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최근 들어 무수히 다양한 세대의 등장을 목격하고 있다. 변화에 민감한 시선을 갖고 있는 대중매체와 구매력 창출이라는 목표를 가진 소비시장이 힘을 합해 끊임없이 다양한 세대 군(群)을 창출해온 때문이다.
소비문화와 대중매체의 합작품으로써 가장 널리 알려진 예로는 X세대를 들 수 있다. X세대란 용어는 더글라스 쿠플랑(Douglas Coupland)이 쓴 동명 소설에서 따온 것으로 쿠플랑 자신은 당시 영국의 펑크 록 그룹으로부터 차용한 것이라 한다. 미국에서 처음 등장했던 X세대는 1961년∼1975년 기간 중 태어난 동년배 집단을 지칭한다. 이들은 '지칠 줄 모르는(restless) 냉정한(disaffected) 세대'로서 정치적 무관심을 통해 정치에 대한 반대의사를 분명하게 표현하고 쇠락하는 미국의 영향력 속에서 자신들의 처지를 합리화하고자 하는 특징을 보이는 것으로 평가되었다.
X세대의 뒤를 이어 등장한 세대로는 N세대, i세대를 들 수 있다. 먼저 컴퓨터-정보통신의 발전 속에서 성장한 N세대는 PC나 휴대폰 접속을 중요시하는 네트워크 세대로서 편지 대신 전자메일을 보내고 얼굴을 마주하는 대화보다는 모니터와 컴퓨터를 매개로 한 채팅을 즐기며 막강한 정보력으로 무장하고 있는 것으로 평가되었다. 한편 인터넷 세대를 지칭하는 i세대는 미국의 마이크로소프트사가 N세대 및 PC세대와 구분 짓기 위해 사용했다고 하는데 이들은 인터넷이 보편화되기 시작한 1994년 이후 태어난 세대를 가리킨다. 인지능력이 생길 때부터 인터넷에 친숙한 이들은 전자책(electronic book)에 막대한 분량의 정보를 담아 가지고 다닐 것이며 이들에게 사이버 공간은 현실세계 못지 않게 중요한 삶의 터전이 되리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단 이들 다양한 세대군에 대한 평가는 양가적(兩價的) 특성을 보이고 있다. 곧 사이버 공간에 익숙한 이들은 아이디어의 참신성과 창조력에 있어서 이전 세대와 비견될 수 없을 정도로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는가 하면 다른 한편에서는 개성이 넘치는 것으로 보이지만 복제화된 개성이 대부분이고 정체성이 없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세대란 무엇인가. 개념을 정의하는 일은 생각만큼 간단치 않다. 세대에 관한 한 모든 학자들을 만족시켜주는 개념 정의를 찾기는 거의 불가능하다. 오히려 세대 개념의 모호성을 통해 인간경험의 다중(多重)성을 추론해보는 것이 더욱 현명한지 모를 일이다.
학자들마다 다양한 세대의 개념
단순한 일대기적 관점에서 생각한다면 한 세대란 평균적으로 개인의 출생에서부터 그 개인의 첫 자녀가 태어날 때까지를 지칭한다. 이 경우 한 세대는 출생율과 사망율의 변화에 따른 가족주기의 변화를 감안한다 하더라도 대략 15년부터 30년 사이라는 계산이 가능해진다. 그러나 세대란 이처럼 단순한 시간 개념에 입각하여 규정될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반론이 만만치 않게 제기되고 있다.
