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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를 사랑합니다>

<그대를 사랑합니다>는 만화가 강풀의 동명 웹툰이 원작이다. 다양한 장르를 넘나들며 감동적인 이야기와 친근한 그림체, 휴머니즘이 물씬 풍기는 상상력으로 사랑받는 만화가 강풀의 팬은 남녀노소를 불문한다. 웹툰 연재시절 엄청난 호평을 받았던 <그대를 사랑합니다>는 영화로 재탄생한 뒤 연륜이 묻어나는 노배우들의 호연으로 화제에 올랐다.


원작에 충실한 영화적 재현

<그대를 사랑합니다>는 원작에 매우 충실한 영화다. 영화의 배경은 고만고만한 집들이 모여 있는 변두리의 작은 산동네. 이 친숙한 공간은 잔잔하고 소박한 웹툰의 톤을 유지하는 중요한 장소이며, 원작의 훈훈한 온기를 고스란히 전달하기 위해 스크린에서도 웹툰의 묘사 그대로 재현된다.
산동네의 좁은 골목길은 새벽마다 우유 배달을 하는 노인 김만석(이순재)과 폐지를 줍는 송 씨(윤소정)가 처음 마주친 장소이자 그들만의 오붓한 교감을 쌓아가는 곳이다. 추운 겨울 새벽, 눈이 얼어붙어 위험한 비탈길을 무거운 손수레를 끌고 내려가는 송 씨의 걸음은 위태위태하다. 마침 그 길을 지나던 만석은 고물 오토바이를 힘겹게 세워놓고 송 씨를 도와준다. 무뚝뚝하고 괴팍한 만석은 괜히 송 씨를 타박하지만 온순하고 착한 송 씨의 딱한 사정을 알고 점차 호감과 연민을 느끼게 된다.
화려한 스타 배우도 없고 주연들이 모두 노년 배우이며, 스케일도 작은 이 영화의 매력은, 맛깔스러운 대사와 아기자기한 에피소드들이 튼튼한 씨줄과 날줄로 엮어져 있는 이야기의 힘에서 기인한다. 가령 송 씨를 대하기 쑥스러운 만석은 퉁명스럽게 우유 하나를 쥐어주고 뒤돌아서서 미소 짓는다. 또 어려운 처지의 송 씨를 위해 빈 우유팩을 모아 손수레에 슬쩍 얹어주는데 그 과정에서 고물상 점원과 토닥거리는 장면 등은 소소한 재미를 안겨준다.
영화의 또 다른 주인공인 장군봉(송재호)과 순이(김수미) 부부. 택시 기사로 일하다 은퇴 후 주차 관리인으로 있는 군봉은 치매에 걸린 아내가 하는 이야기를 성심껏 들어주고 더럽혀진 옷을 손수 빨아 입히는 헌신적인 남편이다.

노배우의 열연과 훈훈한 에피소드들
이 영화는 만석과 군봉, 두 커플을 통해 노년의 선물 같은 사랑과 매일을 성실하게 살아가는 노부부의 사랑을 보여주며 참된 사랑의 의미에 대해 반추하게 한다. 가부장적인 남편으로 아내 손 한 번 잡아줄 줄 몰랐던 만석이 송 씨로 인해 보이는 변화들은 놀랍기만 하다. 송 씨가 글을 모른다는 사실을 안 만석은 투박한 그림 솜씨로 데이트 시간과 장소를 그린 편지를 보낸다. 풀이 죽어 있던 송 씨가 그림 편지를 보고 수줍은 미소를 지을 때 관객의 마음도 흐뭇해진다.
만석과 송 씨가 남몰래 데이트하면서 서로에게 위안이 되어주는 에피소드는 이 영화의 주제를 잘 드러내 주는 중심축이다. 우리는 늘 청춘일 것처럼 황혼의 사랑에 대해 무시하거나 인정하지 않으려 한다. 하지만 이 영화는 노년의 사랑이 젊은이들 못지않게 얼마나 아름답고 소중하며 애절한지에 대해 목청 높이지 않고 들려준다. 한밤중에 송 씨의 집을 찾아온 만석이 창문에 돌을 던져 송 씨를 불러내는 장면에선 미소가 절로 번진다. 만석은 십대 소년처럼 들떠 있고 그런 만석의 구애에 설레어 하는 송 씨는 마냥 소녀 같다. 만석이 송 씨에게 ‘이뿐’이라는 이름을 지어주면서 입가에 미소가 떠나지 않을 땐 덩달아 마음이 뿌듯해진다.
원작의 아기자기한 에피소드와 애틋한 정서를 섬세하게 살려낸 이런 장면들은 배우들의 열연으로 더욱 돋보인다. 특히 이순재의 인물에 대한 해석력은 관객의 탄성을 자아낸다. 송 씨가 사준 가죽장갑을 양손에 끼고 손녀가 근무하는 동사무소에 찾아간 만석이 자랑하고 싶어 열 손가락을 쫙 펼쳐 보이고 괜히 책상을 툭툭 치는 모습에선 박장대소가 터져 나온다. 속마음을 잘 드러내지 않던 송 씨로부터 처음 받은 선물에 기뻐서 어쩔 줄 모르는 칠순 노인 만석의 능청스러운 행동은 정말로 ‘귀엽’다.
이순재라는 대배우는 웹툰 속 만석을 관록이 배어 있는 자연스러운 연기로 실생활의 공간에 재현해 낸다.

