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들판 달리는 ‘웰빙학교’
오전 10시 40분, 2교시가 끝났음을 알리는 종이 울리자 노란 체육복을 입은 아이들이 우르르 몰려나와 체조를 하더니 이내 인솔교사를 따라 교문 밖을 향한다. 잠시 후 한적한 시골길에 들어서자 잠시 멈춰서 숨을 고르다 곧 시골길을 따라 뛰기 시작한다. 어느새 저 멀리까지 뛰어간 아이들. 갈림길이 나오자 저마다 각자의 길로 흩어진다. 진지하게 전력 질주하는 아이, 얼마 가지 못해 걷기 시작하는 아이, 웃으며 서로 발맞춰 뛰는 아이… 각자의 방식으로 각자의 길을 향해 뛰어간다. 그리고 10분 남짓 지나자 하나둘씩 결승점에 모습을 드러낸다. 누군가 굳이 시합을 붙인 것도 아닌데 결승점에 도착하자마자 아이들이 초시계를 들여다보며 자신의 기록을 확인하며 저마다 기쁨과 아쉬움의 감정을 표출한다.
이것은 경남 김해용산초등학교(교장 김해영)의 ‘들판 달리기’ 모습이다. 김해에서는 이미 ‘웰빙 학교’로 유명세를 타고 있는 김해용산초는 매일 2교시가 끝나면 전교생이 들판 달리기를 한다. 평소 규칙적인 운동을 통해 건강은 물론 바른 인성과 학습의욕도 함께 증진하겠다는 취지이다. 하지만 코스나 방법 등은 관여하지 않는다. 800m 코스부터 4500m 코스까지 각자의 역량에 맞춰 자유로운 방식으로 뛰도록 하고, 학생 스스로 목표를 세우고 기록관리도 알아서 한다. 흔히 생각하는 단체구보가 아닌 말 그대로 자유로운 들판 달리기인 것이다. 그래서 김해용산초의 학생들은 모두 건강한 구릿빛 피부와 밝은 미소를 갖고 있다.
주변 자연환경을 이용한 무공해 교육
김해용산초는 김해시에 속하기는 하지만 시내에서 17㎞ 이상 떨어져 있는 김해 유일의 벽지학교다. 도회지에서 멀리 떨어져 있어 교육여건이 좋지 않을 것으로 생각되지만, 주위의 자연환경을 십분 활용해 자연체험학습장을 조성하고 ‘1인 1 텃밭 가꾸기’를 하는 등 불리한 여건을 오히려 특색 있는 교육의 기회로 삼고 있다.
학교 뒤편의 자연체험학습장은 규모가 클 뿐 아니라 구성도 무척 짜임새가 있다. 수중생물의 생태를 관찰할 수 있는 연못을 시작으로 뒷산 줄기를 따라 곳곳에 모둠별 학습을 할 수 있는 원형테이블이 설치돼 있고, 좀 더 올라가면 전교생을 수용할 수 있는 야외학습장이 마련돼 있다. 야외학습장 위로는 등산로가 계속 이어지는데 총 길이가 7㎞에 이르고 곳곳에 운동시설이 설치돼 있다.
이 정도 시설이면 충분히 만족할 만도 하지만, 김해영 교장은 “아직도 개선해야 할 부분이 많다”며 “학생들을 위한 골프연습장을 마련하고 민속놀이 시설을 더욱 확충할 계획”이라고 말한다. 어린 시절 다양한 경험을 해보면서 자신이 가진 가능성을 다방면에서 살펴봐야 한다는 것이 김 교장의 생각이다.
이와 함께 김해용산초는 자연의 흙과 친숙해질 수 있도록 학교 앞에 재배관찰학습장을 마련, 전교생이 1㎡ 정도의 개인 텃밭에서 농작물을 직접 기르고 수확하는 ‘1인 1 텃밭 가꾸기’를 하고 있다. 주말이면 학부모가 함께 나와 농작물을 살피고 자연체험학습장에서 등산을 하는 가정도 많다. 교직원들도 직접 텃밭을 가꿔 여기서 생산된 무공해 농작물을 급식에 사용하고 있다. 스스로 경작해 먹는 즐거움에 자연스럽게 채소섭취량이 늘어 학생들의 식생활이 개선되는 부가적인 효과도 얻었다.
