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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푼젤> 영리하고 아름다운 동화, 그 감동의 순간

고전 명작동화와 3D의 만남! 최근 디즈니가 새롭게 선보인 애니메이션 <라푼젤>은 19세기 작품인 그림 형제의 원작을 21세기의 최첨단 기술로 재현해 개봉 전부터 화제를 모았다. 고전동화의 새로운 탄생을 기대하면서도 얼핏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조합에 고개를 갸웃하기도 했다. 이 단순한 스토리를 굳이 3D로 만들 필요가 있을까. 그런데 막상 영화를 보고 나니 ‘아하~’ 하는 감탄이 절로 나오며 디즈니의 영리함에 무릎을 치게 된다


3D로 재탄생한 금발 소녀, 라푼젤
익히 알다시피 라푼젤의 주요한 매력은 그 길이가 장장 21m나 되는 금발의 머리카락이다. 이 긴 머리카락을 어설프게 실사로 구현했다간 현실적 어려움은 차치하고도 시각적 만족을 주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애니메이션 속에서 CG로 탄생한 라푼젤의 풍성한 금발은 환상적이라고 할 만큼 아름답다. 곱고 탐스러운 머릿결은 움직일 때마다 한 올 한 올 출렁이며 눈부신 금빛 물결을 이루어낸다.
하지만 라푼젤의 아름다움이 단지 긴 금발 하나였다면 까다로운 관객들의 눈높이를 맞추기엔 역부족이었을 것이다. 2009년 작 <공주와 개구리>에서 과감하게 ‘흑인 공주’라는 캐릭터를 등장시켜 원작동화 <개구리왕자> 비틀기를 시도했던 디즈니는, 이번에도 공주 캐릭터의 변신과 새로운 캐릭터의 창작으로 원작에 대한 현대적인 해석을 시도한다.
원래 왕국의 공주로 태어난 라푼젤은 갓난아기 때 마녀 고델에게 납치된다. 출산을 앞둔 왕비의 병을 낫게 한 황금 꽃의 신비한 기운이 라푼젤에게 스며들어 모든 상처를 치유하고 젊음을 유지시켜주는 금발머리를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영원한 젊음을 누리고 싶었던 마녀는 라푼젤을 납치해 깊은 숲 속의 탑 꼭대기에 숨겨놓고 기른다. 18년 동안 마녀를 엄마로 알고 자란 라푼젤은 바깥세상을 구경하고 싶지만 완강한 엄마에게 말조차 꺼내지 못한다. 한편, 공주를 잃어버린 궁에선 매년 공주의 생일 때마다 수천 개의 등을 하늘 높이 띄우는 행사를 연다. 혹시 공주가 살아있다면 멀리서라도 그 등을 보고 궁으로 돌아올지 모른다는 안타까운 심정에서다. 외딴 탑 속에 고립된 라푼젤에게도 밤하늘을 눈부시게 수놓는 등불은 해마다 그 화려한 빛을 비춘다. 아름다운 등이 수놓은 풍경에 푹 빠져있던 라푼젤은 열여덟 번째 생일을 앞두고 생일 선물로 바깥 구경을 가고 싶다고 말하지만 엄마의 매서운 불호령만 떨어진다.

꿈과 희망을 선사하는 동화
<라푼젤>은 제작사 디즈니의 전통대로 귀에 착착 감기는 노래들로 등장인물의 감정을 묘사한다. 각 캐릭터의 이미지와 딱 떨어지는 배우들의 목소리가 들려주는 감미로운 노래들이 적재적소에 배치되어 영화의 서사를 이끌어간다. 뮤지컬 영화가 아닌 애니메이션에서 각 인물과 스토리, 그리고 노래가 찰떡궁합을 이루긴 쉽지 않다. 디즈니는 이 방면에서 발군의 실력을 발휘해온 오랜 노하우를 가지고 있다. <미녀와 야수>의 ‘Beauty and the Beast’, <인어공주>의 ‘Under the Sea’ 등 제목만 들어도 콧노래가 흥얼거려지는 멜로디의 주제가들은 이미 우리 귀에 익숙하다.
전작들에 비해 <라푼젤>의 음악들은 좀 더 성숙하고 세련된 신선함을 선사한다. 단순하고 아름다운 멜로디는 여전하지만, 분위기와 인물에 따라 때론 어둡게 때론 발랄하게 달라지는 다양한 선곡으로 영화의 결을 풍성하게 만든다. ‘When will my life begin?’이라는 라푼젤의 주제가는 엄마의 간섭에서 벗어나 독립적인 삶을 찾고 싶어 하는 18세 소녀의 마음을 가사에 녹여내는 등, 여러 노래들이 영화의 주제를 충실하게 반영한다.
현대적으로 재창조된 캐릭터들도 인상적이다. 엄마의 반대로 외출이 금지된 라푼젤은 고립된 환경에 주눅 들어 눈물만 흘리는 나약한 소녀가 아니다. 궁에서 왕관을 훔치고 우연히 탑에 숨어든 도둑 플린을 프라이팬으로 때려눕히고 등불 행사에 길안내를 해주면 왕관을 돌려주겠다 제안을 할 정도로 대범하다. 왕성한 호기심으로 탑 밖 세상으로 탈출을 감행한 라푼젤은 땅에 끌리는 긴 머리칼을 총총 땋아 동여매고 위기 상황에서 프라이팬을 휘두르는 엉뚱하면서도 당찬, 사랑스러운 소녀다.
잘생긴 외모로 여자들이 다 자신의 매력에 빠질 것이라는 믿는 ‘자뻑’ 왕자병에 용감하지만 때론 허술한 면도 있는 플린 캐릭터도 신선하다. 플린을 쫓는 왕실 경비대의 충직한 경비마 ‘맥시머스’, 라푼젤의 하나뿐인 친구이며 감정에 따라 색깔이 변하는 카멜레온 ‘파스칼’ 등 동물캐릭터의 코믹한 연기도 잔재미를 준다. 플린과 라푼젤이 선술집에서 만난 험상궂은 인상의 사내들도 소소한 웃음과 감동을 선사한다.

