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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 아더스> VS <오퍼나지 : 비밀의 계단> 당신이 알아야 할 진실

2000년대 공포영화의 수작으로 꼽히는 <디 아더스>와 <오퍼나지 : 비밀의 계단>의 공통점은 인간 내면의 광기와 불신을 현대 사회의 타인에 대한 배타성과 접목해 표현했다는 점이다. 깜짝 놀라게 하는 공포가 아니라, 진실로 다가서고자 하는 관객의 상상력을 향해 던져지는 단서들이 서서히 불러일으키는 공포가 이 영화들의 묘미라 할 수 있다.


귀신들린 집, 내면적 공포

<디 아더스>

<식스 센스>의 뒤를 이을만한 충격적인 반전으로 유명한 영화 <디 아더스>는 니콜 키드먼의 섬세한 연기가 압권이다. 그런데 이 영화의 실제적인 주인공은 니콜 키드먼이 아니고 그가 사는 ‘영국 남부의 어느 외딴 대저택’이다. 어두침침하고 음산한, 첫인상부터 불길한 느낌이 풍겨져 나오는 이 집은 여러 층위의 역사가 포개지는 공간이다. 영화적 배경인 1945년, 즉 제 2차 세계대전이 막 끝난 시점과 18~19세기 말의 사회적 변화들이 중첩되어 있다.

전쟁에서 남편을 잃은 미망인이자 독실한 기독교도인 그레이스(니콜 키드먼)는 빛에 노출되면 안 되는 희귀병을 가진 두 아이와 함께 살고 있다. 아이들을 빛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창문엔 항상 두꺼운 커튼이 쳐져 있고 문도 굳게 잠겨 있어야 한다는 것이 이 집안의 철칙. 어느 날 집안일을 돌보던 하인들이 갑자기 사라지고, 예전에 이 저택에서 일한 적이 있다는 세 명의 하인들이 들어오게 된다. 이후 저택에는 기괴한 일들이 끊이지 않는데, 빈 방에서 발자국 소리가 들리고 피아노가 연주된다. 딸은 이상한 남자아이와 할머니가 이 집에 머물고 있다는 이야기를 반복한다. 신실한 그레이스는 딸의 말을 믿으려 하지 않지만 두려움과 공포는 점점 커져만 간다.

신경쇠약 증세를 보이는 아름다운 여주인, 아버지(남성)의 부재, 그리고 귀신들린 집은 18세기 영문학의 인기 장르였던 ‘고딕 소설’의 관습적인 코드이다. 19세기 중반에 발표된 에드가 앨런 포우의 <어셔가의 몰락>은 이런 고딕 소설의 전통을 이어받은 대표적인 작품이다. 낡은 대저택이라는 공간에서 벌어지는 미스터리한 사건들, 그리고 그 안에서 미쳐가는 주인공(대부분 여자)이라는 설정은 공포 영화에서도 자주 차용되어 현대의 관객들에게도 친숙한 이미지로 자리하고 있다. 히치콕의 <레베카>, 큐브릭의 <샤이닝>, 그리고 <헌팅>이나 <헌티드 힐> 등에 등장하는 집은 그 자체로 공포를 유발하는 공간이다.

‘귀신들린 집’을 중심으로 한 고딕 공포 장르가 유행한 배경엔 여러 가지가 있지만, 그 중 핵심은 이성의 시대에 억압되고 은폐되었던 ‘전근대성’의 귀환이다. 18세기 영국에서 본격적으로 태동한 자본주의와 산업혁명은 빈부차와 질병, 전쟁 등 인간의 이성으로 제어할 수 없는 ‘근대적 (사회경제 구조의) 변화’를 몰고 왔다. 이에 대한 반작용으로 ‘초자연적인 현상’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인간의 내면에 자리한 근원적 공포와 비합리성, 이해할 수 없는 세계에 대한 불안감이 외부로 표출된 것이다.

가장 안전하고 평화로운 공간이라고 믿어졌던 가정(가족)은 19세기에 대유행한 결핵 등 각종 전염병과 20세기를 관통하는 전쟁으로 인해 무참하게 파괴된다. 남편과 아이들이 죽어나가는 현실에서 홀로 빈 집을 지키는 미망인의 공포는 극대화되고 외부의 낯선 사람들에 대한 경계심도 고조된다. 친숙하고 안온한 공간이었던 집은 점점 고립되고 은폐되어 간다. 좁고 긴 복도마다 나 있는 방문들을 일일이 열쇠로 잠그고 외부와의 소통을 차단하지만 불안감은 커져만 간다. 공적인 역사가 개인의 영역인 가정으로 침투하면서 그레이스의 집은 낯선 공포로 가득한, 통제 불능의 공간이 되어버린다.

버려지고 상처받은 아이들 <오퍼나지:비밀의 계단>


<디 아더스> 못지않은 충격적인 결말이 인상적인 판타지 스릴러 <오퍼나지 : 비밀의 계단>(이하 <오퍼나지>)은 <디 아더스>와 비슷한 정서의 영화다. 폐쇄적이고 고립된 공간의 공포에다 제작자 길예르모 델 토로 감독 특유의 동화적 상상력을 결합시켰다. 전작 <판의 미로-오필리아와 세 개의 열쇠>에서 이미 인간 내면의 깊숙한 죄의식과 두려움을 묘사하는데 일가견을 보였던 길예르모 감독은 <오퍼나지>에선 신예 후안 안토니오 바요나를 감독으로 내세우고 제작자로 물러났지만, 시나리오와 연출 등 모든 부분에서 길예르모의 손길과 감각이 느껴진다.