사회학적으로 가장 포괄적인 동의를 확보하고 있는 세대 정의는 독일의 사회학자 칼 만하임(Karl Mannheim)에 의해 규정된 것으로서 "사회 변화의 역동적 과정 속에서 생물학과 역사가 만나는 지점에서 형성되는 사회현상"이 곧 세대라 본다. 여기서 세대를 구성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는 "진정 동시대인이라는 의미를 갖도록 만들어주는 주요한 요인"에 대한 해석이다. 더불어 세대가 사회변화의 동력으로 기능하기 위해서는 세대를 묶어주는 힘(generation bond)이 필요한데 이는 어린 시절부터 동일한 역사적 경험을 공유한다는 사실로부터 무의식적으로 자리하게될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 곧 17세를 전후하여 세계대전을 경험한 세대는 동일한 역사적 상황을 지나오면서 차후 동일한 시대정신을 구성하게될 가능성이 높다고 보는 것이다.
단 만하임의 세대 개념은 탁월한 통찰력에도 불구하고 세대를 보다 과학적으로 측정할 수 있는 분석적 도구를 갖추지 못함으로써 이후 별다른 진전을 보지 못하였다. 만하임의 뒤를 이어 세대 개념에 관심을 집중한 N. 라이더는 세대 개념을 동년배(cohort) 개념으로 치환하였다. 라이더는 만하임의 틀에서 매우 중요한 위치를 점하고 있었던 바 '역사적 경험과 의식을 공유하는 집단'으로서의 세대 개념 대신 동년배 집단은 동일한 역사적 경험에 노출된다는 사실을 강조하는 동시에 서로 다른 코호트의 단순 비교야말로 사회구조적 변화를 연구함에 있어 매우 유용한 전략이라 주장하였다.[PAGE BREAK] 만하임에 충실한 세대 개념이 다시 등장한 것은 M. 릴리와 그의 동료들에 의해서이다. 릴리는 '연령의 사회학'을 통해 사회는 연령에 따라 구조화되고 사회구성원은 연령에 따라 층화되며 자원과 기회의 분배방식을 조직하는 과정에서 연령이 매우 중요한 구분기준이 된다는 소위 '연령 계층론'을 발전시켰다. '연령 계층론'은 동일 코호트가 동일한 노화 과정을 거치는가 하는 문제와 코호트별 노화과정의 차이가 사회구조적 변화와 어떻게 연계되어 있는가 하는 문제를 집중적으로 탐색한다. 여기서 개인적 시간과 역사적 시간이 교차하는 과정에 주목하는 생애주기(life course) 접근법은 연령 계층론이 추적하고 있는 문제의 답을 찾는데 매우 유용한 길을 제시해주고 있다.
세대 개념을 설정하는 작업의 다양성과는 별도로 세대 연구의 주요 관심사는 세대 구분이다. 우리에게 가장 익숙한 세대구분 방식은 인구학적 패러다임에 의한 것으로 미국사회를 대상으로 한 대표적 세대구분은 1900∼1926년 출생한 '진동(Swing) 세대', 1927∼1945년 출생한 '침묵(Silent) 세대', 1946∼1964년 출생한 '베이비붐 세대', 1965∼1979년 출생한 '부머랭 세대', 그리고 1980년 이후 출생한 '베이비붐 자녀 세대'가 그것이다.
W세대에 대한 적극적 의미부여
인구학적 패러다임과 중첩되면서도 다소 방식을 달리하는 세대 구분의 예로는 정치적 접근이 있다. 이 구분 방식은 10대 20대에 경험했던 정치적 사건이 이후의 가치관 형성에 주요한 영향력을 행사한다는 정치사회화 이론을 충실히 따르고 있다. 이 구분에 따르면 1899∼1910년에 출생하여 제1차 세계대전을 경험한 세대, 1911∼1926년 출생하여 대공황과 제2차 세계대전을 경험한 세대, 1927∼1942년 출생하여 냉전과 스푸트니크의 충격을 경험한 세대, 1943∼1958년 출생하여 흑인민권운동·베트남 전쟁·워터게이트를 목격한 세대, 그리고 1959∼1973년 출생한 레이건 세대 등으로 나누어지는데 이들 각각의 세대가 정치적 활동이나 정책 선호도에 있어 각기 다른 성향을 보이고 있음은 물론이다.