고전의 현대적 재해석 영화
<라푼젤>은 독일의 언어학자 그림 형제가 19세기 초에 창작한 동화집 <그림동화>중의 한 편인 이 모티브를 제공했지만, ‘마녀에 의해 탑 속에 갇힌 공주’라는 기본 골격만 따오고 다양한 재료들로 버무려서 새로운 <라푼젤>을 탄생시켰다. 원작은 사악한 마녀에 의해 왕자가 눈이 머는 비극적인 사건을 담고 있지만, 디즈니 버전의 <라푼젤>은 애처로운 러브스토리 대신 밝고 유쾌한 주인공의 모험기를 통해 온 가족용 애니메이션을 창조해냈다.
라푼젤의 캐릭터도 다분히 현대적이다. 매일 왕자를 기다리며 긴 머리를 왕자를 위해 늘어뜨리는 가련한 공주가 아니라 순수하며 씩씩한 십대 소녀의 이미지다. 물론, 고민과 성찰이 녹아 있는 성장기로 읽기엔 깊이가 부족하고 서사도 단순하지만, 자신이 처한 환경에 굴하지 않으며 마법의 힘에 의지하지 않고 스스로 운명을 개척하려는 라푼젤의 용기는 사랑스럽다.
그림 형제의 원작과 비교했을 때 가장 흥미로운 지점은 현대적으로 재해석된 엄마와 딸의 관계다. 고델의 실체는 젊음을 유지하기 위해 라푼젤의 머리카락을 필요로 하는 마녀지만, 라푼젤에게는 험한 바깥세상으로부터 딸을 보호하기 위해서 외출을 금지하는 엄마일 뿐이다 실제로 현실에서 엄마들의 딸들에 대한 간섭과 잔소리는 흔하고 그로 인한 갈등도 일상적이다. 영화 <라푼젤>에서 고델은 무섭고 신비로운 마녀가 아니라 젊음과 아름다움을 잃기 싫은 여자로서의 엄마, 딸의 청춘을 시샘하는 듯한 이기적인 엄마로 그려진다.
라푼젤에게 ‘세상에서 너를 가장 사랑하는 것은 엄마’라며 거짓말을 하고 딸을 감금하지만 이제 성인이 다 된 딸은 더 이상 엄마의 울타리에 안주하려하지 않는다. 그래서 영화에서 인상적인 대목은, 물론 등불 행사만 보고 다시 귀가하겠다는 마음으로 떠나지만, 라푼젤의 과감한 ‘외박’이다. 처음으로 집을 떠난 소녀의 여정은 험난하지만 극복하지 못할 정도는 아니다.
착하고 명랑한 공주들의 행복한 동화를 그려온 디즈니답게 영화 <라푼젤>은 두려운 바깥 세상의 현실을 강조하지 않는다. 오히려 라푼젤의 용기와 순수한 열정은 꿈을 잃고 살았던 이들에게 자극을 주고, 자신 또한 공주의 신분을 되찾으며 덤으로 플린과 결혼에까지 이르는 완벽한 해피엔딩을 가져온다.
동화는 본질적으로 아이들에게 꿈과 희망을 주기 위해 존재한다. 물론 나이가 들면서 동화속 세상과 다른 현실을 깨닫게 되지만, 차가운 비바람이 부는 세상으로 나가기도 전에 굳이 꿈과 용기와 믿음을 저버릴 이유는 없다. 정직하고 순수한 마음이 지닌 감수성은 삭막한 현실을 헤쳐 나가는 좋은 친구가 되어줄 것이다.
아름다움과 선이 승리하는 동화 속 세상은, 그래서 비현실적인 걸 알면서도 때때로 위로와 감동을 준다. 3D 애니메이션 <라푼젤>에서 가장 아름다운 장면. 형형색색 수천 개의 등불이 하늘 높이 둥실 둥실 떠다니는 그 황홀한 풍경은, 온통 손을 위로 휘젓는 아이들 틈에서 어른인 내가 부끄럼을 무릅쓰고 손을 뻗게 만들었던, 가끔씩 달콤한 위로가 필요한 우리 삶에 꼭 필요한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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