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해에 한두 번만 육지에 갈 수 있는 울릉도 섬마을 아이들의 학습 환경은 열악하다. 도시 생활을 전혀 모르는 이 아이들을 위해서는 직접 도시의 환경을 체험해 보는 것이 제일 좋겠지만 그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일이었다. 좋은 방법이 없을까 궁리를 하다 도시 아이들과 사이버 공간에서 만날 수 있도록 연결해 주자는 아이디어가 떠올랐고, ‘도시와 촌락’ 프로젝트를 시작하게 되었다. 이 프로젝트로 학생들은 도시든, 촌락이든 동시에 체험할 수 있는 살아있는 학습이 가능하게 됐다.
벌써 1년이 지났다. 아이들과 6개월 동안 끈질기게 운영해 오던 도·농간 협력 사이버 프로젝트 학습 ‘도시와 촌락’을 공부하던 때가. 가끔 그 당시 같이 공부하던 아이들의 소식을 담임선생님을 통해서 물어보면 아직도 모든 일에 그렇게 열성이란다. 우리 반 준희도 이제 6학년이 되어 모든 일에 책임감이 강하고 동생들의 학교생활, 공부, 놀이 등을 도맡아 도와주는 의젓한 아이로 성장하였다. 공부하는 태도도 많이 진지해졌고 처음 5학년 때에는 서툴었던 선생님과의 학습 상호작용과 또래 친구들과의 협력학습 능력 그리고 정보 활용 능력도 다른 어느 지역의 아이들과 비교해도 뒤지지 않을 정도로 실력이 부쩍 늘었다.
다양한 요인들이 준희를 성장시켰겠지만 그 중에서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도시와 촌락의 여러 지역 아이들이 사이버 학급에 참여하여 같이 문제를 해결하고 협력하고 상호 작용하면서 학습의 장을 전국으로 확대한 도·농간 협력 사이버 프로젝트 학습 ‘도시와 촌락’이다.
처음 우리 반은 4학년에 유진이와 수빈이, 5학년에 준희가 같은 교실에서 공부하는 소인수 복식 학급이었다. 아이들의 학습 의욕과 학습 능력을 탓하기 전에 그들에게 줄 수 있는 학습 환경은 너무나 열악하였다. 특히 사회과 공부를 하면서 요구되는 각종 현장 조사 학습, 체험 학습을 경험할 수 있는 학습 환경은 매우 열악하였다. 울릉도에서도 가장 오지인 이곳에서는 아이들이 당연히 “우리는 그냥 말로만 해요”라며 답답해하는 선생님을 오히려 측은하게 생각하며 위로해 줄 정도였다.
한 해에 한두 번 독지가나 사회단체의 초청으로 육지에 갈 수 있는 기회는 있지만 이 곳 아이들이 며칠간의 육지 나들이를 통해서 얻을 수 있는 것이라고는 놀이공원의 즐거움과 긴 여정에 대한 노곤함 들이었을 것이다. 이런 아이들에게 도시에 대한 공부는 경험적 지식의 부족 때문에 개념을 올바르게 형성하고, 도시의 문제를 발견하고 해결 방안을 찾아본다는 것이 어쩌면 획일적인 교육과정의 무리한 요구였을지도 모른다. 필자도 그냥 어찌할 수 없는 학습 환경의 한계를 탓하며 진도를 나갈까 고민하던 중 우리 반 유진이와 수빈이가 나누는 대화에서 무언가 해결 방법을 찾아야겠다는 절심함이 느껴졌다.
“유진아! 너 기차가 땅 속으로 가는 거 봤어?”
“뭐? 기차가 땅속으로 간다고? 어떻게?”
이런 아이들의 대화를 모른척하고 듣고 있던 선생님의 고민은 시작되었다. ‘이런 아이들에게 어떻게 도시를 가르쳐야 하나?’
우리 섬마을 아이들을 직접 데리고 도시에 가서 한달 정도 도시의 환경, 사람들의 생활 모습, 문제, 해결 노력 들을 체험해 보도록 하면 제일 좋겠지만 그것도 현실적으로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뭐 좋은 방법이 없을까?
