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무교육에 속하지 않는 고등학교의 경우 현행 초·중등교육법상 학생선발의 원칙은 학교가 학생선발권을 갖는 것이다. 고교평준화란 평준화 지역에 소재하는 고등학교의 학생 선발에 있어서 지방교육당국이 학교-거주지간 근거리 원칙에 따라 입학생을 결정하도록 하는 학생선발상의 예외 조치를 두는 것이다.
2003년 현재 고교평준화는 전국 12개 시·도의 23개 지역(도시)에서 실시되고 있다. 서울·광역시 및 경기 지역 8개시, 충북 1개시, 전북 3개시, 경남 3개시, 제주 1개시에서 실시되고 있다. 전국 일반계 고교의 약 절반이 평준화고교이고 일반고교 학생의 약 70% 정도가 평준화 체제 하에서 수학하고 있다.
고교평준화 정책은 1974년 서울·부산에서 도입된 이후 1975년 대구·인천·광주로, 1979년에는 대전·전주·수원·청주·춘천·마산·제주로, 1981년에는 창원까지 평준화 지역이 확대되는 등 1980년대까지는 확대 추세에 있었다. 그러나 군산, 목포, 안동(1990)지역과 춘천, 원주, 이리(1991) 및 천안(1995)지역이 평준화 지역에서 해제되면서 1990년대에는 평준화 대상지역이 축소되는 경향이 있었다. 이는 1990년에 중소도시 고교의 평준화 여부 결정권한을 교육감에게 일부 위임(1990. 8)함에 따른 결과였다. 한편 2000년대에 들어서는 평준화 정책이 다시 확대되는 추세로 반전되었다. 경기도의 성남, 고양에서 고교평준화가 실시(2002. 2)되고, 이어 목포·순천·여수 지역에서도 평준화 실시가 결정되었으며, 이밖에, 경기(광명·의정부), 경남(김해), 경북(안동·포항), 강원(춘천·원주·강릉) 등에서 고교평준화를 새로이 도입하기 위한 논의가 진행되고 있는 상황이다.
평준화의 도입과 확대, 축소, 그리고 다시 확대로 이어지는 정책의 부침이 이어지는 동안 평준화에 다른 문제점의 보완을 위한 조치들이 있었다. 1995년 5·31교육개혁안 발표를 계기로 1996년도부터 평준화 지역고교는 ‘학군내 선복수지원 후추첨 방식’을 도입하고, 1997년부터 특목고의 학교별 필기시험이 폐지되었으며, 후속 조치로 특성화고교 (`1998) 및 자율학교(1999)의 도입, 자립형 사립고 시범운영(`2002년 3교, 20`03년 3교 지정)이 이어졌다. 이러한 정책은 고교평준화를 기본으로 하되, 학생들의 학교선택권을 확대하기 위한 부분적 개선 조치 성격을 지닌 것이었다.[PAGE BREAK]아울러 평준화 대상지역 결정에 있어 교육감의 의사를 따르는 것을 넘어서 평준화지역 지정권한 그 자체를 지방으로 이양하려는 논의가 90년대 말부터 계속된 끝에 2003년에 평준화 실시지역 지정여부를 지방자치단체가 ‘시·도조례’로서 자율적으로 결정하도록 ‘초·중등교육법시행령’을 개정하고 초·중등교육법 개정을 통해 고교평준화 여부의결정과 시행 자체가 교육감의 권한으로 넘어가게 되었다. 즉, 지금까지 고교평준화 정책의 법령상 근거는 초·중등교육법 제47조 및 동시행령 제77조 내지 제89조와 이에 따른 교육인적자원부령인 ‘교육감이고등학교의입학전형을실시하는지역에관한규칙’에 두고 있었는데 동 규칙이 폐지되고 각 시·도 교육조례로 결정하도록 바뀐 것이다.