해방 이후 '압축성장 과정(농축된 변화)'을 경험해온 우리로서는 세대간 경험의 단절과 세대갈등의 증폭이 일상화되어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럼에도 세대구분에 대한 학자들의 합의는 물론이고 세대 개념에 대한 논의조차 체계적으로 이루어진 경험이 별로 없다는 것은 반성을 요하는 우리의 현실이다. 다만 역사적 경험과 정치적 사건을 동시에 고려하여 회자되고 있는 세대로는 해방과 6.25전쟁을 경험한 세대, 곧 이어 정치적 독재로 인한 사회적 혼란과 극심한 경제적 빈곤을 경험하면서 민주화운동의 선봉에 섰던 4.19세대, 경제개발계획과 새마을 운동으로 대변되는 근대화의 주역을 담당한 5.16세대, 굴욕적 한일외교에 반대하여 민족 자주권과 자존권을 주창하던 6.3세대, 경제성장으로 인한 불평등의 심화를 지켜보면서 정치적 민주화를 희생해야했던 유신세대, 광주 민중항쟁을 거쳐 시민혁명을 통해 민주화를 이끌어낸 6.29 세대 등이 '세대의 정치학'을 구성해왔다 하겠다.
최근 우리가 시선을 집중하고 있는 'W세대'는 과연 어떻게 정의될 수 있는가? 일단은 2002 한일 월드컵이라는 역사적 사건을 공유한다는 점에서 세대 정의의 필요조건을 충족하고 있음은 분명한 것 같다. 그러나 이 경험에 대한 역사적 해석의 내용이 구체적으로 무엇인지, 더불어 W세대로 지칭되는 경험의 특수성이 향후 사회변동의 원동력으로 기능할 것인지 여부는 아직 판단하기엔 시기상조라는 생각이다.
W세대 논의의 핵심은 그 출현 자체가 대중매체의 구성물이라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덕분에 개념이 먼저 출현하고 이 개념에 의미를 부여하고 실체를 찾아가는 작업이 뒤따랐다. 이는 비단 W세대에만 해당되는 것은 아니고 앞서 예를 들었던 대중매체와 시장자본주의의 합작품으로써의 세대 대부분이 유사한 과정을 거쳐 만들어졌다.
과연 실체를 갖고있는 집단인가
흥미로운 사실은 W세대를 구성하는 내용이 무엇인가에 대해 대체로 긍정적이면서 적극적인 의미가 부여되고 있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보면 W세대의 신바람은 대회기간 중 열정적 에너지의 아낌없는 분출, 자발적 공동체 형성, 개방적 세계관 과시 등 가시적인 특징으로 그 모습을 드러냈고, 한국인의 문화적 공통 체험이 되는 과정에서 W세대는 기성세대를 향해 우리 젊은 세대를 새롭게 이해하는 계기를 마련해 주었고 동시에 우리 사회 전반에 새로운 기운을 불어넣어 주었다는 것이다.
그런가 하면 W세대는 기성세대에게 재미를 가르쳐 준 세대이고 재미 자체를 목적으로 추구하는 세대로서 '수단-목적 뒤집기'를 통해 사람끼리의 의사소통을 가능케 하는 결정적 수단을 확보한 세대라는 점에서 매우 긍정적 의미를 부여받아 마땅하다는 것이다.
한데 궁금한 것은 왜 우리가 W세대를 향해 이토록 적극적이고 긍정적인 의미 부여를 하고 있는가 하는 점이다. 그 이유 가운데 하나로는 바로 W세대가 실체로서의 세대이기보다는 의미 구성물로서의 세대이기 때문이요, 존재로서의 세대이기보다 당위로서의 세대이기 때문이라는 생각이다. 곧 W세대 논의는 W세대가 진정 그러한 특성을 갖고 있는가 실증적 검증을 하는데 초점이 모아지는 것이 아니라 W세대는 그러한 특성을 가져야 한다는 '바람'(wishful thinking)의 표현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다반사였다는 인상을 지울 수가 없다.[PAGE BREAK] 이 과정에서 W세대가 등장하게 된 배경(왜 대중매체는 W세대를 부각시켰는가?)에 숨어있는 정치적 논리가 희석되고 W세대의 특성에 대한 실증적 차원의 탐색이 이루어지지 않았음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는 이른바 신세대 및 386세대의 논의에서도 반복된 우리의 나이브함이었다.
