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은 최근 초등학교 저학년의 통합수업에 대한 찬반 논란이 일고 있다. 2004년부터 초등학교 교육개혁의 일환으로 시작된 학년통합수업은 실력이 천차만별인 초등학교 입학생들이 각자의 수준에 따라 학습하도록 하려는 취지에서 시작됐는데 수업을 받은 학생들 중 낙제생이 늘어나자 반대하는 학부모들이 늘고 있는 것이다.
베를린을 비롯한 독일의 몇몇 주에선 이미 12년 전부터 1학년에서 3학년의 학생을 한 학급에 섞어 수업을 하는 이른바 ‘학년통합수업’이 실험적으로 실행되는 초등학교가 늘어가고 있다. 현재 베를린의 363개 초등학교 중에서 저학년 학년통합학급을 운영하는 곳은 모두 250개 학교다. 베를린 교육 당국은 내년까지 모든 베를린 초등학교 저학년에 학년통합수업을 실시토록 할 계획이다. 그러나 2004년부터 실시되고 있는 이 초등학교 교육개혁은 많은 논란을 불러왔다. 이 수업 방법을 열렬히 지지하는 이들이 많지만 비판의 목소리도 만만치 않다. 특히 베를린에서 학년통합수업을 받은 학생들 중 낙제생이 늘어나자, 학년통합수업 반대세력들이 힘을 얻고 있다. 이들은 교육방식이 복잡해 교사와 학생들이 오히려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주장한다.
입학생들의 수준차를 고려한 학년통합수업
학년통합수업은 원래 학력 수준이 천차만별인 초등학교 입학생들이 각자 수준에 따라 학습하도록 하려는 취지에서 시작됐다. 바이에른 주의 교육부 장관 루트비히 슈테빌레(기사당)는 “여러 연령대의 어린이들이 함께 공부하면 아이들은 가르치는 입장과 배우는 입장을 두루 경험할 수 있다. 그리고 이런 형태의 학급은 인성교육에도 도움이 된다”고 평가한다. 그럼 학년통합수업은 어떻게 진행될까? 베를린에 있는 프리츠-카르젠 초등학교의 1학년에서 3학년이 함께 공부하는 교실의 수업은 율동과 노래로 시작한다. 노래가 끝나고 나서 담임선생님이 그날 공부할 내용에 대해 이야기해주면, 아이들은 그날 수업시간 중 각자에게 주어진 과제물을 스스로 해결한다. 여러 학년이 조를 짜서 공동 학습을 하기도 하는데 서로 방해받지 않고 팀 과제를 해내려면 분리된 공간이 필요했다. 그래서 교실에 안에 분리된 공간을 마련했다. 이날 1학년 2명, 2학년 두 명, 3학년 한 명이 한조가 되어 옆방으로 옮겨 작업에 들어갔다. 이들의 과제는 다섯 가지 감각에 대한 포스터를 만드는 일이었는데 아이들의 모습은 사뭇 진지하다. 작은 목소리로 소곤거리며 각자 맡은 바를 해나간다. 벽에 각자 이름 옆에 그날 해야 할 학습내용들이 붙어 있고, 이에 따라 스스로 그날 학습을 해나간다. 서로 모르는 것을 물어보고 가르쳐주기도 한다. 교실 한편에는 아이들 자신의 교과서 등 학습 자료를 모아두는 선반이 있는데 수업시간 교사가 내 준 과제물을 해서 자신의 이름이 적혀진 선반에 놓아두면 교사는 따로 모아 다음날 체크하고 아이들이 잘 해결하지 못한 문제는 다음 날 따로 설명을 한다. 아이마다 다른 학습 자료를 제대로 정리하게 하는 것도 지도의 큰 부분을 차지한다.