2. 정곡을 벗어난 평준화 논쟁들
이상 약술한 정책의 흐름과는 별개로 평준화 철폐 또는 보완을 둘러싼 논란이 한창이다. 이러한 논란은 몇 가지 점에서 시대착오적인 면이 있음을 먼저 지적하고자 한다,
평준화는 정해진 도시 지역에 있어서 학군에 따른 학생배정이 그 핵심이다. 그런데 우리는 현재의 학교체제 하에서 이 방식을 배제하고 다른 방식을 원하는 것인가? 평준화 이전의 원칙대로 수많은 지원자 중 학교가 원하는 학생을 학교가 골라 선발하는 방식, 아니면 일정 자격을 갖춘 학생이 지원하면 학교는 무조건 수용하되 대기번호표를 주는 방식, 많은 사람들이 고교평준화 이전의 고등학교입시 체제로 돌아가기를 원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지나간 과거를 되돌리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지금 우리나라는 40∼50대 연령층에서 심각한 인적 자원 부족으로 고생하고 있다. 나라와 경제는 선진국 문턱에 있는데 어느 모로 보나 중추 역할을 해야 할 이 연령층 대다수가 초등학교 또는 중학교를 겨우 졸업한 역량 부족 상태에 있는 것이다. 사회 전반적 구조조정이 부진하고 그로 인해 국가 발전에 심각한 장애가 초래되는 원인이 바로 여기에 있고 이러한 인재 부족은 바로 과거 평준화 이전 입시에 의한 선발중심의 고교체제가 낳은 교육기회의 억압으로 인한 것이다. 우리가 1960∼1970년대에 고교진학을 좀더 개방적인 체제로 바꾸고 고교교육 확충을 했더라면 한국이 지금과 같이 중년의 전문인력 부족으로 선진국과 개도국 사이에 끼어 주춤거리고 있지는 않을 것이다.
고교진학 대상 인구 100%가 고교를 진학하고 모든 학부모가 좋은 고등학교를 원하는 상황에서 고교입시를 전면적으로 부활하는 것은 그야말로 미친 짓이다. 아마도 중학생들에게는 그들을 위한 특별한 지옥이 새로 창설되는 것과 다를 바 없을 것이며, 모처럼 신장된 교육기회가 대폭 억압될 것이다. 반면 고등학교들에게는 전국적으로 서열화되는 위험만 감수한다면 그 이상의 천국이 따로 없을 것이다. 학교 간 경쟁이 필요 없이 학생들만 경쟁시키면 되는 상황에서 학교운영은 땅 짚고 헤엄치기처럼 쉬울 것이기 때문이다.
고교입시부활론자들이 시장원리를 내세우는 것은 ‘시장’의 본질을 전혀 모르는 단견의 소치라고 생각된다. 정통파 경제학이 정의하는 정상적인 경쟁시장에서는 공급자는 소비자를 선택하지 못하는 반면(그 어떤 용감무쌍한 공급자가 특정 소비자를 골라서 상품이나 서비스를 공급할 것인가?) 소비자의 선택권은 충분히 보장되며 경쟁은 소비자들 간에 벌어지는 것이 아니라 공급자들 간에 벌어진다.[PAGE BREAK]즉, 자유경쟁시장에서는 소비자 주권이 구현되는 것이다. 학생선발의 자유와 입시부활은 이와는 정 반대의 상황을 낳는다. 공급자인 학교는 학생을 고르고 선택하며, 소비자인 학생과 학부모는 선택받기 위하여 치열하게 상호 경쟁하는 것이다. 이는 자유경쟁시장과는 정반대의 상황이며 여기에는 시장원리가 아닌 폐쇄적 클럽 원리가 작동하게 된다. 평준화 논쟁에 있어 시장원리를 명분으로 학교의 학생 선발권을 부르짖는 몽매함은 최소한 벗어나야 할 것 같다.
