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1월 4일은 우리학교의 특색활동인 ‘삼릉 풍년대축제’ 날이었습니다. 이 날은 전교생이 학교 교정에서 이른 봄 모내기를 시작으로 우렁이농법에 의해 기른 벼를 수확하는 기쁨을 맛보며 다양한 행사를 하는 축제의 장입니다. 인절미 코너에서 교감선생님과 파트너가 되어 떡메를 치는 저를 1학년 1반 25명 아이들 모두가 부러운 듯 쳐다보며 떠들어댔습니다. “교장선생님, 나도 시켜 주세요.", "아, 나도 떡메 치는 거 하고 싶다.”
교장의 훈화를 기억하는 아이들 그 말을 듣고 바라본 아이들의 간절한 눈빛이 너무나 사랑스러워 순간 고민스러워졌습니다. 볍씨 까기, 새끼 꼬기, 볏짚으로 월계관 만들기, 동네 어른과 함께 탈곡하기, 농부 아저씨가 돌리는 뻥튀기 기계에서 나는 “뻥”소리 들으며 뻥튀기 쌀 먹기, 떡메 치고 인절미 먹기 등 다양한 풍년 대축제의 프로그램 중 난이도와 안전 관리 상의 어려움을 감안하여 유일하게 5~6학년만으로 제한한 것이 떡메 치기였기 때문입니다.
나는 잠시 생각 끝에 “그럼 교장선생님이 묻는 질문에 손을 번쩍 들으세요. 그리고 잘 대답하는 친구에게 떡메를 칠 기회를 주겠어요.”라고 하였습니다. 내 말에 아이들은 좋아라하며 박수를 쳤습니다. “지난 2일 월요일 아침 방송 훈화 때에 교장선생님이 무엇을 잘 하는 어린이가 되자고 했지요?” 그러자 아이들이 여기저기서 “저요, 저요”를 외쳤습니다. “질문을 잘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한다고 했지요?……그래, 손을 가장 번쩍 든 이 친구가 말해보자.” “첫째, ‘좋은 책을 많이 읽자’입니다. 둘째, ‘집에서 부모님 등 가족과 대화를 많이 나누자’입니다. 셋째, ‘궁금한 것은 그냥 넘기지 말고 그 때 그 때 찾아보고 물어보자’입니다.”
나는 순간 구름 위에 떠 있는 듯 황홀해졌습니다. “아, 교장선생님이 너무나 행복해서 가슴이 터질 것 같아요. 어쩜 이렇게 차례까지 다 맞게 잘 말했는지 정말 놀랍고 자랑스러워요.” 그러자 아이들이 여기저기서 말하였습니다. “나도 그렇게 말하려고 했는데……” “교장선생님, 다른 것도 물어 봐 주세요.”
인절미 코너에서 우리 1학년 아이들과 나의 대화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던 충남 청양 마을에서 온 봉사 요원 어르신과 학부모회 어머니들 대여섯 분 모두의 얼굴에도 놀라움과 감동의 물결이 일렁이는 것 같았습니다.
훈화에 집중하도록 하기 위하여 2014년 9월 1일자로 이 학교에 부임해서보니, 인성 관련 덕목을 주제로 매주 학교장에 의한 월요훈화 조회가 이루어지고 있었습니다. 부임 전부터 훈화에 대하여 여러 생각들을 해 왔기에 몇몇 담임교사들을 통해 월요훈화 시간에 대한 분위기를 파악하였습니다. 생각한 대로 담임교사에 따라 약간의 차이는 있으나 방송을 통해 매주 반복되는 학교장의 훈화에 대하여 집중하여 듣는다는 것이 쉽지 않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협의를 통해 한 달에 한 번은 학교장인 내가, 또 한 번은 교감선생님이, 그리고 두 번은 특수부장들이 번갈아가며 관련 업무 관련 안내나 계기교육 등(예를 들어 과학부장은 과학 주간 행사, 생활부장은 6.25 계기교육)을 하면서 보다 변화 있는 월요훈화로 운영하고 있습니다.
나의 경우 정해진 연간 훈화 주제를 따르기도 하고 때로는 매우 감동적이거나 인상적인 신문이나 방송 소식을 주제로 변경하기도 합니다. 지난 11월 2일의 훈화 주제인 ‘질문하는 능력과 창의성’은 “이 우주가 우리에게 준 두 가지 선물, 사랑하는 힘과 질문하는 능력(메리 올리버 <휘파람을 부는 사람>)”이라는 2015년 가을 광화문 교보문고 글판에서 받은 감동과, 서울시교육청의 교육지표에도 있는 ‘질문이 있는 교실’에서 얻은 힌트를 통해 주제로 선정하였던 것입니다.
1학년 아이의 놀라운 수용능력이 주는 교훈 우리들은 흔히 보편적, 상식적이라는 범주화로 특정 집단에 대한 또는 특정 학교 급, 특정 학령 등에 대해 편견을 갖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지난 ‘삼릉 풍년대축제’의 날, 어리기만 한 1학년 아이들을 통해 내가 직접 경험하고 느낀 것은 ‘선생님들의 가르침에 대한 우리 아이들의 수용 능력과 태도는 어떤 마음가짐과 눈빛으로 우리 아이들을 바라보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인절미 코너에서 또랑또랑한 목소리로 질문을 잘 하기 위해 노력할 점 세 가지를 말한 1학년 남자 아이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합니다. 그리고 그 때처럼 여전히 가슴이 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