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교육은 세계화, 정보화, 다양화를 추구하고 있다. 그 시대의 요청에 부응하기 위해 교사들은 이전보다는 더욱 강화된 교육방법의 전문성과 책무성을 발휘해야 한다. 이를 위해 경험 많고 노력하는 교사들의 노하우가 후배 교사들에게 전달되도록 제도적으로 뒷받침돼야 하며, 이는 곧 우수한 교원들을 유치하는 데도 기여를 할 것이다. 수석교사제는 교수 중심의 꿈을 갖고 있는 많은 교사들에게 희망이 될 것이다.
학교에 처음 발령을 받은 초임교사를 포함한 저경력 교사는 교수·학습 과정안 작성, 기본 학습 훈련, 수업 기술, 평가 문항 작성법, 생활지도, 효과적인 강화 기법, 문제아 지도, 학급 경영의 효과적인 방법, 교육적인 놀이와 학급문화, 공문서 처리 방법, 교직원·학부모·학생 사이의 인간관계 등 교직의 전반적인 분야에서 어려움을 겪게 된다. 하지만 이러한 어려움을 해결할 수 있는 교사의 전문성을 단시간에 완성시킬 수는 없다. 교육현장에서 겪게 되는 시행착오를 줄이기 위한 치밀한 계획, 이를 해결하기 위한 끊임없는 실천이 필요하다.
풍부한 노하우 전수 위한 제도 필요 이 과정에서 선배 교사, 학교 관리자, 장학사의 지원과 애정 어린 격려는 저경력 교사의 교직 적응과 전문성 향상에 큰 도움이 된다. 특히 저경력 교사들은 경험과 노련함을 가진 동료(선배)교사로부터 도움을 바라고 실제로 많은 도움을 받고 있다. 또 배우는 자에서 가르치는 자로의 변화와 교사간의 인간관계에 적응하며 생기는 문제에 대해 상담을 필요로 하기도 한다. 그러나 학교에서 저경력 교사가 경험의 부족에서 겪는 어려움을 해결해 주는 제도적인 장치는 부족하다. 수업 개선을 위해 1년에 1회 실시하는 임상장학이나 동료 교사들의 경험담이 대부분이다. 주로 관리자에 의해 지도되는 임상장학은 한 시간의 수업과 연관된 수업장학으로 하나의 형식적인 과정이나 평가 과정으로 인식되어 오히려 교사들의 부담이 되고 있다.
저경력 교사들은 자신이 겪은 학창시절의 경험과 대학에서의 배움, 선배교사들의 경험담·조언·충고를 바탕으로 교육활동을 전개하고 시행착오를 거치며 노하우와 전문성을 갖춘 교사로 성장되어 간다. 저경력 교사의 시행착오는 학생들이 받는 교육의 질에 직접 영향을 미친다. 그러므로 교사의 시행착오를 줄이는 것은 교육의 질을 높이는 하나의 방법이 된다. 저경력 교사가 교육현장에서 겪는 어려움이나 문제를 효과적으로 해결하기 위한 방법은 대학에서 배운 교육이론이나 교육도서를 통해서가 아니라, 풍부한 경험을 갖고 있는 선배교사의 현장경험에서 묻어있는 생생한 교육기술의 정보와 지식이다. 그들 곁에서 함께 교육활동을 하는 경험과 실력을 갖춘 선배 교사가 상담과 지도·조언을 통해 그들의 지식과 경험, 정보를 체계적으로 지원해 주는 프로그램은 반드시 필요하다.
사회의 발전에 따라 학교와 교사들에게 더 높은 전문성이 요구되고 있다. 저경력 교사를 멘티로, 충분한 경험과 실력을 갖춘 고경력 교사를 멘토로 짝지어 수업장학을 포함한 교수활동, 생활지도, 학급운영, 교무업무 추진, 인간관계, 교직 적응과정의 갈등과 어려움 해결, 연구 활동 등을 지도하고 지원하는 멘토링은 저경력 교사(멘티)의 학교 적응과 전문성 계발에 매우 효과적이다. 멘토 역시 멘티가 필요로 하는 지식과 기술, 경험을 전달하기 위해 자신의 역량을 심화하며 멘티에게 새로운 기술이나 지식을 배우는 교학상장(敎學相長)이 이루어진다. 또 타인의 발전에 공헌했다는 사실에서 보람과 성취감을 느끼게 되고 자존감을 향상시킨다. 멘토와 멘티 사이엔 신뢰와 존경을 바탕으로 친근하고 특별한 인간관계가 맺어지면서 세대차를 극복하고 단결된 조직 문화를 이룰 수 있다. 이러한 멘토링의 질을 좌우하는 것은 멘토의 역량이다. 따라서 멘토를 선발·육성하는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 이것은 수석교사제 도입의 필요성과도 일치한다.