아토피 • 천식 친화학교로 지정
좋은 자연환경을 이용해 다양한 자연친화적 교육프로그램을 실시한 결과 김해용산초는 지난해 보건복지부로부터 아토피 • 천식 친화학교로 지정됐다. 이에 보다 체계적인 관리를 하기 위해 보건소와의 협조를 통해 전교생의 아토피 • 천식 유무를 조사하고, 질환이 있는 학생은 개인관리 카드를 만들어 지속적으로 관리하고 있다. 저소득층 학생에게는 의료비를 지원한다. 이와 더불어 학생들이 건강한 생활습관을 가질 수 있도록 학생 • 교사 • 학부모 대상의 다양한 연수 •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으며, 방역이나 제초작업 등은 반드시 하교 후에 하고 학교주변에 알레르기를 유발할 수 있는 식물은 제거하는 등 학교관리에도 각별한 신경을 쓰고 있다.
이러한 노력의 결과 아토피와 천식을 앓고 있는 학생 80%가량은 그 증세가 사라졌으며, 나머지 20%도 호전되고 있다.
영어교육도 전국 최우수
아이들이 아이답게 자연에서 뛰놀며 자라게 하는 것은 좋지만, 그러다 보면 자연스레 학과교육이 부실해지진 않을지 걱정이 되기 마련이다. 특히 점점 더 강조되는 영어교육의 경우 도시가 아니면 제대로 된 교육을 받을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크다. 그러나 이러한 걱정은 김해용산초에는 해당되지 않는다.
학년 당 한학급 전교생 144명의 소규모 학교임에도 2명의 원어민 강사를 확보해 여느 도회지 학교 이상의 양질의 영어교육을 하고 있다. 1학년부터 6학년까지 전교생이 정규교과시간에 주당 3시간의 영어수업을 받고 있으며, 올해부터 매주 1시간씩 과학교과를 영어로 수업한다. 아직까지 완전히 영어로 하는 수업은 되지 않지만 수업의 75%가량을 영어로 진행하고 있으며, 2학기에는 이를 90% 이상으로 올릴 계획이다.
김해용산초의 영어교육은 교실에서 그치지 않는다. 화장실 천장에 영어회화 기계를 설치, 사람이 들어오면 자동으로 인식해 영어회화를 따라 할 수 있도록 해 놓았다. ‘토킹 프렌즈’라는 이 영어회화 기계는 일상생활 중에도 학생들이 자연스럽게 생활영어를 접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김 교장이 창원전문대 교수진 등과 함께 개발했다. 향후 입식(立式) 영어회화 기계를 개발, 복도 6곳에 추가로 설치할 계획이다.
교육은 학교에서, 교사는 무조건 수업부터
앞서 언급한 것처럼 김해용산초는 일반적인 정규교과과정에 영어수업을 더 추가해 운영하고 있으며, 5~6학년 교과과정에는 주당 2시간의 중국어 수업이 추가되기 때문에 정규수업이 다른 초등학교보다 늦게 끝난다. 방과 후에도 수준별 영어보충수업과 컴퓨터, 논술, 태권도, 국악, 무용 등 다양한 방과후학교를 운영한다. 그래서 모든 수업이 끝나는 시간이 일반 직장인의 퇴근시간과 비슷하다. 이는 되도록 사교육의 힘을 빌리지 않고 모든 교육을 학교 내에서 받아야 한다는 김 교장의 의지가 반영된 것이다. 전체 학생 45% 정도의 부모가 맞벌이를 하는 현실을 감안한 것이기도 하다.
김 교장은 “사교육에 기대지 않고 학교에서 충분한 교육을 받기 위해서는 교사들이 수업에 집중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말한다. 그래서 수업시간 중 교사들의 핸드폰 사용부터 컴퓨터 사용, 행정업무 처리 등 일체의 다른 행동을 허용하지 않는다.
행정업무까지 금하는 것은 너무한 것이 아니냐는 질문에 김 교장은 “교사에게 수업보다 더 우선하는 것은 없다. 모든 공문은 수업을 마친 뒤 처리하고, 정 급한 공문이 있으면 수업이 없는 다른 교사가 하면 되는 것”이라며 “그래도 처리할 사람이 없으면 교장이 직접 처리하거나 기한을 연장할 수 있도록 조치를 하면 된다. 이런 것이 관리자로서 교장이 할 일”이라고 답했다.
이러한 다방면의 노력의 결과 1998년 전교생이 38명까지 줄어 폐교 위기에 몰렸던 학교가 현재 전교생 144명의 학교로 정상화됐다. 현재 전학을 원하는 대기자가 70명에 이르고, 내년 입학을 원하는 학생도 벌써 24명이나 접수됐다. 김해용산초를 다니려는 학생 중 상당수가 차로 30분이 넘게 걸리는 시내에 거주하고 있다는 점을 감안할 때 실로 대단한 인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