강풀 원작, 그 여백의 미
어깨에 힘을 빼고 온전히 원작의 감성을 지키려 애쓴 감독의 태도도 손뼉 쳐줄 만하다. 스크롤을 내려가며 뒷장면을 궁금해 하며 보는 웹툰은 그 매체적 차이로 인해 영화로 옮기기가 쉽지 않다. 그런데 <그대를 사랑합니다>는 원작의 인물들에 대한 감독의 애정이 듬뿍 느껴져서 나무랄 수가 없다.
무뚝뚝한 노인 만석과 불행한 젊은 시절을 보내고 홀로 늙어가는 송 씨, 자상한 남편 군봉이 치매에 걸린 아내 순이를 끝까지 지켜내는 이야기는 자칫 전형적인 캐릭터의 신파조 드라마라는 소리를 듣기 십상이다. 그런 위험을 무릅쓰면서 세련된 ‘각색’의 유혹에 휘둘리지 않고 배우들의 열연을 이끌어낸 감독의 연출력은 그래서 칭찬받을만하다.
또한 강풀 작품의 백미인 여백의 미는 <그대를 사랑합니다>에서 더 두드러진다.
쏜살같이 흘러가는 노년의 시간이 안타까운 듯 느리게 이어지는 컷과 컷, 그 사이의 빈 여백들은 이 평면의 그림에 깊은 정서적 울림을 부여한다. 특히 쓸쓸하고 고요한 겨울 밤, 인적 없는 골목길을 비쳐주는 가로등 불빛이 등장하는 장면에선 시선이 오래도록 머물게 된다. 희미하지만 더없이 따뜻한 그 불빛을 들여다보고 있노라면 그 주변에 잠든 이웃들의 숨소리가 들릴 것 같고, 불빛 아래서 사랑을 고백하던 연인들의 속삭임이 들리는 듯하다.

헌신적 삶과 사랑이 주는 감동
이 영화의 애틋한 정서의 절정은 만석이 송 씨의 생일을 축하해주는 에피소드다. 생일 케이크를 앞에 두고 만석은 잠시 머뭇거린다. 그러다가 간신히 내뱉는 말 한마디 “그, 그대를 사랑합니다.”
원작에서도 인상적이었던 이 장면은 ‘실사로 보게 된 게 축복이구나’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아름다웠다. 평생 살갑게 대해주지 못했던 아내가 죽고 나서야 후회가 사무치는 만석은 송 씨에게는 정을 듬뿍 쏟아부어 주고 싶다. 하지만 먼저 간 아내에게 미안해서 차마 ‘당신’이라는 호칭을 쓸 수가 없다. 아내에 대한 회한과 송 씨에 대한 애정이 절절하게 북받치는 그 순간을 담담하지만 서글프게, 또 설레게 표현해내는 배우 이순재의 주름진 얼굴을 묘사하려니 ‘경외심’이란 단어조차 부족하게 느껴진다.
그러나 이 영화에서는 이처럼 흐뭇한 사랑 이야기만 있는 것은 아니다. 노인들이 버텨내고 있는 남루한 현실에 대한 묘사도 놓치지 않아 더욱 눈길을 끌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를 보고 돌아서는 발길이 그리 무겁지만은 않았다. 황혼에 찾아온 행복한 한때를 보며 그 기쁨과 슬픔에 진심으로 동참했기에 마음이 무겁다가도 조용히 벅차올랐다. 이 영화에서 보여준 노년의 헌신적인 삶과 사랑이 주는 감동은 관객에게 온기를 불어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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