 오던 교육 행정 업무를 ‘통합적 정보화’로 전면 수정하게 되었다고 전국단위 교육행정정보시스템 구축의 필요성을 밝히고 있다.
이에 따라 16개 시·도교육청 및 교육인적자원부에 시스템을 구축하고 모든 교육행정기관 및 초·중등학교를 인터넷으로 연결하여, 단위 학교 내 행정처리는 물론 교육행정기관에서 처리해야 할 학사, 인사, 재정 등 교육행정 제반 업무를 전자적으로 연계 처리하는 시스템을 구축하였다.
정부의 기대대로라면 이제 곧 획기적인 교육행정 서비스를 통해 행정업무가 대폭 경감이 되고 표준화를 통한 업무 처리의 간편화로 교사는 학생 지도 등 교육활동에 전념할 수 있을 것이다. 말 그대로 일하는 방식이 개편되어 종이 없는 사무 처리가 가능해지고 정보의 실시간 공유 및 통계 작성의 자동화로 신속한 의사 결정이 가능해질 것이다. 하지만 교육부의 이런 기대가 곧바로 현실로 이어질 거라 믿는 교사는 없다.
전국단위 교육행정정보 시스템은 전자정부 구현이라는 당면 사업 앞에서 기술과 정보의 함수에만 집착한 나머지 사람과 공동체라는 변수를 중심에 두고 생각하지 못하고 있다. 진정한 교육행정 정보화의 성패는 기술이나 하드웨어에 있는 것이 아니라 사용 주체와 사용자들의 문화에 달려 있다는 것을 간과하고 있는 것이다. 정보 인프라 구축과 각종 핑크빛 정보화 지수가 곧바로 학교 현장의 정보화 수준을 보장하는 것이 아니다.
최근 몇 년간 급격하게 추진한 교육정보화 사업은 이전의 교육 방법을 모두 옛날 것으로 만들면서 교사들을 컴퓨터 앞으로 내몰았고 사실 교수-학습 전반에 긍정적인 변화도 있었던 것이 사실이나 아직도 많은 교사들이 교육정보화가 왜 필요하고, 그것으로 무엇을 할 수 있고, 무엇을 해야 하는가에 대한 명확한 인식 없이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교육정보화 사업은 변화하는 세대에 대한 시대적 요구임을 부인할 수 없지만 전자 민주주의가 풀뿌리 민주주의의 성공을 전제로 하듯이 교육부가 생각하는 새로운 패러다임의 교육 역시 일방향적인 정부 주도의 수직적 사업 추진으로는 본질적인 변화에 도달할 수 없는 것이다. 철저한 후보 계획(Back Dating)을 통해 교육정보화가 궁극적으로 구현될 학교 현장이 기술이나 하드웨어가 아닌 구성원의 사고와 문화의 틀이 변화로 이어질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
우리는 오늘날 교육현장이 황폐화된 원인이 교육을 교육적 시각에서 보지 않고 사회·경제적인 측면에서 효율성만을 강조한 데서 기인했다는 것을 뼈저린 경험을 통해서 잘 알고 있다. 행정업무의 효율성과 교육활동의 효율성은 함께 생각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교사들이 우려하는 대로 컴퓨터 앞에 앉아 출석을 체크하고 학생 자료를 축적하고 관리하느라 정작 아이들과 상담하고 수업 연구할 시간을 빼앗긴다면 이것이야말로 ‘교각살우(矯角殺牛)’의 우를 범하는 것이다. [PAGE BREAK]
익명권 고려치 않은 개인 정보 수집이 문제
교육행정정보시스템에 대한 부정적 시각 중의 하나가 바로 학생, 교사, 학부모의 개인 정보가 외부에 노출됨에 따른 개인 정보 침해 문제다. 교육부는 개인 정보 침해 및 유출 문제에 대해 개인 정보 침해에 대한 우려를 불식시키기 위해 교사들은 학생생활기록부에 기재되는 필수 사항 외에는 교사들이 필요에 따라 선택적으로 입력하면 되고 해킹은 사업자인 삼성 SDS가 기술적 보안장치를 마련한 만큼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는 하나, 과연 현장에서 선택적인 입력이 이뤄질 지는 미지수고 웹 기반 시스템이 갖는 보안과 해킹의 취약점이 완전히 극복될 것이라 믿기는 무리다.