행정기능 중심의 조직구조 개선 현행 교원자격제도는 행정관리 우위의 자격제도로 교사들이 교직 생활의 최종 목표를 교감·교장 등의 학교 행정가로 두도록 제도화 되어 있다. 2급 정교사 자격증을 갖고 교사로 임용되면 3~5년 후에 누구나 자격연수를 통해 1급 정교사가 된다. 그렇게 1급 정교사로 자격증이 갱신된 뒤 관리직으로 가지 않는 교사들은 자신의 전문성을 지속적으로 신장시키고 인정받을 기회가 없다. 인간은 누구나 성장욕구를 가지고 있다. 승진 욕구도 그 중 하나이다. 성장을 위한 욕구는 개인의 발전은 물론 조직의 발전을 도모하는 중요한 원동력이 된다. 교직은 자기연찬을 게을리 해서는 안 되는 전문직이기 때문에 전문성 심화를 위한 교수기능 중심의 조직구조 개선이 필요하다. 그래서 선임교사, 수석교사와 같은 교육전문성 심화 수준에 따른 자격구분을 두어 교사들의 전문성 향상을 유도해야한다.
현행 행정관리 우위의 자격제도는 교감과 교장, 장학사 같은 교육 관리직이나 교육 전문직으로 진출하려는 교사들만이 교직 전문성을 인정받기 위해 노력하게 만들고 있다. 여기에 큰 모순점이 있다. 교사의 전문성을 논할 때 가장 중요한 핵심은 수업전문성인데 현행 승진 제도는 수업 전문성에 대한 특별한 평가 없이 연공서열과 실적위주로 되어 있다(경력평정 90점, 근무성적 평정 80점, 연수성적 평정 30점, 가산점 18점). 수업 전문성 향상을 위해 교실수업 개선 노력을 어떻게 얼마나 했는지는 평가 없이 경력 25년을 똑같이 인정해 주고 있다. 수업과 연관된 수업 시수, 교내외 장학위원 활동, 수업 공개 등의 활동은 적용되지 않고 있으며, 수업실기대회의 수상 기록이 있을 경우 연수 점수의 작은 부분만 차지할 뿐이다.
이런 현실은 교사들이 교육 관리직과 교육 전문직을 바라볼 때 '교사의 전문성'을 갖춘 것에 대한 존경의 시선이 아닌 점수 따기에 성공한 관리자로 보게 하는 부정적인 시각을 만들고 있다. 반대로 관리직으로 진출하지 않는 교사들은 승진에서 가장 큰 영향력(90점)을 갖고 있으나 누구나 똑같이 인정받는 교육경력 25년의 전문성을 인정받지 못하고 무능한 교사, 승진 대열의 낙오자로 보여 지게 된다. 이런 시각은 학부형이나 사회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오랜 경험과 전문성 인정받아야 그러나 교육현장에서는 승진과는 무관하게 학생들을 깊이 이해하고 사랑하며 수업을 비롯한 가르침에 혼신의 힘을 다하는 '무명의 교사'를 많이 볼 수 있다. 그들이 가지고 있는 수업 전문성과 학급 경영 기술은 남에게 보여주기 위한 것도 평가 받기 위한 것도 아니다. 그저 '교사'로서의 역할을 묵묵히 성실하게 이행하는 '선생님'인 것이다. 그들의 교수 경력과 수업전문성을 비롯한 교육 전문성이 제도적으로 인정받아야 한다. 얼마 전 식당에서 음식을 기다리며 우연히 옆자리에 앉은 중년의 두 남자가 하는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교사의 정년 이야기 끝에 "난 나이 많은 할머니 선생님이 내 손자의 담임이 되는 건 원치 않아. 자네 같으면 좋겠어?"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그 이야기를 들으니 이미 알고 있는 사회적 분위기였지만 씁쓸했다. 어쩜 필자가 시간의 흐름과 함께 할머니 선생님에 더 다가가고 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문득 고려장 이야기가 떠올랐다. 고려장이 있던 시기에 차마 노모를 버릴 수 없어 집안에 몰래 감추고 모시던 어느 관리가 있었다. 중국 사신이 찾아와 악의에 찬 주문을 한다. '재를 이용해 새끼줄을 꼬아 갖고 오라'는 주문에 나라는 온통 고민에 빠진다. 관리의 근심을 알게 된 어머니는 새끼줄을 그대로 태워 가져가라는 조언을 해준다. 또 다른 문제들도 노모의 지혜를 빌려 해결하고 결국은 노동력이 없다는 이유로 버려졌던 노인들이 경험에서 우러난 지혜의 보고(寶庫)라는 것을 알게 된 조정에서 고려장을 없애게 됐다. 노(老)교사를 싫어하는 이유가 여러 가지겠지만 경험이 주는 지혜와 전문성의 가치를 잊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안타까움과 함께 '빨리 관리직으로 가야하는건가?'하는 심난함으로 음식 맛을 잃은 점심을 먹었다. 오랜 경험에서 얻어진 깊이 있는 전문성을 인정하는 수석교사제가 빨리 도입되길 바란 날이었다.
