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정부들에서도 예외없이 과외대책이나 사교육비 경감 대책들을 수립·추진하여 왔다. 지금까지 정부가 추진해 왔던 사교육 정책의 특징들을 요약해 보면, 입시 사교육대책 추진기(1968∼1973)→ 교육 금지기(1980∼1981)→사교육 금지의 변경·보완기(1981∼1997)→과외금지 위헌 판결로 인한 사교육 전면 허용기(2000∼)로 정리될 수 있다(최상근, 2003: 37). 그러나, 지금까지 정부가 추진해 왔던 과외 정책은 사교육 문제의 직접적인 원인에 대한 개선보다는 주로 과열과외에 의해 파생된 교육적·사회적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한 대책으로 입안·시행되어 왔다(최상근, 2003: 41). 즉 지금까지 추진되어 온 과외정책들이 교육 문제의 근본적 해결보다는 사회적 불평등, 위화감 등의 문제 해결에 더 많은 관심을 두고 정책의 수립과 추진이 이루어져 온 것이다. 이러한 사교육비문제 해결 방식은 원인에 대한 근본적인 치유보다는 주변문제에 초점을 두었기 때문에 사교육비는 오히려 해가 갈수록 천문학적으로 증가하고 있는 실정이다. 한국교육개발원이 발표한 자료에 의하면 2003년 전국 초·중·고등학교 학생의 사교육비 참여율은 72.6%이며, 이로 인해 소요되는 사교육비는 13조 6000억 원을 넘어섰다(김양분 외, 2003). 이는 2001년도에 비해 2조 6000억이 증가한 금액이며, 우리 나라 전체 교육예산인 26조 원의 절반이 넘는 실로 엄청난 규모라 할 수 있다.
현재의 참여정부에서는 학부모의 고통을 가중시켜 온 사교육비 문제를 서민생활의 안정을 위해 반드시 해결할 것이라고 그 개선 의지를 밝힌 바 있다. 이러한 의지는 사교육비 경감방안으로 구체화되었으며, 이 안에는 학교교육 책무성 강화, 특기·적성교육 활성화, 대학입시제도의 개선, 사교육기관의 역할 정립, 학부모 의식과 사회풍토 개선 등 5개 부문에서의 사교육비 경감방안이 제시되어 있다. 정부는 사교육비 경감 방안의 제시뿐만 아니라 이러한 안들에 대한 국민의 여론수렴을 위해 사교육비 경감대책에 대한 여러 차례의 공청회를 실시하는 등 사교육비 경감을 위한 대책 마련에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2. 사교육비 증가 원인은 무엇인가
사교육비 증가의 원인에 대하여 우리 사회가 공통적으로 합의하는 문제들은 공교육 위기, 학부모의 지나친 교육열, 지나친 대학입시 경쟁구조, 학벌 지상주의 등이라고 할 수 있다. 이 문제들에 대한 내용을 간략히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PAGE BREAK]1) 공교육 위기 “졸고 있는 공교육, 깨어있는 사교육.” 공교육의 위기를 단적으로 표현한 말이다. 공교육 제도는 국민 누구에게나 필요한 공통교육을 제공하는 보편성을 특징으로 하기 때문에 그 기능이 아무리 강화되고 잘 운영된다고 해도 학습자의 다양한 욕구를 충족시키는 데에는 근본적인 한계를 지닐 수밖에 없다. 이와 같이 공교육이 채울 수 없는 부분을 사교육이 대신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사교육비의 증가가 국가적 차원에서까지 논의되고 있으며, 이러한 교육 현실은 공교육이 제 역할을 다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우리 사회의 전반적인 공교육 위기의식과 무관하지 않다는 데 있다. 이러한 공교육에 대한 불신은 학생과 학부모를 학원과 과외 현장으로 내몰고 있으며, 이로 인해 발생하는 과외비용은 가정경제에 적지 않은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2) 학부모의 지나친 교육열 우리 나라 학부모의 지나친 교육열은 세계적으로 유명하다. 이러한 우리 나라 학부모의 지나친 교육열은 브룸(Vroom)의 기대이론과 게임이론의 죄수의 딜레마(prisoner’s dilemma)로 설명될 수 있다.
사교육비 증가를 브룸의 기대이론으로 설명해 보면, 학생, 학부모는 과외를 통하여 성적이 향상될 것이라는 기대감과 성적향상으로 인하여 명문대학에 진학할 것이라는 기대감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사교육 참여를 결정하게 되므로 사교육비는 당연히 증가할 수밖에 없다. 뿐만 아니라 사교육을 통해 자식의 학교 성적을 상승시켜 보려는 부모들의 수가 늘어남에 따라 누구나 다 사교육을 받는 상황이 되면서, 당연히 그 중에서도 특별히 뛰어나다는 학원에는 고액의 교육비를 지출하면서까지 학생들이 몰리고 있다. 부모들 역시 남의 아들보다 내 아들이 더 잘하도록 하기 위해서는 비싸더라도 당연히 이를 감수해야 되지 않겠느냐는 죄수의 딜레마에 빠져 국민 모두가 경쟁적으로 사교육에 지출을 하고 있는 것이다.
