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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움과 가르침, 이야기의 싹

벌써 십여 년째, 학기 초가 되면 학생들과 치르는 의식이 있다. ‘나의 슬픈 이야기’를 쓰는 시간이다. 가슴 속에 묻어두었던 가슴 아픈 사연들이 쏟아져 나온다. 그 아이의 가슴 깊은 슬픔을 확인하는 순간, 그 아이의 행동이 진정으로 이해가 된다. 부모의 마음으로 따뜻하게 아이를 품어줄 수 있게 된다. 아이들이 간직한 비밀스러운 이야기들이 교사와 학생 간의 소통의 싹이 되기를 기대한다. 그리고 그 싹을 품고 키워줄 이 땅의 선생님들에게 고개를 숙인다.

십여 년 전 어머니께서 돌아가셨을 때의 일이다. 삼우제를 끝내고 돌아와 아이들 앞에 서니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아이들도 내 가슴에 달려 있는 상장(喪章)을 보고 무슨 영문인지를 눈치 챘다. 나는 아이들에게 연습장을 한 장 찢으라고 말했다. 칠판에 ‘나의 슬픈 이야기’라고 적으며, “오늘 너희가 쓸 글의 주제”라고 일러주었다. 그리고 아이들이 글을 쓰기 전에 들려줄 이야기가 있다며, 나의 오래된 이야기를 꺼냈다.

초등학교 6학년 때 나의 부모님은 몇 달 동안을 별거하셨다. 엄마와 떨어져 사는 동안 제일 슬펐던 것은 생일을 혼자 보내야 한다는 사실이었다. 미역국을 끓여주고 잡채를 해줄 엄마가 내 옆에 없다는 것이 몹시 서러웠다. 엄마와 다시 같이 살게 된 것은 엄마의 자궁암 발병 때문이었다. 엄마는 자궁을 들어내는 대수술을 하셨다. 죽음이 임박했다고 생각했는지, 나에게 살갑게 대해주지 않으셨다. 나는 빨리 나아야 한다고 엄마의 손을 꽉 그러쥐었다. 그런데 엄마는 내 손을 세차게 뿌리쳤다. 이럴 수가!? 창가로 달려가 나는 하염없이 울었다. 엄마가 정신이 없으셔서 나를 몰라본 것일까, 아니면 알면서도 내가 귀찮아서 나를 뿌리쳤을까,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하염없이 울었다.

이야기를 마친 후 아이들에게 말했다. “누구에게나 가슴에 묵혀둔 서러운 이야기 하나쯤은 있을 것이다. 오늘은 그 이야기를 연습장에 마음대로 써보는 거다. 묵힌 이야기를 털어 내버리는 거다.” 나의 이야기를 먼저 해주고 난 다음에 아이들이 쓴 글은 다른 때와 달리 매우 진솔했다. 아이들은 부모님의 별거, 실직, 이혼, 죽음 등 자신의 마음에 담아둔 이야기를 꾸밈없이 꺼냈다.

초등학교 3학년 때, 아빠와 엄마는 자주 싸웠다. 어느날 아빠와 엄마가 싸우고 난 뒤, 엄마는 집을 나가 돌아오지 않았다. 휴대전화도 없었던 때라 엄마에게 연락도 할 수 없었다. 엄마가 집을 나간 지 사흘째 되는 날, 아빠와 나는 잠실 지하상가 커피숍에서 엄마와 만났다. 아빠는 엄마와 조용히 상의할 것이 있으니 너는 롯데월드에서 놀다 오라며 나에게 이만 원을 주셨다. 나는 놀러 갈 기분이 나지 않았지만, 혼자서 롯데월드로 갔다. 놀이공원에서 부모님과 같이 즐거워하는 아이들을 보니 왠지 나만 세상에 버려진 것 같아 자꾸 눈물이 났다. 두 시간이 지나 나는 잠실 지하에 있는 커피숍으로 갔다. 아빠와 엄마는 여전히 무슨 말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아빠의 목소리가 화난 목소리였다. 엄마의 목소리도 그랬다. 나는 대체 무슨 말인가 그 목소리의 내용을 확인해보았다. “당신이 엄마니까 아이를 책임지라고. 아빠 혼자 어떻게 아이를 길러.” “내가 당신의 아이를 왜 길러. 아이는 아빠가 책임져.” 아빠와 엄마는 서로 나를 책임질 수 없다며 싸웠다. 내가 그렇게 쓸모없는 존재란 말인가. 그렇다면 무엇하러 자식을 낳았단 말인가. 눈물이 쏟아졌다. 아빠와 엄마를 향한 나쁜 말이 내 입에서 쏟아져 나왔다. 나는 울면서 지하 커피숍을 뛰어나왔다.

이 글을 쓴 학생은 선생님에게 태도가 늘 불손했고, 눈빛도 늘 반항적이어서 소위 ‘눈 밖에 난 학생’이었다. 그러나 이해는 곧 사랑이라던가. 그가 쓴 글을 읽고 나자 그가 달리 보이기 시작했고, 그의 반항적인 눈빛도 이제는 거슬리지 않았다.

그 학생의 글을 만나게 된 후, 나는 내가 마음의 문을 열어야 학생들도 마음의 문을 열게 된다는 사실을 몸으로 느꼈다. 그리고 학기 초가 되면 ‘나의 슬픈 이야기’를 쓰는 시간을 가졌다. 그의 슬픔을 확인하게 되면 그는 더 이상 예전의 그로 보이지 않는다. 그의 슬픔이 그의 존재를 더욱 도드라지게 했다. 이번 봄에도 ‘나의 슬픈 이야기’를 쓰는 시간을 가졌다. 아이들은 저마다의 사연들을 썼다. 타인의 진정(眞情)을 불러내는 것은 나의 진정이다. 선생은 가르치려는 자이기보다 자신의 진정을 먼저 드러내는 자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세월은 가도 진정한 이야기는 남는다. 가슴에 남는 이야기, 그것이 시와 소설과 노래의 싹이다. 아이들이 품고 있는 이야기의 싹이 싱그럽게 자라길 바라마지 않는다. 그 싹을 품고 키워줄 이 땅의 선생님들에게 고개를 숙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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