한편 평준화 자체가 사교육비를 증가시킨다는 주장은 뚜렷한 근거가 없다는 점이 지적되어야 한다. 평준화제도와 비평준화 제도를 번갈아 채택해 보았던 군산시와 익산시의 사례연구에 따르면 군산시와 익산시의 평준화 해제정책이 중학교 학생들의 사교육비 과다 지출의 병폐를 더욱 낳고 있다고 지적된다. 오히려 비평준화제도가 사교육비를 증가시킬 개연성이 훨씬 높음을 알 수 있다. 오히려 국가에 의한 교육과정의 통제, 대학입시에 의한 입시교육, 경직된 학교운영 등에서 사교육 만연의 원인을 찾는 것이 보다 설득력이 있을 것이다.
평준화 정책의 또 다른 측면은 그것이 사립학교의 자율성에 대한 정부의 규제라는 측면이다. 즉 사학의 학생선발권을 박탈하고 학생을 지방 교육당국이 배정하는 조치의 필연적인 결과로 학생등록금 역시 공립학교와 동일 수준으로 묶을 수밖에 없으며, 그에 따른 사학재정 결함을 지방교육당국이 보조해 주는 조치가 뒤따를 수밖에 없다. 평준화 비판론의 핵심의 하나는 사학의 자율성을 위해 평준화 틀에 묶인 사립고등학교의 학생선발권과 등록금 책정권을 되돌려 주고 정부보조를 철회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평준화 이전 상황을 회고하면, 당시 명문 사립을 제외한 많은 사립학교들이 존폐의 기로에 서 있었으며, 평준화 조치로 인해 이들이 준 공립화된 체제 하에 존속을 보장받음으로써 비로소 고등학교교육의 보편화가 가능하게 되었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 그렇기 때문에 현재의 모든 사립고등학교를 일괄적으로 전면 평준화 이전 상태의 순수 사립화 할 수는 없다. 그렇다면 사학의 자율성 회복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과연 무엇을 원하는 것일까? 경향 각지의 옛 명문 사립고등학교들만의 화려한 부활을 원하는 것은 아닌지 모를 일이다. 그럴 경우 공립의 옛 명문고들은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다.
옛 명문 사립고들이 부활을 원한다면 현행 제도 하에서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현재의 비평준화 지역으로 학교를 이전하고 비싼 등록금과 우수한 교사 및 훌륭한 기숙시설을 확보하여 동창회의 전폭적 지지 하에 또는 전북의 상산고등학교나 민족사관고등학교처럼 운영하면 되는 것이다. 외국 고등학교에 유학 갈 많은 우수 학생들을 유치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평준화 철폐론자들은 이러한 방식은 원하지 않으며, 굳이 현재의 평준화지역 내에서 평준화를 깨고 그 틀 밖의 자유로운 고등학교를 원하는 것이다.
3. 평준화 논쟁의 진면목 : 보편화된 중등교육 하에서의 영재교육 문제
고교평준화는 개념상 입학방식과는 또 다른 측면으로 정의되기도 한다. 즉, 특정 교육감 관할 하에서 평준화체제에 편입된 모든 학교의 질(시설, 교사, 교육과정, 교육재정 측면으로 정의된 교육의 질)은 모든 학교에서 동일하다는 공식이 바로 그것이다.[PAGE BREAK]이 명분을 뒷받침하기 위해 모든 학교시설은 교육감의 통일적 관리 하에 편입되며, 교사들은 정기적으로 순환됨으로써 동일한 전체 풀(pool)을 형성한다. 교육과정 역시 모든 학교가 교육부-교육청에 의해 편성된 통일 교육과정을 운영하며, 교육재정 측면에서도 학생 1인당 지출의 동등화가 평준화 체제의 핵심이다. 바꾸어 말해 평준화로 인해 고등학교는 고도의 관료화된 일반성의 질서 속에 편입될 수밖에 없으며 결과적으로 평준화는 관료제화를 대폭 신장시키는 것이다.