그래, 이 아이들을 도시 아이들과 사이버 공간에서 만날 수 있도록 연결해 주자. 이 곳 울릉도에도 그리고 현포에도 인터넷 기반 시설이 잘 갖추어져 있으니 이런 기반 시설을 이용하면 얼마든지 우리 아이들의 학습 활동 공간을 확대시켜주고 학습 또래들도 다양하게 만날 수 있겠구나. 도시 아이들과 사이버 학급을 만들면 우리는 도시아이들에게 촌락 공부를 도와주고 도시 아이들은 우리 아이들에게 도시 공부를 도와줄 수 있겠다. 이런 생각을 하는 순간 가슴이 벅차올랐다.
도시 아이들과의 사이버 만남 구상
먼저 도시 아이들과 우리 아이들이 함께 만날 수 있는 사이버 공간을 마련하는 것이 필요하였다. 그래서 우리 경상북도연구원에서 운영하는 ‘내 친구 교육넷(www.gyo6.net)’의 학습커뮤니티 카페를 이용해 필요한 학습메뉴를 만들어 아이들이 이곳에서 학습 활동에 참여할 수 있도록 기반을 조성하였다.
그런데 문제는 도시 아이들과 울릉도 지역 이외의 촌락 아이들을 어떻게 사이버 학급에 참여시키느냐는 것이었다. 무작정 사이버 상에 학습 공간을 만들어 학생들이 참여하기를 기다린다는 것은 아이들을 모으다가 시간만 낭비하고 시작도 하지 못하고 실패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전국 단위 ‘사회과 ICT 활용 수업’ 연수를 같이 했던 선생님들을 대상으로 협조 메일과 전화로 취지를 설명 드리고 참여 학생을 추천 받았다. 그리고 경북 지역은 교직 선·후배를 통해서 여러 지역의 아이들이 사이버 학급에 참여할 수 있었다.
지역과 거리의 한계를 뛰어 넘다
이렇게 전국에서 많은 아이들이 ‘도시와 촌락'이라는 학습 주제를 중심으로 사이버 학급에 참여하였다. 이제 이 아이들이 지역과 거리의 한계를 뛰어넘고 서먹함을 친교적 협력 활동으로 이겨내 주기를 바라면서 나, 우리 학교, 우리 고장을 소개하는 활동을 가장 먼저 시작하였다. 그리고 도시아이들은 도시팀으로, 촌락 아이들은 촌락팀으로 편성하여 협력적 팀워크를 통해 참여 학생들을 사이버 학습의 장으로 유도하였다.
분명 아이들의 참여 동기는 왕성하였으며 자치적으로 학습 활동을 계획하고 문제를 설정해 각 지역의 학습 자료와 교실의 학습 내용을 공유하는 등 커뮤니티를 통해 다양한 상호 작용이 왕성하게 진행되었다. 서울과 인천, 대구, 울산 그리고 저 멀리 흑산도와 강원도, 경북 지역의 많은 학생들이 사이버 공간을 통해 협력적 프로젝트 학습에 흥미를 가지고 참여해 주었다. 이제 아이들에게 학습 환경의 한계는 사라지고 전국으로 학습의 장이 확대된 것이다.
도시의 아이들은 자기가 살고 있는 도시 지역의 이미지 자료와 각종 데이터, 그리고 현장 학습 자료들을 촌락 아이들에게 제공하여 주었고 촌락의 아이들도 자기 고장의 자연 환경과 특징, 사람들의 생활 모습과 발전을 위한 다양한 방법을 조사해서 도시의 아이들과 공유해 주었다. 이제 우리 프로젝트에 참여한 아이들에게는 도시든, 촌락이든 동시에 체험할 수 있는 살아있는 학습이 가능해진 것이다. 그리고 전체 팀원들이 참여하는 실시간 온라인 토론을 2회 실시 하였는데 끝내기가 아쉬울 정도로 아이들의 열성이 대단하였다. 각자 자기 고장의 학습 정보를 제공해 주고 도시와 촌락이라는 일반적인 개념을 바르게 형성하는데 좋은 기회가 되었다.