앞으로 W세대 논의가 이들의 특징을 스케치하는 수준에서 벗어나 보다 공고한 뿌리를 내리기 위해서는 한국적 맥락에서 세대 개념이 갖는 의미를 치밀하고도 심층적인 수준에서 논의할 필요가 있을 뿐만 아니라 W세대라는 실체를 규명할 수 있는 실질적인 데이터 확보가 따라야 할 것이다. 정작 W세대를 논의하는 과정에서 W세대를 구성하는 행위자 자신의 경험에 대한 주체적 해석이 부분적으로 진행되긴 했으나 매우 취약함은 W세대 논의가 필히 극복해야할 과제이다.
나아가 W세대의 특성을 규명하기 위해서는 필히 여타 세대와의 비교 작업이 수반되어야 할 것이다. W세대의 특성이 존재한다고 가정할 때 그 특성이 연령효과인지 세대효과인지에 대한 구분도 필요하고 생애주기적 관점에서 동일한 역사적 시간과 이질적 개인적 시간의 만남의 의미를 다각도로 해석할 필요가 있음은 물론이다. 이 때 '현대성'이라는 맥락이 W세대의 경험에 어떠한 방식으로 투사되고 있는지 여부도 흥미로운 주제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나아가 가장 중요하게는 W세대가 의미 있는 사회변동의 축으로 작용할 것인지 여부를 검증하기 위한 후속 작업이 일정한 시간을 두고 체계적으로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다른 세대와의 비교 수반되어야
W세대 논의가 일정한 한계를 갖고 있음에도 교육 현장에서 그 의미를 되새겨보기에 충분한 의의가 있다고 생각하는 근저에는 다음 두 가지 이유가 자리하고 있다. 첫 번째 이유는 W세대 논의 속에서 점차 그 중요성을 확대해가고 있는 자아 정체성과 관련해서 그 구성 과정에 긍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가능성이 크다고 판단되기 때문이다.
현대성을 특징짓는 현상의 하나로 자아의 확장과 더불어 '나는 누구인가'하는 정체성(Identity) 문제가 중요한 이슈로 부상하고 있다. 정체성이란 나의 존재에 의미를 부여해주는 원천이자 나의 경험의 총체를 구성하는 개념이다. 바로 이 정체성에 혼란이 올 때 개인은 스트레스를 느끼게 되고 자신을 표현하는 방식과 행위양식에 있어 일관성을 결여한 모순을 보이게 된다.
여기서 정체성과 역할을 둘러싸고 개념상의 혼돈을 일으켜서는 안 될 것이다. 역할이란 사회제도 및 조직에 의해 기대되는 바 행위규범을 구조화한 것으로서 규정을 따르면 역할 수행에는 별다른 문제가 없다. 그러하기에 역할은 동시에 다중의 역할 수행이 가능하며 역할갈등이 발생할 경우엔 협상 전략을 활용하여 해소 방법을 찾아낼 수 있다.
반면 정체성의 경우는 역할과 달리 다중의 정체성을 갖는다는 것이 불가능할 뿐만 아니라 위험하기까지 하다. 물론 정체성과 역할은 중복되기도 한다. 아버지가 된다는 것은 아버지 역할을 담당하게 되는 것이자 동시에 자신이 아버지임을 내면화하는 것이라는 점에서 그러하다. 그러나 정체성은 존재 이유를 제공해주고 개별자로서의 주체성을 구성한다는 점에서 역할보다 더욱 강력한 의미를 갖고 개인에게 다가온다.