3) 지나친 대학입시 경쟁구조 내 자식은 보다 나은 대학에 보내야겠다는 부모의 갈망은 우리의 교육 현실을 대변해 주고 있다. 지금처럼 대학입시를 위한 지나친 입시경쟁구조가 개선되지 않는 한 공교육 내실화를 아무리 부르짖더라도 이는 소용없는 허공의 외침일 뿐이며 사교육비의 증가는 결코 멈출 수 없는 브레이크 없는 자동차와 같다.
4) 학벌지상주의 일류대학 진학을 위한 지나친 교육경쟁 구조의 맥락에는 우리 나라의 학벌주의가 작용하고 있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특히 우리 사회의 경쟁구조에서 학력과 학벌이 차지하는 비중은 매우 높다. 학벌주의로 인해 일류대학 진학 그 자체가 높은 가치를 평가받고 있는 우리의 현실에서 학부모의 사교육에 대한 의존과 투자 강화는 이미 오래 전부터 예견된 결과라 할 수 있다.[PAGE BREAK]이러한 학벌지상주의는 학부모의 교육열을 부추기게 되는 직접적인 원인이 되고 있다.
3. 사교육비 증가, 왜 문제인가
원칙적으로 볼 때 사교육은 개인의 행복추구를 위한 사적 행동 영역에 속하는 교육행위이므로 국가적 차원에서의 공적 관심의 대상은 아니다. 그러나 이러한 사교육이 국가적 차원에서 논의되는 이유는 사교육비의 증가가 공익에 많은 부작용을 초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사교육비 증가로 인해 파생되는 부작용을 학교교육의 교육력 약화, 학생 발달단계의 왜곡, 교육기회의 불평등 확산 등의 문제들을 중심으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 학교의 교육력 약화 사교육으로 인해 학교교육과정의 왜곡 현상이 발생하고 있다. 사교육 기관에서의 선행학습으로 인해 지식이해의 단편화 및 학교교육에 대한 흥미 결여는 심각한 문제임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류방란, 2003: 50). 즉, 과도한 사교육은 학급 내에서 학생들의 수준차이를 더욱 크게 만들고 있으며, 학원에서의 선행학습으로 인해 일부 학생에게는 정상적인 수업이 수준 이하로 인식되어 수업에 참여하고자 하는 흥미를 떨어뜨리게 되고 이는 공교육 위기를 초래한 외적인 원인으로 작용하게 된다.
2) 학생 발달단계의 왜곡 학생들은 발달단계에 따라 적절하게 경험해야 할 일들이 있고, 그 속에서 배워야 할 것들이 있다. 그러나 반복학습 중심의 사교육은 이러한 교육기회를 상실하게 만들고 있다. 입시학원에 수강을 시작하는 초등학교 고학년부터 독서, 실험, 여행, 자연체험, 답사, 지역사회와의 유대, 다양한 접촉이 필요한 교우관계 등에 할애되는 시간이 급격하게 줄어들고 있는 것이다(최상근, 2003: 24). 그러나, 이러한 우려를 비웃기라도 하듯 발빠른 사교육에서는 자연체험, 과학실험, 독서토론 등을 위한 사교육 프로그램을 마련해 놓고 있으며, 이러한 프로그램은 이미 그 규모를 무시할 수 없을 만큼 확산되어 있다.
3) 교육기회의 불평등 확산 사교육 기회는 학부모의 지불능력에 따라 분배되는 경향성을 가지기 때문에 교육투자의 사회적 효율성이 낮아질 수 있고 이러한 계층간에 지출격차는 사회·경제적으로 혜택받지 못한 빈곤 가계의 계층상승욕구를 좌절시키는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 이처럼 소득수준에 따른 과외비 지출수준이 대학진학 경쟁력의 차이를 발생시킬 가능성이 높으며, 이러한 문제는 - 최근 서울대학교 사회과학연구원의 고소득층 자녀의 서울대 입학이 저소득층보다 20배 높다는 연구결과에서 제기되었듯이 교육기회의 불평등으로 인한 계층간의 불평등을 고착화시킬 우려를 더욱 높게 만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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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사교육비 줄이기의 기본 방향
1) 공교육의 제 자리 찾기: 학교교육의 본질 회복 대전에서 개최된 사교육비 경감방안에 대한 공청회에서 “학원은 학생이 모르면 알 때까지 가르쳐 주는데, 학교는 학생이 모르면 내가 죽는다는 각오로 가르칠 수 있는 적극성이 있습니까?”라는 물음이 제기된 적이 있다. 이는 공교육을 책임지고 있는 교사들에게 지금보다 적극적인 역할을 원하는 목소리일 것이다. 공교육이 붕괴하고 있다는 현실은 교사가 제대로 공급자로서의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에서 연유한다.