현재 우리나라의 교육체제는 세계적으로도 유례 없이 단선형으로 일관되어 있으며, 이러한 단선형 교육체제 내부는 획일적 가치관이 지배할 수밖에 없다. 학교정책은 인간발달에 관한 가치관을 구현하는 가치정책의 성격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단일성과 통일성의 원리에 의해 조직된 교육관료제는 필연적으로 그 내부를 지배하는 획일화된 가치관에 의해 학교를 운영하게 된다. 교육감들이 운영하거나 그 관할 하의 특목고나 특성화 고교가 근본적인 어려움에 부딪치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똑같이 교육감 관할 하의 학교인 상황에서 과연 어떠한 정당한 근거로 특목고나 특성화 고교에는 다른 일반고등학교에 비해 재정, 교원, 시설 측면에서 특별한 취급을 할 수 있을 것인가.
우리나라에서 영재교육법이 제정된 이후 법률에 따른 영재교육체제를 구축함에 있어 가장 고심해야 했던 점이 바로 이 문제였다. 기왕의 초·중등교육법 체제 아래 교육감 관할 하의 특목고 역시 영재교육을 기치로 내걸었던 것인데, 왜 별도로 영재교육법을 필요로 하게 되었는가에 대한 성찰이 필요했던 것이다. 그 해답은 교육감이 단선형 체제 하의 일반 고등학교와 우수인재를 위한 특별한 학교를 함께 운영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인식, 바꾸어 말해 영재학교는 별도의 지배구조를 필요로 한다는 인식을 토대로 찾을 수밖에 없었다.
지금까지의 고교평준화를 둘러싼 공방의 이면에 깔린 진정한 문제는 한 마디로 이미 100% 보편화된 고등학교교육 체제 하에서 어떻게 우수한 인재들을 위한 충분한 교육기회를 제공할 것인가 하는 시대적 과제이다. 이 문제는 막바로 그 문제 자체의 원인과 해법을 찾는데서 정책의 발전방안을 찾아야 할 문제이며, 엉뚱하게 현행제도를 철폐하고 과거로 돌아가자는 것은 전혀 올바른 접근방식이 아니다.
문제의 원인은 해당 학령인구의 거의 전원을 수용하는 보편화된 고등학교교육이 획일적 가치관에 의해 지배된다는데 있는 것이다. 해답의 방향은 보편적인 교육기회와 교육적 가치관의 토대 하에서 특수한 교육기회와 교육적 가치관이 충분히 보장되는데서 찾아야 할 것이며, 이는 단선형 학제와 그 통일적인 지배구조 이외에 다수의 복선형 학제와 다원적 지배구조를 병행함으로써만 가능하다.
구체적으로 말해서 설립주체와 지배구조 면에 있어서 국·공립학교에도 교육감 외에 시장, 공공기관과 공공단체가 운영하는 여러 가지 유형의 국·공립이 있을 수 있고, 사립학교에도 교육감 관할 하의 평준화된 사립 외에 보다 독립적인 여러 유형의 사립학교가 있는 체제를 지향해야 한다. 특별한 학교에서 특별한 교육을 원하는 학부모와 학생들에게는 그들이 원하는 학교를 그들을 돌봐야 할 공교육 행정 이외의 행정당국에서, 또는 단선형 학교체제를 책임지는 교육당국의 관할을 벗어난 순수한 사립학교에서 마련해 주면 될 것이며, 집 가까운 평준화된 학교를 원하는 학생과 학부모들에게는 교육감들이 평준화 고교체제를 통해 서비스하면 되는 것이다. 양자가 서로 모순되거나 이율배반으로 충돌하는 것은 아니다. 결국 교육에 있어서 가치관의 다양화, 선호의 다양화에 학교가 부응하려면 이제는 복선화를 지향해야 하며 그것이 바로 21세기형 교육 민주화의 방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