이들 정체성이 구성되는 방식에는 다음 3가지 유형이 있다. 첫째, 합법적(legitimizing) 정체성은 기존의 지배질서를 합리화하기 위해 구성원들에게 부과하는 내용으로 구성된다. 둘째, 저항적(resistance) 정체성은 지배질서로부터 소외되고 낙인찍힌 행위자들에 의해 구성되는 것으로서 이들의 생존 전략은 지배구조에 반대하거나 지배질서로부터 자신을 차별화 하는 '정체성의 정치학'을 구사하게 된다. 셋째, 투사적(project) 정체성은 행위자들이 사회적 위상을 재정립함으로써 완전히 새로운 정체성을 구성한 결과로 나타나게 된다.
정체성이 우리에게 중요한 이유는 정체성을 구성하고 있는 내용이 개인에게 허용해주는 긍정적 의미로부터 찾을 수 있다. 이 점에서 W세대에게 부여된 다양한 긍정적 의미 곧 '파격적 옷차림과 열광적 응원을 통한 개성의 발휘'에서 감지되는 '자신감' '개인과 공동체의 조화, 가벼움과 무거움의 조화'를 이루어낸 디지털 세대의 '융합적 잠재력' 등은 지금까지 기성세대의 시각에서 부정적 이미지로 채색되어온 청소년들에겐 새로운 저항적 정체성을 넘어 투사적 정체성을 형성해 가는 풍부한 토양이 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청소년들의 긍정적 정체성 발견
더 더욱 W세대의 등장에 중요한 배경으로 작용한 네트워크 사회에서는 정체성 구성 과정이 보다 다이내믹하게 진행된다. 네트워크 사회에서는 권력을 가진 엘리트층이 합법적 정체성을 부과하는 작업이 점차 어려워질 것이란 전망이 나오고 있고 영국의 사회학자 앤소니 기든스가 주장했던 '성찰적 자아 개념' 역시 네트워크 사회에서는 그 의미가 퇴색하리라는 예측이 나오고 있다.
대신 네트워크 사회에서는 공동체적 성향에 기초한 저항적 정체성이 주류를 형성하면서 '지금까지 정치, 경제, 사회, 문화적 기회로부터 부당하게 배제 당해온 경험의 공유'를 기반으로 자신들의 집단적 경계를 강화하는 동시에 기존의 가치 및 지배질서를 전복해 가리라는 것이다. 이 때 물론 배타적 집단주의는 경계해야할 것이나 W세대의 핵심으로 부상하고 있는 청소년 세대가 스스로의 정체성에 포함시키는 가치에 대해서는 적극적 의미를 부여해 주어야할 것이다. '검은 것은 아름답다'를 통해 흑인의 정체성에 내재되어 있던 콤플렉스를 극복하고 새로운 정체성 구성에 성공한 예나, 가부장제하의 정체성을 부인함으로써 여성 자신은 물론 남성과 어린이의 해방까지 모색한 페미니즘의 시도 등은 앞으로 W세대 정체성 구성에 있어 타산지석으로 삼을만한 역사적 교훈이라 하겠다.