학교조직의 기능은 교수기능과 관리·행정기능으로 나누어지는데, 현행자격 제도는 '2급 정교사→ 1급 정교사 → 교감 → 교장'으로 일원화되어 학교의 주된 목표인 교수기능보다 관리 행정기능 위주로 되어 있다. 모든 교사가 교장이 되어야만 능력이 인정되고 지위가 향상되는 조직 구조는 전문직인 교직에서 합리적이라고 할 수 없다. 교사의 자격제도를 교수직과 학교 경영직으로 분리하여야 한다. 2005년 9월 30일 교육통계 자료에 의하면 초·중·고 교원의 수는 352,869명이다. 그 중 교장이 10,213명, 교감이 10,941명, 교사는 331,715명이다. 1급 정교사 자격 취득 후 관리직인 교감·교장으로 승진한 6.4%를 제외한 모든 교사는 동일한 자격과 직급에 머물러 있게 된다.
93.6%의 교사 간에 연장자로서, 선배로서의 도덕적인 장유유서(長幼有序)는 존재하지만 교직경력 10년, 20년, 30년 이상의 경험과 노련함, 노하우를 포함한 전문성을 인정하는 자격 구분이나 직급 체제가 없어 교직경력 5년 된 20대의 교사도 교직경력 30년 된 50대의 교사도 다 똑같은 자격의 '선생님'이다. 교육 현장에서 20년 넘게 종사하며 쌓은 교사의 능력과 자질을 존중하고 전문성을 향상시킬 수 있는 교수직제가 필요하다. 교수직제의 분화는 교사들에게 성취동기를 제공하고 만족도를 높이며 교사 전문성의 심화를 유도할 수 있다.
우수교사 유치하기 위한 첫걸음 세계 여러 나라들은 이미 국가경쟁력 강화를 위해 교육혁신에 많은 투자를 하고 있다. 교수직과 학교 경영직을 분리하고, 나아가 교수직을 보다 분화하여 교사와 교육의 경쟁력 제고를 적극적으로 유도하고 있다. 미국·싱가포르·말레이시아의 수석교사제, 영국의 상급능력교사와 우수교사제도, 일본의 우수교원제도, 중국의 고급교사 등 교수직제의 세분화를 통해 교사의 지위를 향상시키고 직무의 만족도를 높이며 자부심과 긍지를 갖게 하고 있다. 2003년 한국교육현안을 둘러보고 장단점을 분석한 OECD 평가단은 학교가 새로운 요구에 부응할 수 있고 우수교사를 유치할 수 있는 방안으로 수석교사제를 도입할 것을 강력히 권고하였다.
인천시교육청에는 'Edu-call 센터'가 있다. 교육현장에 필요한 여러 그룹별로 전문성을 갖춘 전문가(교원, 교육전문직, 교육행정/교육정책직, 지역 인사 등)가 교육 수요자(학교, 교원, 교육전문직, 교육행정/교육정책직, 지역사회 등)의 요청이 있을 때 찾아가는 교육인력풀(pool)로 맞춤형으로 제공하는 교육인력 자원망이다. 전문가 그룹이 다양한 것은 교육현장에서 필요로 하는 교육활동 영역이 다양하기 때문이다. 수석교사제도 교사의 전문성 영역인 교과지도, 생활지도, 학급경영, 교육연구 등 다양한 영역에서 최상위 자격을 취득할 수 있도록 다선화 되어야 할 것이다.
어린 시절 선생님을 꿈꾼 것은 가르치는 교사의 직업적 매력에 대한 것이다. 이제는 가르치는 교사의 꿈으로 수석교사제가 있어야 한다. 성실하게 계속 노력하는 교사는 누구나 최상위 교사자격을 취득하여 성취감과 함께 최고의 자부심과 긍지를 가지고 교육현장에서 존경받는 교사로 교육활동을 펼 수 있어야 한다. 그래서 교장, 교감과 같은 관리직을 역임하지 않아도, 사회나 학생들로부터 존경받을 수 있는 선생님들이 많이 나올 수 있도록 다양한 교사자격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수석교사제가 자리를 잡고 노(老)교사의 전문성이 인정을 받게 되는 어느 날 "우리 손주 선생님은 내 또래던데 아이를 어찌나 노련하게 가르치는지 아이가 달라지고 있어. 수석교사로 젊은 선생님들도 가르친다는데…" 하는 말을 옆자리에서 듣게 되는 상상이 허황된 꿈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