“이 영화에서 두려운 것은 두려움 그 자체뿐”이라는 후안 안토니오 바요다 감독의 말처럼, <오퍼나지>는 예기치 않게 그 존재를 환기시키는 심리적인 공포에 대한 영화다. 현실과 환상을 오가는 판타지를 통해 가정의 불화와 사람들 간의 불신을 짚어내는 이 초현실적인 장르의 본질은 지극히 현실 풍자적이다.

고아원에서 자라다가 입양된 로라(벨렌 루에다)는 의사인 남편 카를로스(페르난도 카요), 어린 아들 시몬과 함께 지금은 빈집이 된 고아원으로 돌아온다. 그녀는 장애가 있는 아이들을 위해 요양원을 열 계획이다. 로라는 병에 걸린 시몬의 건강을 돌보기 위해 외딴 바닷가에 위치한 이곳을 고집했다. 하지만 이사 온 지 얼마 안 돼서 시몬은 이 집에 친구들이 있다며 놀러다닌다. 더구나 친구들로부터 자신은 입양된 아이고, 곧 죽을 것이라고 들었다며 괴로워한다.


로라는 출생의 비밀을 알아버린 시몬으로 인해 놀라지만, 눈에 보이지도 않는 친구들이 있다는 소리는 말도 안 되는 아이의 장난으로 여긴다. 그러나 사회복지사를 자청하는 수상한 노파 베니그나가 찾아오면서 거대한 저택에는 불길한 기운이 감돌기 시작한다. 그러던 중, 요양원에 아이들이 도착하는 날 연 파티에서 시몬이 사라지고 만다. 시간은 점점 흐르고, 모두가 시몬이 죽었다고 생각하는 가운데, 로라는 시몬이 말했던 보이지 않는 친구들의 존재가 자신의 과거와 관계가 있음을 깨닫게 된다.


로라가 어린 시절을 보냈던 고아원은 스페인의 한적한 해안가에 자리 잡은 외딴 대저택이다. 과거의 비밀스러운 사연을 담고 있는 그곳은 시몬의 움직임에 따라 현실과 환상을 넘나들고, 미로 찾기와 같은 숨바꼭질이 이어지면서 공간 자체의 공포가 증폭된다. 더구나 시몬이 부르는 친구의 이름들은 어린 로라와 함께 고아원에서 살았던 아이들의 이름이다. 버려지거나 길을 잃은 아이들이 현실을 침범하는 환상은 과거를 잊고 새로운 삶을 살고자 하는 어른들의 두려움을 자극한다.

보호받고자 하는 아이들의 갈망, 아이들을 보호하려고 애쓰는 어머니의 분투는 이 영화에 애틋한 정서를 불어넣는다. 견고해 보였던 일상이 무너지고 사람들로부터 점점 고립되어가는 중에도 시몬을 포기할 수 없는 로라. 무언가 할 말이 있는 것처럼 불현듯 그녀 앞을 지나가곤 하는 조그만 아이들. 충격적인 비밀과 진실을 간직한 채 대저택과 바닷가 주변을 배회하는 이들은 <오퍼나지…>의 공포에 슬픈 그림자를 드리운다.

이기심과 불신이 불러온 파국

낯선 노파 베니그나의 행동이 로라에게 불안감을 불러일으킨 것처럼 바깥으로부터의 침입, 즉 ‘타자’에 대한 배타적인 공포는 필연적으로 내부에 위치한 ‘우리(가족)’에 대한 집착을 수반한다. <디 아더스>에서 아이들에 대한 그레이스의 과도한 집착과 불안은 가족이 깨어질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서 기인한 것이다. 또한 그레이스의 근본주의적인 신앙은 자신과 타자, 선과 악, 빛과 어둠을 이분법적으로 나눔으로써 그 경계가 허물어지는 것을 두려워한다.

버려지고 보호받지 못한 이들, 이제 그들에게 남은 것은 공포와 이기심, 인간(관계)에 대한 불신이다. 그것이 그레이스와 로라, 그리고 아이들을 고립된 집 속에 가두게 한 것이다. 로라는 시몬을 찾기 위해 정체 모를 아이들과의 대화를 시도하지만, 이미 상처 입은 아이들은 그들만의 세계로 발을 들여 놓으려는 어른들의 침입을 쉽게 허락하지 않는다.


<디 아더스>와 <오퍼나지>는 사람들을 깜짝 놀라게 하는 공포 대신, 무언가 끔찍한 진실을 알게 된 사람들의 반응을 보여주고, 미로와 같은 단서들을 흩뿌려 놓아 관객의 상상 속에서 공포가 증폭되게 만든다. 음습한 안개에 둘러싸인 대저택이 주는 압도적인 카리스마, 그 집의 미망인 역으로 제격인 창백하고 가냘픈 니콜 키드먼의 병적인 연기와 벨렌 루에다의 서글픈 사투, 순수하지만 이내 부서져 버릴 것 같은 연약한 아이들, 정체 모를 하인들과 낯선 방문객이 불러들인 불온한 분위기 등, 이 두 영화는 일관되게 미스터리한 정서를 유지하며 고딕 공포의 진수를 보여 준다.

하지만 관객의 뒷골을 가장 서늘하게 하는 것은, 인간 내면에 깊이 감추어진 광기와 불신이 가져온 예기치 못한 파국이다. 그리고 상대방의 진실을 외면한 채 서로에게 타자로 남을 것을 강요하는 슬픈 현실은 21세기를 살고 있는 우리에게도 결코 낯설지 않은 풍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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