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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수만의 새로운 주인공 장다리 물떼새

김연수 | 생태사진가



미조(迷鳥)에서 서산시의 상징으로 변신

흐르는 강물 위에서 다리가 붉고 긴 롱다리 수컷들이 혈투를 벌이더니 이내 짝을 지어 쌍쌍이 사랑을 나누고 있다. 희귀조 장다리물떼새가 올해도 충남 서산시 천수만의 부남호 상류에 찾아와 귀여운 2세를 낳기 위한 짝짓기에 여념이 없다. 이들은 짝짓기가 끝나면 부리를 맞대고 서로를 다시 확인한다. 몸길이 36cm에 비해 키는 67cm정도로 습지에서 잘 적응 되도록 긴 다리로 진화됐다. 날개와 등, 머리 위가 검푸른 빛깔이고 배, 목, 뺨은 흰색이다. 간척지·습지·바닷가·논·호수·삼각주 등지에 찾아와 얕은 물에서 먹이를 찾아 조용히 걸어다니다가 멈출 때는 몸을 위아래로 흔든다. 헤엄을 잘 치고 날 때는 긴 다리를 꽁지 밖으로 길게 뻗는다. 4∼8월에 3∼5개의 알을 낳는다. 물에 들어가 개구리와 올챙이·도마뱀·물고기·곤충·조개 따위를 잡아먹는다.

국내도감에는 제주 성산포나 낙동강하구에 봄·가을에 이따금씩 나타나는 길 잃은 새로 표시되어 있으나, 11년 전 이해순씨(서산농장연구원)가 천수만 상류에서 번식하는 10여 쌍을 처음 발견했다. 그 후에 매년 조금씩 늘어 한 때 100여 쌍 이상의 장다리물떼새들이 이 곳에서 둥지를 틀고 번식했었다.

천수만은 일반 농경지와 달리 모내기를 하지 않고 볍씨를 비행기로 직파했었고 일반인들의 출입이 제한되어 벼가 어느 정도 자라기 전에는 인간의 손길이 미치지 않았었다. 따라서 자연습지와 비슷한 천수만 논은 이들에게는 천혜의 번식 장소였던 셈이다. 이에 서산시에서는 가창오리와 함께 장다리물떼새를 시의 상징새로 선정하였다.


환경 개발로 점점 개체수 감소

그러나 천수만의 장다리물떼새는 2002년을 기준으로 점차 줄고 있다. 2005년 6월 겨우 10여 쌍 정도가 둥지를 틀고 있다. 현대건설에서 영농하던 간척지가 일반인들에게 분양되면서 농약과 화학비료의 사용량이 증가하고, 비행기 직파가 아닌 모내기로 벼를 심고 있어 천연습지의 모양이 사라졌다. 장다리물떼새 유조(留鳥)의 먹이인 깔다구들의 대규모 무리도 보이지 않는다. 그들이 이 곳에 정착을 하여 매년 개체수가 불어나는가 싶더니 불과 몇 년 사이에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고 있다. 자연을 사랑하고 천수만을 아끼던 사람들은 새들의 낙원 천수만이 이제는 더 이상 낙원이 아니라고 걱정하고 있다.

불과 몇 년 사이에 천수만 자연환경은 이렇게 급격하게 악화되었는데 개발론자들은 천수만을 산업, 위락단지로 전환시키려는 계획을 꾸준하게 추진 중이다. 급기야 지난 5월 개발이익을 맛보려는 일부 주민들까지 가세해 천수만 철새도래지를 불살라버리는 시위도 벌어졌다. 전국에 불어닥친 부동산가격 폭등의 광풍 속에서 생태보전지역으로 개발이 제한된다면 그로 인해 재산가치가 떨어진다는 땅 소유자들의 하소연은 이해가 된다. 그러나 이 땅은 본디 갯벌로 그 누구의 땅도 아닌 지역주민과 갯벌생태계 속 생물들이 공유하는 삶의 터전이었다. 땅 가치하락의 손해배상책임은 자연이 아니라 정부에 있다. 아니 오히려 오염 안된 곳이 후세에는 땅의 재산가치가 몇 십 배 높을지도 모른다.


우리 땅에서 쉴 수 있도록 해야…

가냘픈 몸매로 먼 남쪽에서 긴 여행 끝에 비교적 오염되지 않은 천수만을 찾아 둥지를 쳤던 장다리물떼새들은 더 이상 이곳을 찾지 않을 것이다. 좀더 멀리 북상하여 인접한 북한이나 러시아 연해주로, 아니면 더 멀리 아무르습지로 보다 길고 험난한 여행을 할 지도 모른다. 이 땅에 둥지를 트고 번식했던 새들이 한 때 지나가다가 길 잃은 미조(迷鳥)로 기록된 조류도감이 역시 맞는 것일까? 장다리물떼새들의 천수만 번식은 역시 한여름 밤의 꿈에 지나지 않았는가? 그래서 이 몇 장의 사진이 기록의 가치를 더할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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