또한 자원 인사를 위촉하여 인터뷰를 하거나 고장 사람들을 상대로 설문을 실시하여 데이터를 공유하는 등 학생들은 각 지역에 맞는 학습 활동을 주도적으로 전개하여 그 결과를 전국 단위로 공유하는 모범적인 학습 활동 사례도 있었다.
‘도시와 촌락’ 이후 달라진 아이들 정말 바쁘고도 어려운 과정을 거의 5개월 정도를 진행하면서 처음에는 의미 있게 댓글 다는 일에도 어려워하던 아이들은 스스로 정한 학습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팀원들 간에 토론을 진행하고 학습 자료와 정보를 수집하고 정리하여 상호 공유하는 등 각자의 역할에 최선을 다하는 태도와 능력의 변화를 보여 주기 시작했다.
단순히 텍스트 중심의 커뮤니티 활동에서 자기 고장에서 구할 수 있는 학습 자료를 멀티미디어화해서 상호 교류를 하였으며, 간단한 인사나 생활 이야기에서 벗어나지 못하던 내용도 학습 문제를 중심으로 집중되어졌다. 또한 서울, 인천, 울산 등의 대도시 아이들은 각 지역의 특징적인 학습 활동과 자료를 제시하면서 도시에 대한 개념을 스스로 형성하는 것은 물론 촌락의 아이들에게 도시를 바르게 이해시켜주는 또래 학습 도우미로서의 역할을 사이버 학급에서 훌륭하게 해 주었다.
촌락의 아이들도 도시 아이들에게 촌락에 대한 다양한 자료와 경험 그리고 자기 고장에서 볼 수 있는 살아있는 자료를 공유하면서 도시의 아이들에게 촌락을 자세히 이해시켜주는 등 상호 협력적인 학습 활동에 효과적으로 참여해 주었다. 이런 활동이 가능했던 것은 인터넷 이라는 물리적인 환경을 기반으로 한 사이버 커뮤니티 학습이 전국의 아이들을 하나의 가상공간으로 학습의 장을 확대해 주었기 때문이다.
사이버 협력 프로젝트 학습이 학생들의 학습 성취력 향상에 긍정적인지를 검증하기 위해 실시한 성취도 평가에서도 참여한 학생들과 참여하지 않은 비교군 학생들의 학습 성취력 비교에서 참여한 학생들이 우세하게 나타났다.
또한 사이버프로젝트 학습 호응도 변화를 보면 본 운영에 참여한 팀원들은 참여 전에는 호응도가 ‘하’인 학생이 62%였으나, 참여 후에는 호응도가 ‘상’인 학생이 84.6%로 변하였다. 또한 인터넷을 생산적 학습 활동에 이용하면서 그 동안 부모로부터 인터넷 사용에 대한 부정적인 평가를 받던 학생들이 긍정적으로 신뢰를 회복하는데 아주 효과적인 것으로 조사되었다. 즉 협력 사이버 프로젝트 학습이 학생들의 학습 동기를 적극적으로 형성하고 자기 주도적 학습 능력과 태도를 길러주며 올바른 인터넷 사용 문화를 조성할 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인천 도화 초등학교에 다니던 세화가 남겨준 소감문을 돌이켜 생각해 보면 잔잔한 감동이 다시 일어난다.
사이버 프로젝트 ‘도시와 촌락’을 하면서 여러 지역의 친구들과 함께 공부할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몰랐던 것도 많이 알게 되었고 무엇이든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도 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친구들과 선생님을 만나 공부를 주제로 실시간 사이버 토론을 하였을 때는 너무 인상적이었습니다. 앞으로도 이런 기회가 제게 또 온다면 또 하고 싶습니다. 도시와 촌락 사이버 프로젝트 몇 달 했는데 끝나니 서운하네요.
- 인천 도화초등 김세화 학생의 소감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