전문가들 “성적우수•학습부진 학생 모두에 바람직”
교사는 아이들이 과제물을 하면서 정말 어려움이 있을 때에 도움을 준다. 아이들끼리 서로 묻고 가르쳐 주기도 한다. 프리츠-카르젠 초등학교에 학년통합학급을 맡고 있는 교사 예니 이르멘은 이러한 수업에 장점이 많다고 말한다. 그는 “특히 수업진도가 빠른 학생에게도 이득이다. 월반을 하는 경우에도 다른 반으로 옮기지 않고 같은 반에서 공부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학년통합학급은 전문가들로부터 앞서가는 학생이나 학습 부진 학생 모두에게 바람직한 학급 형태라는 평가를 받는다. 그러나 이런 학년통합반 수업을 이끌어가려면 교사는 주도면밀한 준비를 해야 한다. 아이들 각자의 수준에 맞춰 수업 자료를 준비해야 하기 때문이다. 뷔르츠부르크 대학의 마가레트 괴츠 교수는 “교사의 열의, 공간, 학부모의 도움 등 제반 조건이 잘 맞지 않는 경우, 이런 통합교육의 장점이 유야무야될 수도 있다”라고 경고한다. 반대론자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지난해 독일은 3학년을 한 번 더 다녀야 하는 학생이 6명 중 한 명 꼴로 많은 것으로 조사됐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이것이 꼭 학년통합학급이 원인이라고 보지는 않으며 몇 년 전부터 독일의 취학 연령이 6개월 낮아진 데 그 원인이 있다고 보고 있다. 이런 평가에도 불구하고 저소득층이 밀집된 지역의 초등학교는 이런 학년통합학급을 운영하는데 큰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베를린에서 이주민과 저소득층이 주로 거주하는 노이쾰른 지역의 한 초등학교 교장은 “우리 학교 교사들은 학년통합수업 모델의 장점을 찾지 못하고 있다”고 고백했다. 그는 “이곳의 아이들이 일차적으로 언어 문제를 안고 있는데 이럴 경우 동년배끼리 우선 비슷한 수준이 되도록 하는 게 더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이런 지역에서 학년통합학급을 구성해 수업을 할 경우 교사들에게 맡겨진 업무는 두 배 이상으로 늘어난다. 게다가 학년통합학급에 학습 부진아의 수가 과다하게 많을 경우, 전체 학급의 학력 수준이 내려가는 부작용을 겪기도 한다. 그래서 학년통합학급에 반대하는 교사들은 이러한 수업형태 때문에 어떤 경우 아이들이 제대로 된 가르침을 못 받고 넘어가는 경우도 있다고 비판한다.
준비 부족한 저소득층 학교 … 효과는 “글쎄”
학년통합학급에서 수업이 제대로 이뤄지려면 공간과 교사의 수가 문제다. 그런데 저소득층 지역의 교사와 학교 공간이 이런 수업이 가능할 조건을 갖추고 있지 못하다. 마찬-헬러스도르프, 리히텐베르크 지역의 초등학교 교장들은 공동으로 베를린 교육청에 “학년통합학급 콘셉트가 제대로 작동하려면 학교의 전반적인 조건이 개선되어야 한다. 우선 공간과 교사 수가 문제”라는 골자의 서한을 보냈다. 24명이 넘는 학급에서는 특히나 수업이 어렵고 교육 환경이 열악한 지역의 학교일수록 이상 행동을 보이는 문제 학생, 학습장애 학생들의 비율이 높기 마련이다. 그런데도 이런 학교에 투입되는 특수 교사 수도 무척 부족한 열악한 환경이다. 학부모 측에서도 학년통합학급 모델에 대해 반대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는데 베를린 학부형 대표 안드레 쉰들러는 이 초등학교 교육개혁 모델이 실패했다고 말한다. 그는 “베를린시 교육 당국은 교사들이 학년통합학급 모델에 충분한 동기부여를 하지 못했고 이에 따라 교사들은 마지못해 새로운 교육모델을 받아들였다”고 비판했다. 하지만 이런 비판의 목소리에도 베를린의 크로이츠베르크 지역에 있는 샬로테 살로몬 초등학교 교장 로즈마리 슈테텐은 학년통합반의 교육적 효과를 굳게 믿고 있다. 이 학교에서는 1999년부터 1~3학년 통합학급을 운영하고 있다. 슈테텐 교장은 “처음 이 교육모델이 운영될 당시엔 교육열 높은 학부모가 참여했다. 그래서 당시 성적이 더 좋을 수밖에 없었다. 지금 여러 계층에서 이 교육모델을 실시하고 있는 만큼 처음 시작보다 성과가 적을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