담임 교사의 학급경영록에 기록해 두는 것으로도 충분한 학부모의 학력이나 직업, 이메일 주소나 직장 연락처 등을 시스템에 기록하는 것은 업무 부담이기 전에 심각한 익명권 침해이다. 그것이 자발적인 기록이 아닐 때는 더욱 그렇다.
최근에는 익명권의 개념이 단순히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 권리가 아니라, 자신이 의식하지 못하는 자신과 관련된 개인 정보가 자신도 모르게 타인이나 집단에 의해 추적되고 수집되고 이용당하지 않을 권리로 해석되고 있다. 특히 주민등록번호와 같은 경우 네트워크 망을 통해 남겨진 개인 정보와 관련된 데이터들을 하나로 통합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어 불순한 의도를 가진 이들에게는 정보 이용 가치가 높은 것임에 틀림없다.
정보가 인간을 소비하는 시대이다. 교육부는 교육적 유용 가치가 낮은 학생, 학부모의 개인 정보의 입력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 필수적인 입력 요소가 아닌 개인 정보의 입력 항목을 삭제하는 것이 현명할 것이다.
맺으며
교육부는 교육행정정보 시스템(NEIS)의 영문 이니셜을 ‘나이스’로 표기하고 있다. 계속되는 논란에도 불구하고 진정으로 우리 교육의 발전을 위해 말 그대로 나이스(NICE)한 시스템으로 정착하기 위한 몇 가지 조건을 제안한다.
첫째, 그간 S/A와 C/S 시스템을 운영하면서 경험한 시행착오와 프로그램 오류를 전국단위 교육행정정보 시스템에서 반복하지 않도록 안정성과 지원체제를 강화해야 할 것이다. 시스템의 잦은 변화는 업무 혼선과 함께 업무 부담을 가중시키므로 지속적인 운영을 통해 교육 공동체 구성원의 신뢰를 얻어야 한다. 앞으로 교육행정 정보화의 화두가 될 모바일 환경에서도 마찬가지다.
둘째, 전산 처리에 맞지 않는 관련 법규의 현실에 맞는 개정이 선행되어야 하고 수기 장부와 전산 자료의 이중처리 여부도 혼돈이 없도록 명확하게 정리해 주어야 한다.
셋째, 시·도교육청과 학교간 시스템 업무 분장 및 책임 소재에 대한 불분명함으로 인해 갈등이 초래될 가능성이 있어 이에 대한 대책이 필요하다. 학교생활기록부 및 교무업무, 회계장부, 인사기록카드 등의 관리 책임은 학교장으로 되어 있으나 교육행정정보시스템의 도입으로 학교내 중요한 자료가 시·도교육청에 있게 되어 발행하는 책임 소재문제가 모호한 상태다.[PAGE BREAK]
넷째, 입시 위주의 교육 현실이 반영되어 중·고등학교의 실정을 우선적으로 고려하여 시스템을 제작한 후 초등학교도 그대로 적용함에 따라 초등 교과 학습지도와 생활지도, 평가방법 등에서 초등이 가지는 특수성을 충분히 고려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되어 왔다. 오랜 기간 초등은 중등과 같은 시스템을 운영해 왔는데 이는 맞지 않은 옷을 억지로 걸치는 것과 같이 매우 부적절하다는 지적이다. 그간 여러 차례 제기된 초등 현장의 요구가 적극 반영되어야 한다.
다섯째, 기관, 학교 평가 등으로 학교경영자의 관심을 유도하고 CEO 연수를 강화하여 관리자의 역할을 제고해야 한다. 이는 학교 차원에서 시스템 운영에 능동적인 태도를 갖도록 유도하는데 효과적임과 동시에 전산 업무 담당자에게 집중된 컴퓨터와 네트워크, 시스템 관리 등의 업무 부담을 적절히 분배하는 데도 기여할 것으로 믿는다. 또한 시도교육청과 지역교육청에서 주관하는 모든 직무연수에 시스템에 대한 연수 시간을 넣어서 시스템 사용자에 대한 연수를 업무별로 세분화하고 다양한 방법으로 실시하여야 한다.
마지막으로 정보화를 위한 표준화·계량화·객관화가 창의적인 교육활동을 저해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교육행정정보시스템은 정상적이고 창의적인 교육과정 운영을 위한 필요 조건에 불과하다는 점을 유념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