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재를 주인공으로 한 할리우드 영화가 있었다. 한번 보면 바로 외우는 기억력 천재의 이야기 <레인맨(Rain Man, 1988)>이다. 더스틴 호프만(Dustin Hoffman)과 톰크루즈(Tom Cruise)가 주연을 맡았던 이 영화는 아버지의 유언 때문에 만난 형과 동생의 여정을 담은 영화로, 자폐증 환자인 형의 놀라운 기억력이 화제가 됐다.
영화 속 주인공 레인맨은 킴 픽(Kim Peek, 1951~2009)이라는 사람의 실제 이야기이다. 자신이 읽은 책은 모두 암기를 했고, 다른 사람이 3분에 읽을 양을 단 6초에 읽고 기억하였다. 그는 책을 볼 때 왼눈으로 왼쪽 페이지를 보고 오른쪽 눈으로 오른쪽 페이지를 동시에 보는 놀라운 능력을 가졌다고 한다. 그리고 맨델스존(Felix Mendelssohn, 1809~1847)의 <피아노 협주곡 G단조 2악장>이 베트 미덜러(Bette Midler)가 노래한 영화 <더 로즈(The Rose)>의 주제곡과 비슷하다는 것까지 알아내는 등 팝과 클래식을 넘나드는 기억력의 소유자다.
참으로 대단하고 부러운 기억력이다. 그러나 킴 픽의 이러한 능력은 뇌 손상인 서번트 증후군(Savant syndrome)에서 비롯된 것으로, 그는 뛰어난 기억력을 가진 대신에 일상생활은 하기 힘든 장애를 갖고 있었다.
‘인간달력’이라 불리는 어느 여인의 절규도 있다. “저는 11세부터 과거를 기억하는 놀라운 능력을 가진 34세의 여자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저를 미치게 합니다. 제가 의사에게 찾아간 건 제 인생을 지배해 버린 기억력이란 것에 너무나도 큰 고통을 받아왔기 때문입니다. 무엇 하나 떨쳐버리지 못하고 머릿속에 전부 담아 돌아다니는 거죠. 기억은 저에게 저주입니다.” 지나치게 풍요로운 인식 세계는 오히려 거추장스러운 것이기도 하다. 기억은 간직되기에 소중하다. 그러나 기억은 잊을 수 있기에 우리는 살아간다. 기억하고 또 잊으면서 살아가는 지금이 우리의 행복한 순간이 아닐까 한다.
뇌는 생명유지에 필요한 정보를 선택 기억 한다 공부를 잘하면 머리가 좋다고 한다. 다른 말로는 IQ(지능지수)가 높다거나 기억력이 좋다고도 한다. 그러나 하워드 가드너(Howard Gardner, 1943~)와 같은 학자들은 다중지능이론(Multiple Intelligence Theory)으로 이에 대한 반론을 제기하고 있다. 지능 측정 방법이 두뇌를 이해하는 데 최상의 방법인지는 아직도 의문이 많다. 그러면 머리가 좋다는 것은 무엇일까? 보다 단순화하여 ‘기억력’이라는 차원에서 이야기를 전개하겠다. 대체로 뇌신경 전문가들의 답은 뇌에 특별한 무엇이 있어서가 아니고,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간에 뇌의 특성에 맞춰서 노력한 결과라는 것이다. 머리가 좋다는 건 뇌를 잘 활용한다는 말이며, 그것은 공부의 효율성이 높다는 것이다.
아무리 열심히 공부해도 성적이 오르지 않는 것은 일단 뇌에 정보가 기억되는 데 필요한 시간만큼 노력하지 않았기 때문이며, 뇌의 특성과는 관계없이 비효율적으로 학습한 탓이라는 것이다. 뇌의 무게는 체중의 약 2%를 차지하지만 에너지는 전체의 25%정도를 소모한다. 따라서 뇌는 에너지 낭비를 줄이기 위해서 필요 없는 정보는 기억하지 않는다. 입력되는 정보를 모두 기억한다면 몇 분 안에 포화되기 때문이다.
인간은 누구나 살기 위해서 기억을 한다. 어떤 것이 자신에게 유리하고 위험한지 알려면 일단 정보를 기억해두어야 하기 때문이다. 물론 그것마저도 에너지 낭비를 막기 위하여 시간이 지나면 일부는 잊어버린다. 결국, 뇌는 생존에 필요한 정보들을 취사선택해 받아들인다. 일반적으로 뇌가 기억하는 것은 ‘감정이 얽힌 사건’과 ‘본인이 기억하려고 의식한 것’ 들이다. 그것은 생명유지에 필요하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학교의 수업 내용은 생명유지에 당장 시급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뇌가 기억할 필요성을 별로 느끼지 않는다. 따라서 수업 내용을 익히기 위해서는 뇌가 기억하기 위한 두 가지의 조건, 즉 ‘감정’과 ‘의식’을 이용하여 생명유지에 꼭 필요한 것으로 뇌가 착각하도록 반복해서 설득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