공교육 위기의 해법은 학교교육이 본질을 찾는 것이며, 학교교육의 본질 회복은 공교육을 담당하고 있는 교사들이 사교육 담당자들이 수행하고 있는 역할 그 이상을 수행하고 이를 학생과 학부모 및 우리 사회가 신뢰함으로써 이루어지는 것이다. 이러한 견지에서 교사들은 외적인 여건을 탓하기 이전에 먼저 충분히 역할을 다했는지를 자성하는 마음으로 먼저 되돌아보아야 할 필요가 있다. 교육의 질은 교사의 질을 넘을 수 없다는 가장 평범한 경구가 새삼 새롭게 느껴진다.
2) 대학 입시제도의 개선 교육계는 참여정부가 갈수록 치솟는 사교육비문제에 대해 해결의 실마리를 잡으려면 현재 서열위주의 대학구조를 반드시 극복해야 한다는 것에 대해 입을 모으고 있다. 대학 입시제도와 대학 서열화 구조를 근본적으로 뜯어고치지 않는 한 어떤 정책을 내놓더라도 그것이 사교육비 경감의 근본적 처방이 될 수 없다. 이러한 견지에서 이번에 발표된 사교육비 경감방안에서는 과도한 사교육비 지출의 결정적 원인인 대학입학고사 시스템에 대한 재고와 함께 서열화된 대학구조와 학문구조에 대한 개혁 계획이 포함되어 있는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다. 이제 우리는 이러한 방안들이 과연 현실성이 있는 것인지, 교육의 본질을 훼손하는 것은 아닌지를 염두에 두고 신중하고도 쉽지 않은 고민을 시작해야 한다.
3) 학벌지상주의에 대한 인식의 개혁 학벌이 금전적 보상과 소위 출세 수단으로 인식되는 현재의 상황에서는 어떤 대가를 지불하고서도 원하는 학벌을 가지기 위해 노력하는 것은 당연하다. 우리 사회가 정의로운 성숙사회가 되려면 학벌위주의 간판사회에서 능력과 인성이 존중되는 사회로 전환되어야 한다. 지역감정보다 더 깊은 학벌위주의 간판사회가 일류대학 입학을 위한 사교육을 부추겼을 뿐만 아니라 학부모 가계부담을 가중시켜 놓았음을 이미 언급하였다. 능력과 진실, 투명성과 공정성이 존중되는 성숙사회로 가는 길은 우리 사회와 조직 속에 가득한 학벌주의 문화의 병리현상의 치유책을 찾는 데서부터 출발돼야 하며, 이를 통해 사회의 왜곡된 경쟁구조를 바로잡고 교육경쟁에 걸려 있는 과부하를 완화하는 것이 사교육비 문제를 해결하는 사회대책의 핵심이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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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결론
사교육비 문제는 부동산 가격의 폭등과 함께 서민경제를 압박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이민열풍, 조기유학의 열풍도 결국에는 서민들이 감당하기 어려운 사교육비 때문이다. 이러한 사교육비 문제에 대한 해결의 기본 방향은 일방적으로 사교육을 규제하는 것이 아니라 사교육에 대한 직접적 규제가 아닌 공교육의 교육력을 강화하고 사교육의 순기능을 수용하는 방향으로 공교육과 사교육간의 보완적 관계를 발전시켜 나가는 것이 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공교육도 사교육과 경쟁할 수 있는 교육체제를 갖추어야 하며, 이는 공교육의 본질 회복을 통해 가능해질 수 있다. 공교육 체제의 본질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학교교육에 대한 신뢰의 회복이 최우선이며, 학교교육에 대한 신뢰는 학교교육의 질 제고를 통한 교육력 강화로부터 얻을 수 있는 것이다.
결국 사교육 문제의 근원적 해결은 사교육에 대한 무조건적인 반대 또는 억제라는 극단적인 방법이 아니라, 사교육 수요를 유발하는 원인을 정확하게 규명하여, 학교 교육력 강화, 공교육과 사교육의 바람직한 관계 설정 등을 통한 현실성 있는 사교육비 경감 방안이 마련되어야 한다는 것에 있음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