W세대의 의미를 교육 현장과 관련시켜 논의하고자 하는 두 번째 이유는 민족국가의 중요성이 감퇴되는 자리에 새롭게 부상하기 시작한 문화적 민족주의(cultural nationalism)의 씨앗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이른바 세계화의 도도한 물결이 전 세계를 휩쓸고 지나가면서 민족국가의 등장과 쌍생아를 이루던 민족주의의 쇠퇴를 가져온 이 시대에 오히려 '대∼한민국'으로 상징되는 민족 개념의 부상은 단순한 흥미를 뛰어 넘어 귀추가 주목되는 현상임에 틀림이 없다. 이에 W세대를 주도한 청소년을 중심으로 새롭게 부상하고 있는 민족의 의미를 교육현장에서 어떻게 정리해낼 것인가가 우리의 중요한 과제로 등장한 셈이다.[PAGE BREAK] 지금까지 세계화의 흐름 속에서 민족주의의 쇠퇴를 기정사실화 해온 입장에서는 민족이란 특수한 역사적 상황을 전제로 민족국가 건설을 주도하던 일부 엘리트층이 고안해 낸 '상상의 공동체' 내지 '인위적 역사의 창조물'에 불과하다는 논리를 펴왔다. 그러나 다른 한편에서는 점차 축소(shrunken)되고 동질화되는 하이테크 세계 속에서 오히려 그들과 우리를 명백히 구분하려는 정체성의 욕구가 강렬해지는 현상에 주목하는 학자들이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이들은 오늘날의 '민족'은 국가와는 독립적으로 자신들만의 의미를 구성해가기 시작했다는 사실에 주목한다. 어쩌면 민족국가가 상상의 공동체라는 사실은 비판의 대상이 아니라 적극 수용해야하는 명제인지도 모른다는 것이 이들의 입장이다. 그 이유는 민족에 내재되어 있는 소속감이나 아이콘 숭배는 예외 없이 문화적으로 구성되어왔다는 점에서 그러하다는 것이다.
W세대와 우리 교육현장의 과제
이제 네트워크 사회에서 '민족'을 화두로 할 때면 첫째, 민족주의는 민족국가와 독립적으로 존재한다는 사실 둘째, 민족주의 및 민족국가를 서구중심의 시각에 비추어 비(非)서구에 이식된 현상으로 보아서는 안 된다는 사실 셋째, 민족주의는 엘리트의 전유물이 아니고 대중 또한 엘리트에 의해 좌지우지되는 수동적 대상이 아니라는 사실 등을 인정해야 함은 물론이고 더불어 오늘날의 민족주의는 전진적(proactive)이기보다 복고적(reactive)이기에 정치적 성향보다는 문화적 색채가 강하고 기존 국가체제를 대변하기보다는 전통 문화로서의 국가 이미지를 옹호하려는 경향이 강함을 주지해야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오늘날의 민족주의는 앞에 '문화적'이란 수식어를 붙여 마땅하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이 개념은 코사쿠 요시노(Kosaku Yoshino)가 일본의 민족주의를 분석하면서 고안해낸 개념인데 그에 따르면 "문화적 민족주의란 국민의 문화적 아이덴티티를 창조하고 유지·강화함으로써 국가 공동체를 복원하려는 것"으로 "이는 시기적으로 문화적 아이덴티티가 약화되고 위협받을 때 주로 등장"하게 된다는 것이다.
문화적 민족주의 개념은 W세대가 보여주었던 바 열광적인 '대∼한민국'의 외침 속에서 배타적 집단주의나 열광적 국가주의와는 분명 차별화되는 독특한 '하나됨'을 구성했다는 점에서 우리의 경우에도 일정한 현실 적합성을 확보했다고 생각된다. 엘리트와 대중의 구분을 넘어선 W세대의 민족적 공동체 의식 속에서 '대한민국 국민이라는 사실이 자랑스럽다는 기억이 오랜 생명력을 획득'하게 되고 '대한민국이라는 코드를 통해 우리와 그들이 융합적 공동체를 이룬 경험'이 공유된 역사를 구성하게 된다면 W세대의 민족은 문화적 민족주의의 이름을 부여받기에 모자람이 없는 우리 모두의 자산으로 승화될 것이다.
이제 우리의 교육 현장 앞에 놓인 과제는 W세대가 공유하게 된 경험의 다채로움에 충분한 의미를 부여해주고 나아가 이들만의 경험이 포스트 월드컵 시대를 열어 가는 한국사회에 역동적 변화의 원동력이 될 수 있는 길을 적극 찾아주는 일이 되어야 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